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2일 중앙경제공작회의가 폐막한 직후 신화통신은 중국 지도부가 회의에서 논의한 주요 내용을 추려 보도했다. 중앙경제공작회의는 매년 12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이 공동 개최하는 행사로 그해 경제성과를 평가하고 이듬해 거시적 경제 운용 계획을 세우는 자리다. 눈여겨볼 대목이 많았지만 그 중 ‘금융 분야에서 공급 측면 개혁을 심화해야 한다’는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금융 부문에서 공급 측면 개혁의 핵심은 ‘디레버리지(부채 감축)’다. 한마디로 중국 지도부가 자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기업 부채, 그림자 금융, 부동산 거품 등 금융리스크를 본격적으로 제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2020년 새해가 밝았지만 중국 경제는 2019년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관련 불확실성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남아있고, 금융리스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뚜렷하게 수면 위로 떠올라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부실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2019년은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중국은 지난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국경절을 맞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려했으나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 시위 사태라는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2018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 여파는 2019년에도 중국 경제를 짓눌러 3분기 경제성장률은 27년 만에 최저 수준인 6.0%로 주저앉았다. 설상가상으로 2019년 6월부터 촉발된 홍콩 시위 사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중국 경제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했다. 중국으로 유입되는 외자의 65% 정도가 홍콩을 통한다. 시위의 장기화는 글로벌 기업과 자금의 홍콩 탈출을 의미하는 ‘헥시트(HK Exit)’ 우려를 키우며 중국 경제를 옥죄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중국 당국이 2019년 말을 기점으로 미국과 홍콩발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1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중 무역협상 1단계 합의안을 승인했다. 나아가 12월 15일 예고됐던 156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취소했다. 그 대가로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약속했다. 중국은 당장 2020년부터 500억달러 어치의 미국산 농산물을 사들일 것으로 알려졌다. 소위 미중 간 ‘미니 딜’의 성사로 미중 무역전쟁은 일단 휴전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홍콩 시위 정국도 해가 바뀌면서 점차 안정을 되찾고 있다. 2019년 11월 24일 실시된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친중파 진영을 누르고 대승을 거둔 이후 시위대와 경찰 간 극심한 대립 양상은 수그러들었다. 또 홍콩의 정상화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면서 시위 열기도 정점일 때와 비교해 한풀 꺾인 상태다.
대외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줄인 중국의 이목은 이제 본토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금융리스크’에 향해 있다. 중국의 금융 부실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2019년 심상찮은 이상 징후들이 터져 불안감을 키웠다. 2019년 5월 바오상은행을 시작으로 진저우은행, 헝펑은행, 이촨은행, 잉커우옌하이은행까지 신용 위기가 부각되면서 뱅크런 조짐에 시달렸다. 이 중 바오상은행은 중국 당국이 개입해 파산을 유도했다. 중국에서 은행 파산은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중국 기업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공포도 증폭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9년 1~11월 중국 기업이 발행한 채권의 디폴트 규모는 1204억위안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8년 세웠던 연간 최고 기록(1219억위안)에 육박하는 수치다. 12월 데이터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2019년 한 해 디폴트 규모가 2018년 기록을 넘어섰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12월 중국 네이멍구자치구의 지방융자 플랫폼 ‘핑타이궁스(LGFV)’인 ‘허허하오터’가 제때 채무를 상환하지 못한 사실도 알려져 시장에 충격을 줬다. 핑타이궁스는 지방정부에서 담보를 받아 이를 근거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채권을 발행해 지방정부에 자금을 제공하는 중간 매개 역할을 하는 융자 기관이다. 그동안 중국 지방정부는 핑타이궁스를 자금 조달 수단이자 과잉 부채를 숨기는 방편으로 삼아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허허하오터는 만기일이 3일을 넘긴 지난 12월 9일 채권의 원금 5억6500만위안과 이자 6800만위안을 상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허하오터의 ‘지각 상환’ 사건을 두고 시장에서는 지방정부의 담보 능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급기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연말 발표한 ‘2019년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자국 금융 산업에 짙게 드리운 금융리스크를 경고했다. 인민은행은 “정부의 잠재 부채 규모가 크고 회사채 시장과 부동산 시장에서 부실 위험이 커지면서 관련 위기가 전체 금융 시스템에 전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블랙스완과 회색코뿔소 사태의 위험에 대한 일상적인 감독과 평가를 강화하고 비상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랙스완(Black Swan)’은 예측하기 어려워 대비하기 어려운 돌발 위기를, ‘회색코뿔소(Grey Rhino)’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인을 의미한다. 주목할 대목은 중국 금융당국이 부실 또는 취약 금융기관에 대해 지원대신 퇴출을 유도할 것이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인민은행은 “시장화와 법치화를 통해 금융기관을 관리하는 방안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며 “예금자 보호와 은행 건전성 제고를 위해 부실 금융기관을 퇴출시키는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회)도 “파산은 부실 은행을 관리하는 마지막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중국 금융당국은 간간이 부실 은행을 지원해왔지만 이제는 일부 은행의 건전성 위기가 전체 금융 시스템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원 관행’을 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중국 국내외 연구기관과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한층 증폭된 금융리스크와 미중 2단계 무역협상 관련 불확실성이 2020년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경제성장률이 6%를 밑돈다는 의미의 ‘포류(破六)’가 현실화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5.9%, 국제통화기금(IMF)·신용평가사 무디스·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5.8%를 예상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5.7%를 제시했다. 외국계는 ‘포류’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분위기인 반면 중국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6%’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지도부는 ‘안정’을 추구하면서 경기 부양과 함께 질적 발전을 꾀하는 방안으로 적극적 재정정책과 온건한 통화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를 확대할 방침이다. 중국 당국은 2019년 인프라 투자용 특수목적 채권 발행 규모를 전년보다 8000억위안 증액한 2조1500억위안으로 올려 잡았다. 시장에서는 2020년 특수목적 채권 발행 규모가 3조위안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중국 지도부가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6% 정도’로 설정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2019년 2.8%에서 3% 수준으로 높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아가 현행 25%인 법인세율을 2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경제 운용 목표는 오는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 중 리커창 총리의 전인대 정부업무보고를 통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