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아마존의 뉴욕 정복, 부동산에 역발상 투자 물류기지화… 재택근무 아닌 직접 출근 겨냥 오피스 야금야금 사들여
박용범 기자
입력 : 2020.09.29 15:05:36
수정 : 2020.10.03 13:37:57
“뉴욕 경제가 다변화하기를 원하지 않는가. 오로지 월스트리트와 금융업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아마존이 필요하다.”
지난해 2월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한 말이다. 당시 아마존 제2본사를 뉴욕 롱아일랜드시티에 유치하려던 계획이 삐걱거리자 쿠오모 주지사는 결사적으로 여론 설득전에 나섰다. 하지만 아마존이 뉴욕에 들어설 경우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인상에 따른 기존 주민 내몰림 현상)과 주택가격 상승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이 계획은 무산됐다. 최소 2만5000개 일자리와 3조원 이상의 투자 효과가 달린 아마존 제2본사는 버지니아주 알링턴이 차지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당시 사태를 계기로 아마존이 뉴욕을 포기한 것일까? 기자는 전혀 아니라고 본다. 시애틀을 거점으로 태어난 아마존의 뉴욕 정복 야욕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본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마존이 최근 보여준 역발상 전략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은 아이러니하게도 백화점, 몰 등 부동산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전자상거래 기업 특성상 재택근로자를 늘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현장근무를 할 인력을 대거 채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다시 한 번 존재감이 커진 아마존이 왜 이렇게 나서는 것일까.
아마존이 사들인 옛 로드앤드테일러 백화점의 맨해튼 본사
개인적으로 아마존의 이런 역발상 전략은 고급 식료품 유통체인인 홀푸드(Whole Foods) 인수 성공에 따른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2017년 8월 아마존이 홀푸드를 137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이 의구심을 표시했다. 온라인 강자가 오프라인 위주 유통체인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미국과 같은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에서 2시간 이내 신선식품 배송 혁명을 이뤘다. 아마존은 각 지역에서 자체 배송 인력보다 단기 배송 인력을 스폿으로 고용해 이런 배송에 나선다. 아마존은 홀푸드가 제공하는 신선식품 공급 능력보다는 홀푸드 자체를 신선식품 배송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더 높은 평가를 둔 것이다. 다시 말해, 상품보다는 물류의 관점에서 홀푸드를 필요로 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아마존은 아주 손쉽고 싸게 거점이 되는 핵심 부동산을 쓸어 담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났다. 실제로 아마존은 대형 몰 운영기업인 사이먼프라퍼티 그룹으로부터 문을 닫은 몰을 인수해 아마존 물류센터(Fullfillment Center)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파산보호를 신청한 백화점 체인인 JC페니, 이보다 앞서 2018년 파산보호 신청을 한 시어스 백화점의 점포들을 이렇게 활용하는 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홀푸드 인수 때와 마찬가지다. 이런 백화점 매장들이 백화점으로써 필요하기보다 물류 기지로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아마존은 미국 내 약 100여 개 물류센터를 갖고 있지만 여전히 배가 고프다. 월마트, 타겟이 각각 4400개, 1800개 매장을 갖고, 깊숙이 시장에 침투해 있는 것을 고려하면, 아마존의 부동산 투자는 거침없이 계속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아마존의 전략을 이해하고 나면 아마존 입장에서 뉴욕은 정복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아마존은 미국에서 가장 비싼 맨해튼 부동산 시장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이런 전략을 보여줬다. 제2본사 후보지로 롱아일랜드시티를 고려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지난해 약 11억달러를 투자해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건물을 사들였다. 뉴욕 맨해튼에서 명품 상점이 즐비한 5번가(5th Ave)에 1914년 지어진 로드앤드테일러 백화점의 옛 본사 건물이다. 1826년 창업한 로드앤드테일러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이다. 사세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로드앤드테일러는 결국 지난 8월 파산보호 신청을 내며 194년 역사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
▶무인결제 매장 ‘아마존 고’는 상권 분석 척후병
이 건물은 현재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로드앤드테일러가 어려워지며, 이 건물 일부에는 사무실 공유 기업인 위워크(WeWork)가 입주하기도 했었다. 위워크도 이 건물의 입지와 명품 백화점으로 각인된 상징성을 고려해 본부로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위워크도 버티지 못했다. 아마존은 이 건물을 보수해 약 2000여 명의 직원이 일하는 거점 본부로 활용할 예정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통업체가 스러진 노른자위 땅을 아마존이 차지한 것이다.
가장 진화한 테크기업인 아마존은 이렇게 역설적으로 오프라인 기지 확보와 직접 출근 근로자를 위한 기지 확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부동산 투자 전략을 착실히 진행하고 있다. 아마존은 내년 초부터는 전사적으로 다시 직원들이 출근하는 방향으로 인력운용의 얼개를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고용을 추진 중인 10만 명은 대부분 직접 출근을 염두에 둔 인력으로 알려졌다.
아마존의 뉴욕 부동산 투자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시장이 있는 곳에 물류 기지를 만들어왔던 기존 전략을 고려하면 당연히 예상되는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천장 모르고 올랐던 맨해튼 부동산은 코로나19 사태로 역사상 초유의 된서리를 맞고 있다. 산이 높았기 때문에 골이 깊었다. 특히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여행·출장이 급감하면서 뉴욕 호텔업이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 국면으로 가더라도 맨해튼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럴 때 아마존은 역발상으로 한 수 앞을 보고 있다. 이런 시장 상황 때문에 아마존의 뉴욕 정복 움직임은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부동산 시장 개척에 척후병 역할을 하는 조직이 따로 있다. ‘아마존 고(Amazon Go)’라는 무인결제 매장이 그것이다. 기자는 틈이 나는 대로 맨해튼 내 ‘아마존 고’ 매장을 찾아 코로나19 사태 이후 무인결제 매장의 변화를 눈여겨보고 있다. 어떤 매장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객 방문이 저조한 매장도 있었다. 이런 비용을 감수하고 매장들을 운영하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아직은 맨해튼 내 미드타운 중심으로 6개 매장뿐이지만 이들은 상품 판매보다 물류와 상권 분석에 척후병 역할을 하고 있다. 맨해튼 소호 지역에 있는 ‘아마존 4-스타(아마존에서 별 4개 이상을 받은 제품만 파는 매장)’ 역시 마찬가지다. 이 매장을 통해 아마존은 판매 수익을 늘리기보다는 소호 지역 상권 흥망성쇄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존 온라인 주문량에 따른 빅데이터에 ‘아마존 고’가 제공하는 상권 데이터를 종합하면 보다 과학적으로 맨해튼 부동산 투자에 나설 수 있다. 코로나19 시대를 만난 아마존이 어떻게 더 진화할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