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승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미국 고용훈풍의 두 얼굴-근로자들은 ‘미소’ vs 기업들은 ‘울상’
입력 : 2018.08.27 08:22:23
수정 : 2018.08.27 09:07:46
계속되는 미국 고용 훈풍에 근로자들은 ‘즐거운 비명’, 기업들은 ‘고통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워낙 고용상황이 좋다 보니 급여 상승을 노리며 직장을 옮기려는 이른바 ‘잡호핑(job-hopping)’이 새로운 추세로 떠올랐다. 근로자들이야 ‘두둑해진 지갑’ 덕분에 즐거울 수밖에 없다. 이는 소비 증가로 이어져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월가에서는 이러한 노동비용 상승을 떠안아야 하는 기업들로선 타격이 예상된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가뜩이나 미국과 중국 간 ‘관세 폭탄 무역전쟁’으로 인해 조달비용 상승에 따른 피해가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부담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시장 상황을 반영하듯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이 시대에서는 퇴직자들이 승자(In this economy, quitters are winning)’, ‘근로자들은 임금 인상을 환영하지만, 기업들은 압박을 느낀다(Workers welcome wage gains, but companies feel squeeze)’라는 서로 상반된 기사를 다뤘다.
지난 4일 보도된 ‘퇴직자들의 승자’라는 기사는 새로운 추세로 떠오른 ‘잡호핑’에 대한 내용이다.
WSJ는 소매, 식품 서비스, 건설 등 모든 산업에 걸쳐 ‘잡호핑’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직자들이 새로운 직업을 구하기 위해 이직하는 현상이 과거 ‘인터넷 붐’ 시대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라는 분석이다.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4월 340만 명이 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1년 이후 최고치이자 같은 기간에 해고된 인원인 170만 명의 2배에 달한다. 그만큼 ‘자발적 퇴직자’가 많다는 의미다.
제레미 디비니티(27)는 워싱턴DC에서 하던 마케팅 일을 지난해 8월 그만뒀다. 고향인 로스앤젤레스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는 “고향에서 새로운 직업을 구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며 “조만간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근로자들이 ‘과감하게’ 사표를 던질 수 있는 이유는 고용 훈풍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6월 기준으로 미국 실업률은 4.0%다. 이는 약 18년간 최저치인 5월(3.8%)에 비해 소폭 높아진 것이지만 이는 미국 고용시장 개선이 지속되면서 노동참여인구가 늘어난 데 따른 영향이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스티븐 데이비스 이노코미스트는 “남편과 부인이 모두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살고 싶은 지역에서 새로운 좋은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현재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직하면서 덩달아 따라오는 것은 ‘임금인상’이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한 직장에서 그대로 남아 있는 근로자보다 이직한 근로자들이 연간 30% 정도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잡호핑’이 두드러진다. 미국 통계국에 따르면 35세 이하 근로자 중 6.5%가 지난해 1분기에 직장을 옮겼다. 이는 35~54세 근로자 이직률인 3.1%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이다. 통계국의 에리카 맥켄타퍼 이코노미스트는 “젊은이들이 이직하면서 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게 추세”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 전체로 볼 때 근로자 임금 인상은 꼭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WSJ는 지난 10일자 1면에 보도한 ‘기업들은 압박을 느낀다’ 기사는 이러한 늘어나는 기업 부담 실상을 다뤘다.
철도회사인 유니언퍼시픽이 임금 인상을 발표하는 등 연봉을 올려주겠다는 기업들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고용훈풍 속에 ‘잡호핑’ 족들이 늘어나다 보니 기업들은 ‘높은 보너스’를 제시하며 사람을 붙잡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웨스트필드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윌 무기야 최고경영자(CEO)는 “지금처럼 높은 연봉을 제시해도 구인난이 심하다는 CEO들의 하소연을 듣기는 지난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현재 분위기를 설명했다.
▶임금인상 노리는 잡호핑(job-hopping) 새로운 추세로 떠올라
무역전쟁에 노동비용 상승까지 직면한 미국 기업들은 ‘하소연’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6월 평균 시간당 임금은 2.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17개월 동안 총 16개월에 걸쳐 임금 인상이 최소 2.5%가량 이뤄졌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노동비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1%포인트 오를 때 미국 S&P500 기업의 이익은 0.8%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무엇보다 노동비용 비중이 높은 제조업체의 타격이 가장 크다. 인플레이션이 1%포인트 오를 때 제조업체 이익은 1.5% 감소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소비재의 경우 1.1% 이익 감소가 예상됐다.
BoA메릴린치에 따르면 S&P500 기업 중 10%가 지난 1분기에 ‘노동비용이 이익에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이는 지난해 4분기 8%에 비해 높아진 수준이자 BoA메릴린치가 이러한 조사를 시작한 2015년 이후 최고치다. 가뜩이나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으로 비즈니스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데 노동비용 상승에 따른 부담까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기업경제학회(NABE) 설문조사에 따르면 1분기에 전체 설문조사 대상자 중 56%가 ‘임금이 올랐다’고 응답했다.
이와 관련 WSJ는 기업들이 과거 같으면 늘어나는 노동비용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시킬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러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유통 공룡’ 아마존 등으로 인해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없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NABE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동비용 상승으로 소비자 가격을 올렸다는 응답률은 28%에 그쳤다.
지금으로선 ‘잡호핑족’들이 ‘승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추세가 지속 가능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고조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미국 경제에 가장 큰 위협요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10일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6일 중국에서 수입하는 340억달러 규모 818개 제품에 대한 25%의 관세부과를 개시하며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지 불과 나흘 만이다. 특히 2000억달러는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 규모인 5055억달러의 40%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로, 미중 간 무역전쟁이 걷잡을 수 없는 최악의 사태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 ‘수입품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인상→소비 위축 및 수요 감소→실업 증가’ 등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잡호핑족’들이 언제까지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