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가계 자산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80조달러를 넘어서면서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최근 발표한 금융계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 자산은 80.6조달러(약 8624조원)로 집계됐다. 전년에 비해 무려 9.8조달러(약 1048조원)가 늘어났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노후대비용 재테크는 미국도 ‘엉망’이라는 사실이 이번에 새로 드러났다. 여전히 연금보다는 주택에 매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식 80%, 소득 상위 10%가 차지
80.6조달러의 가계자산 가운데 노후생활과 관련된 자산은 부동산과 연금이다. 금액으로는 주택 등 부동산에 묻어놓은 돈이 19.4조달러, 연금에 투자해놓은 자산이 19.6조달러다. 또 연금 투자액에는 401K(4.9조달러)와 사적연금(3.1조달러), 정부 연금(8.5조달러), 개인은퇴연금(5.7조달러) 등이 포함된다.
여기서 잠깐 401K와 개인은퇴연금(IRA)에 대해서 알아보자. 미국의 재테크 관련 자료를 읽다보면 자주 등장하는 용어다.
401K는 미국 소득세법 401조 K조항을 의미하는 것으로, 근로자들 스스로 투자결과에 책임을 지는 확정기여형(DC) 퇴직 연금을 말한다. 미국 근로자들의 대부분이 401K에 가입돼 있는데, 기업이 근로자가 내는 돈의 25~100%를 같이 부어준다. 미국 정부는 세제혜택을 통해 근로자들의 401K 가입을 장려하고 있다. 개인은퇴연금도 미국 중산층 사이에서 은퇴자금 용도로 보편화된 금융상품이다. 사적으로 가입하는 노후대비용 연금이지만 국가에서 세제혜택을 제공해준다.
‘왜 주식은 중산층의 노후대비용 자산에서 빼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 대답은 이렇다. 오늘날 미국에서 주식은 부자계층에게 편중돼 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미국 전체 주식의 80%가량을 소득 상위 10% 계층이 소유하고 있다. 게다가 오르내림의 편차가 워낙 커서 노후대비용 자산으로 분류하기에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미국 중산층의 노후대비용 자산의 핵심은 401K와 IRA다. 그런데 80.7조달러에 달하는 가계자산 가운데 미국 중산층의 노후생활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401K와 IRA에는 10.6조달러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비율로 따지면 13%다.
현재 미국의 전체 근로자 가운데 정부에 소속된 사람은 14% 수준에 불과하다. 이들이 받게 될 정부연금에만 8.5조달러가 쌓여있다. 이에 비해 대부분의 민간기업 근로자들이 퇴직플랜으로 가지고 있는 401K와 개인은퇴연금은 이보다 훨씬 적다. 둘을 합쳐봐야 정부 연금의 25% 수준이다. 연금을 통한 노후 대비는 ‘무대책’에 가깝다는 얘기다.
중산층 노후대비 수단 ‘아슬아슬’
그렇다면 민간섹터에서 일하고 있는 대다수 미국 가계는 도대체 어떻게 노후에 대비하고 있을까.
한국과 비슷하다. 주택 등 부동산에 기대를 걸고 있다. 80.7조달러의 가계 자산 가운데 24%를 차지하는 주택 등 부동산을 통해 노후대비를 하고 있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기에서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로 잡혀있는 9.4조달러를 빼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10조달러 정도가 미국 민간섹터 종사자 가계의 노후대비용 부동산 자산 가액이라고 보면 된다. 401K와 개인은퇴연금에 들어가 있는 가계자산 10.6조달러와 엇비슷한 규모다. 미국에서 노후 대비용 자산으로 주택에 투자한다는 것은 여러 모로 위험한 일이다.
첫째, 주택경기에 따라 자산규모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미 한국도 경험 중인 현상이지만, 집값이란 것이 채권처럼 시간이 지나면 마냥 가치가 오르는 자산이 아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처럼 갑자기 ‘곤두박질’ 칠 가능성도 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수익률이 낮다는 것이다. 과거 통계에 따르면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집값 상승률은 소득 증가율이나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했다. 저수익 자산에 가계자산을 묻어놓고 있다는 의미다. 집값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중산층의 노후 생활. 이런 미국의 사정이 도무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