“안나는 욕심낸 캐릭터고 노력했기 때문에, 인생작을 만났다는 얘기가 너무 꿈같고, 행복해요.”
‘거짓말 끝판왕’ 안나의 모습을 잠시 감춰둔, 수수하고 말간 얼굴의 수지(본명 배수지·28)가 활짝 웃었다. 수지는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에서 기존 필모그래피에서의 활약을 뛰어넘는 팔색조 열연으로 작품을 견인했다.
<안나>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타이틀롤 안나(유미)로 나선 수지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타고난 외모와 능력으로 어디서나 반짝이며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온 이유미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이안나의 삶을 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유려하게 그려냈다.
타이틀롤 단독 주연으로 나선 만큼 불안감도 컸지만, 수지는 놀라운 몰입도를 보여주며 스스로 그 불안을 극복해냈다.
“유미가 겪고 있는 불안만큼 저도 굉장히 떨렸어요. 대본을 읽었을 땐 잘하는 것 없는 유미지만 안쓰럽고 공감되고 많이 응원하게 됐는데, 과연 시청자들도 유미에 이입하고 응원해줄지 걱정했죠. 다행히 사람들이 유미에 이입해준 것 같아 그런(단독 주연) 부담은 덜해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현장 분위기를 많이 신경 쓰는 편인데, 이번 작품에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나에게만 집중하자’, ‘내가 지금 누굴 신경 쓰나’ 하는 생각이었죠. 아직 (현장을 살피지 않는 게) 힘들긴 한데, 유미의 감정에만 신경 쓰려 노력했어요. 유미처럼, 저만 생각했죠.”
작품 공개 후 쏟아진 ‘인생캐릭터’, ‘인생드라마’라는 반응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게 밝혔다. 수지는 “새로운 작품을 대할 때 늘 ‘이것이 나의 인생캐릭터’라는 마음으로 한다”고 담담하게 답하면서도 “안나는 욕심낸 캐릭터이고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에, 인생작을 만났다는 얘기가 너무 꿈같고, 행복하다. ‘이렇게 좋은 반응이 나와도 되나’ 하는, 과분한 마음이 있다”라고 웃어 보였다.
▶“누가 봐도 욕심낼 만한 작품”
하지만 <안나> 호평에 대한 반대급부로 수지에게 부담으로 작용하진 않을까. 이에 대해 수지는 “저는 늘 부담을 많이 느껴서, 그 부담이 특별히 새롭게 느껴지진 않을 것 같다. 워낙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라며 “이번 칭찬에도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고, 제 할 일을 묵묵히 잘하려고 노력할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업계 러브콜 0순위. ‘배우 수지’에게 쉴 새 없는 구애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가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안나>에게 끌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해왔던 연기 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그리고 사실, 이건 누가 봐도 욕심낼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건 뺏기지 말아야지’ 싶었는데, 그건 막연한 욕심이었던 것 같고, 막상 제가 하기로 결정한 뒤에는 ‘이 작품을 잘 만들어봐야겠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수지가 <안나>에서 보여준 청춘은 실로 충격적이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원대한 계획 따위 없이 툭 내뱉은 ‘대입합격’이란 거짓말이 마치 거위처럼 계속 거짓말을 낳으며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바뀐다.
특히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훔친 안나의 거짓말은 사기, 범죄로까지 진화한다. 안나로 살면서도 ‘이건 좀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장면으로는 주저 없이 ‘상견례 장면’을 꼽았다. 또 유미가 안나로 변해가며 거짓말을 끊어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유미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 자신의 결핍을 거짓말로 채우려는 엇나간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나름의 분석을 전했다. 실제 수지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 같은지 묻자 “저라면 그런 불안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합격했다’까지 질러놓고,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실토했을 것 같다. 바로 미안하다고 말했을 것이다”라며 난처한 웃음을 보였다.
수지는 교복을 입은 10대 여고생의 모습부터 삶의 무게에 짓눌린 불안한 20대 청춘, 그리고 야망으로 거짓된 삶을 정당화하고 포장한 30대 사회인의 모습까지 밀도 있게 그려냈다. 각 상황에 적합한 감정 열연으로 때로는 풋풋하고, 때로는 고됨에 지치고, 또 때로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뻔뻔한 유미와 안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존의 ‘배우’ 수지에 대한 편견과 한계를 완벽하게 깨부수는 데 성공했다.
10대부터 30대까지의 캐릭터를 이질감 없이 소화한 수지. 의외로 걱정했던 부분은 “너무 어려 보여서 30대 같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부분이었다고. 교복 신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 묻자 “6세 유미도 할 수 있다고 했을 정도로 자신감 있었다”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기도 했다.
▶10대부터 30대까지 팔색조 연기
<안나> 제작발표회 당시, 캐릭터 소화를 위해 심리상담가의 자문을 받았다고 밝혀 화제가 된 준비 과정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수지는 “나는 유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면 무기력하고 우울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심리상담가 선생님은 우울과 불안 중 유미는 불안 쪽인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라며 “우울이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라면, 불안은 내가 뭔가를 더 할 수 있다고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유미의 동력은 불안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아이가 누구보다 불안하기 때문에 평균보다 더 열심히, 강의를 위해 공부할 수도 있는 거고. 사실 거짓말도 에너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유미의 특성에 대한 상담가의 조언을 통해 “눈 깜박임이나 표정 등 디테일에 보다 신경 쓰게 됐다”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맑은 얼굴의 수지가 <안나>에서 보여준 반전 면모는 대중에게 기분 좋은 배신(?)으로 다가왔다. 분명 대중의 뇌리에 인식된 기존 수지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는데, 수지 자신은 “이게 좀 더 내 모습에 가깝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저는 스스로 그렇게 밝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이게 좀 더 내 모습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요. 사람에게는 밝거나 어둡거나 등 여러 모습이 있는데, <안나>가 ‘수지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구나’ 하게 되는, 저의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는 작품이 된다면 좋겠어요.”
향후에도 과감한 변신을 계속할 용기가 생겼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변신을 위한 변신보다는 과감한 변신을 해야 할 때라면 변신할 것”이라는 현답을 내놨다. 어느덧 부쩍 성장한, 완연한 배우 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