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발 변이에 아세안서도 코로나19 재유행, 불씨 살던 경제 급속히 다시 냉각, 경고등 켜져
문수인 기자
입력 : 2021.05.25 16:10:46
수정 : 2021.05.25 16:11:11
최근 우리의 코로나19 상황이 심상치 않은 가운데 아세안 각국에서도 이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재확산되고 있다. 아세안에서도 백신 접종이 시작돼 감염병 종식이라는 희망의 빛을 보기 시작했으나 느닷없이 다시 시작되는 코로나19로 각국 방역 당국은 당혹해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코로나19 저지를 위해 각국이 다시 빗장을 걸어 잠그는 등 봉쇄정책을 펴면서 회생의 분위기를 띠던 경제도 다시 식고 있다. 싱가포르가 5월 26일부터 홍콩과 시행하려던 항공여행 정상화 조치인 ‘트래블버블’도 코로나19 급증으로 연기됐다.
현재 아세안에서 코로나19가 가장 심한 국가는 태국이다. 교도소, 공항 등 집단감염이 속출하면서 최근 하루 신규 확진자가 1만 명에 육박할 정도다. 특히 교도소발 집단감염이 심각해 일일 확진수가 6800여 명까지 나오는 등 당국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게다가 특정 교도소 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점도 추가 전파에 대한 걱정을 키우고 있다. 태국 교도소의 밀집된 환경은 익히 악명 높아 언제든 재소자 연쇄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결국 이번에 터진 것이다.
수도 방콕의 상황도 간단치 않다. 하루 1000명을 훌쩍 넘는 시민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고 있다. 이에 당국은 유흥시설, 시장, 영화관, 피트니스 센터 등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소들을 속속 봉쇄하며 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확산세는 좀체 멈추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현지 교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아세안서 방역 모범국으로 여겨졌던 베트남도 이번 코로나19 파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베트남에서는 4월 말께부터 지역감염이 다시 퍼지면서 지금까지 28개 시와 지방성이 코로나19에 사로잡혔다. 특히 박장성, 박닌성 등 공단이 밀집된 지역에서 감염이 빠르게 번지고 있는데, 이곳은 우리 기업들이 대거 진출해 있는 곳이다. 확산세가 지속되면 이들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박장성에는 한국 기업 190여 개가 진출했고, 박닌성의 경우 삼성전자를 비롯해 750여 개 사가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이 심각한 태국에서 백신접종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
또 다른 방역 모범국 싱가포르도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에 비해 아직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5월 들어 1년 만에 최고치 신규 확진자가 나오면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 당국은 선제적 조치로 초·중·고의 등교를 전면 금지하고 수업을 화상으로 전환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또 기업들에게는 재택근무 시행을 권고했고, 실내 식당 취식을 금지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자국의 2번째로 큰 섬 수마트라의 상황이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자바섬의 코로나19 확산세를 진정시키니 수마트라에서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올 2월부터 3월까지 수마트라의 어떤 지역도 코로나19 감염 위기 경보를 알리지 않았지만 5월에는 5개 지역이 위기관리 리스트에 올라 있다”며 “이와 함께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도 17%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말레이시아는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아예 국가봉쇄를 실시한 상태다. 지역 간 여행도 금지하고 학교도 문을 닫았다. 당국은 현재 4000명 수준의 일일 확진자 수가 곧 5000명을 넘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코로나19가 가장 우려스러운 국가는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다. 국가 전체가 전쟁 같은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코로나19 상황관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론 통제로 인해 정확한 정보 전달이 되지 않아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코로나 감염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아세안 각국에서 전방위적으로 번지고 있는 이번 코로나19는 이 감염병과 관련해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는 인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탓에 유입이 손쉽고, 또 인도발 변이 바이러스의 전파력도 남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거의 모든 아세안 국가에 인도발 변이 바이러스가 유입됐다는 뉴스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발견된 인도발 코로나바이러스는 전 세계 44개국에 퍼질 정도로 빠른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백신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집단면역이 늦춰지는 것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아세안 각국은 백신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애초 세웠던 접종 계획을 대부분 예정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백신 공급이 계속 늦춰지면서 5월 중순 기준 총 인구 540만 명 중 백신을 맞은 사람은 5분의 1에 불과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아세안 각국은 백신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온갖 묘수를 다 짜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민간이 자체적으로 구입한 백신을 접종토록 하는 방안을 허용, 5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동안 장기 대기를 원치 않는 일반인과 직원 단체 접종을 원하는 기업들은 백신의 민간 거래 허용을 요구해왔다. 정부는 이번 민간 백신 접종을 허용하면서 백신 가격의 상한선은 정해 놓았다. 혹시 있을지 모를 가격 폭등으로 인한 부작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다른 국가들처럼 아세안서도 코로나19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공포로 접종을 꺼리는 현상이 퍼지고 있는 것도 코로나19 재확산세를 키우는 다른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일부 국가에서는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백신 간의 효능을 비교해 국민들에게 제공하기도 하지만 역부족인 모습이다.
이처럼 악화일로에 있는 아세안의 코로나19 상황은 어렵게 회복의 불씨를 살린 역내 경제를 다시 급속히 냉각시키고 있다. 지난해의 코로나 충격파를 벗어던지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파고가 덮쳤지만 이를 이겨낼 체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 실적을 낸 태국은 올 1분기에도 반전을 모색하지 못했다. 태국 국가경제사회개발위원회(NESDC)에 따르면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2.6%. 전 분기 –4.2%에 비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태국 경제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주된 요인은 태국 경제의 주축인 관광업이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산업은 태국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때문에 관광업이 회복되지 않는 이상 태국 경제의 반등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NESDC는 이런 경제 여건을 감안해 올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2.5~3.5%에서 1.5~2.5%로 내렸다.
인도네시아의 사정은 태국에 비해 그나마 좀 낫지만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올 1분기(1∼3월)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동기 대비 –0.74%로 나타났는데, 플러스로 돌아서진 못했지만 당국은 자국 경제가 회복기조에 들어섰다는 긍정적인 평을 내놓았다.
하지만 글로벌 시각은 아직 정반대다. 모건스탠리는 인도네시아의 1분기 실적이 나온 후 올 국가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6.3%에서 4.5%로 오히려 내렸다. 이유는 여전히 코로나19에 지배받는 경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이와 관련해 리포트에서 “인도네시아의 경제 회복은 내수와 해외 수요에 달려 있다”고 썼다. 코로나19로 위축된 글로벌 관광 수요, 수출 등이 함께 되살아나야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만 1분기까지 방역 모범국이었던 베트남은 동기간에 양호한 실적을 냈다. 1분기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4.48%로 역내 다른 국가들에 비해 확연히 좋은 흐름이다. 하지만 베트남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충격을 피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점은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베트남 경제정책연구원은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각국이 다시 문을 걸어 잠그면 글로벌 공급 체인 붕괴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베트남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한 현지 전문가는 “이번 아세안을 덮친 코로나 파고가 예사롭지 않다”면서 “역내 분위기를 반전시킬 것으로 기대했던 트래블버블 시행이 무산되는 등 경제를 반등시킬 요인을 찾을 수 없어 아세안 경제는 당분간 침체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