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막 오른 美 대선 ‘쩐의 전쟁’ 대통령 선거에만 3조원 쓰여… 개인 후원금은 초반 勢 가늠 지표
신헌철 기자
입력 : 2019.05.13 10:26:30
수정 : 2019.05.13 10:27:19
미국의 선거는 말 그대로 ‘쩐(錢)의 전쟁’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풀린 돈은 무려 24억달러(약 2조7300억원)에 달했다. 당시 함께 열렸던 상·하원 선거까지 합하면 총 65억달러(약 7조3800억원)가 쓰였다니 미국의 천문학적 선거자금 규모에 입이 쩍 벌어질 수준이다.
선거공영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대 대선에서 정부의 선거비용 보전액이 1240억원이었다. 미국 대선자금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개인 지지자들은 주로 200달러 미만의 소액으로 후원금을 낸다. 200달러를 넘으면 기부자가 공개되기 때문이다. 기업과 이익단체는 정치행동위원회(Political Action Committee: PAC)에 기부할 수 있다. 이 가운데도 모금액에 제한이 없는 슈퍼팩(Super PAC)이 선거자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010년 대법원의 ‘시티즌스 유나이티드’ 판결로 상한선이 철폐됐다. 대기업과 월스트리트, 총기협회 같은 막강한 이익단체들은 슈퍼팩에 ‘총알’을 쏟아 붓는다. 이에 비하면 개인 후원금은 ‘쌈짓돈’ 수준이지만 선거전 초반에 세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 때문에 정치적 의미는 상당하다. 미국 언론들이 분기별로 후원금 보고내역을 상세히 보도하는 이유다.
지난 3월 각 후보 캠프가 공개한 올해 1분기 모금액을 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우위가 뚜렷하다. 민주당의 경우 후보 난립으로 자금이 분산된 탓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밑바닥 지지가 예상보다 더욱 공고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현직 대통령들은 보통 야당 후보들에 비해 뒤늦게 후원금 모집에 나서는 게 관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랠리를 연중 실시하며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트럼프 캠프는 올해 1분기에만 3030만달러(약 344억원)를 모집했다. 2012년 재선에 도전했던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대선을 19개월 남긴 시점에서 불과 200만달러를 모았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캠프 모금액의 99%가 200달러 미만의 소액 기부였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바라는 공화당 바닥 지지층의 열기가 뜨겁다는 얘기다. 캠프 측은 이월금을 합해 은행에 쌓인 현찰이 총 4076만달러라고 밝혔다. 민주당 후보군 16명 중에서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1819만달러, 캐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1204만달러를 각각 모아 1~2위를 차지했다.
‘풀뿌리’ 지지자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샌더스 의원은 전체 후원금의 84%가 200달러 미만의 소액 후원이었다. 이어 ‘젊은 피’로 불리는 베토 오루크 전 하원의원과 피트 부트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뒤를 이었다.
민주당 후보들의 모금액은 초판 경선 판세와 매우 흡사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당내 지지율 1위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성희롱 논란에 휘말려 주춤하며 출마 선언을 못하고 있기는 하다. 민주당 후보 전체가 8950만달러를 모았지만 1인당으로 나누면 트럼프 대통령의 5분의 1도 안된다. 또 민주당 후보들이 출마 선언 이후 야금야금 모은 돈을 까먹고 있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금이 계속 쌓여가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플랜’도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표가 되는 곳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그는 유권자를 지지자와 반대세력으로 양분한 뒤 지지자는 결집시키고 반대세력은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이슬람계 여성 초선의원인 일한 오마르를 공격하는 동영상을 올리거나,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행보를 하는 것도 유권자를 ‘갈라치기’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국경장벽 등 반이민 정책은 내년 대선에서 여전히 지지층을 규합할 수 있는 유효 카드다.
둘째, 경기와 증시 부양이다. 경제 문제는 전통적으로 미국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 재선에 가장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지미 카터,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 등이 단임에 그친 결정적 이유는 바로 경제 악화였다. 동시에 생각대로 경제가 안 풀릴 경우에 대비해 ‘희생양’을 찾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가 멀다하고 연방준비제도(Fed)를 향해 맹공을 퍼붓는 배경이기도 하다.
셋째, 정책도 유세도 철저히 경합 지역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접전을 벌인 경합주 공략에 조기 착수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대선에서는 15개 주 안팎이 경합주(스윙 스테이트)로 분류된다. 그는 3월 말 미시간주에서 랠리를 재개한 데 이어 4월엔 미네소타주와 위스콘신주를 방문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미네소타주에서 1.5%포인트(약 4만5000표) 차로 석패했다. 뉴햄프셔주, 네바다주, 메인주 등 아깝게 놓친 경합주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시간주, 펜실베이니아주, 위스콘신주, 플로리다주 등에서 1%포인트 안팎으로 신승했다. 이에 대해 빌 스테피언 백악관 정치국장은 “우리는 그물을 넓게 쳐서 지도를 더욱 확장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주별 선거에서 이긴 후보가 해당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구조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전국 득표율(46.1%)은 힐러리 후보(48.2%)보다 낮았지만 선거인단 숫자에선 304대 227로 승리했다.
넷째, 노인층에 구애하는 전략이다.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캠프가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에 집행한 예산 가운데 44%가 65세 이상을 공략하는 데 쓰였다고 전했다. 반면 18~35세를 타기팅한 예산은 4.3%에 그쳤다는 것이다. 트럼프 재선 캠프는 지난해 5월 이후 페이스북 광고에만 1100만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20~30대가 민주당 지지로 쏠리자 공화당은 역으로 60대 이상에 집중하는 전략을 꺼내들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