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공식 출범하면 한국에는 무슨 영향이 있을까. 최근 자주 접하는 질문이다.
워싱턴 현지에서는 ‘한미 관계에 큰 변화는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다지 틀린 얘기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고, 한국에서도 새누리당이 재집권에 성공한 만큼 ‘연속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 상황이다. 실제로 북한 문제의 ‘불가측성’을 빼놓는다면 이렇다 할 돌발변수가 보이지 않는다. 한미 원자력협정, 주한미군 주둔비용 협상 등 일부 현안이 있지만 한미 동맹의 기본틀을 바꿀 만한 사안은 아니다.
그렇다면 오바마 2기 행정부는 한국에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기자가 보기에 특히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오바마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 협정(TPP·Trans-Pacific Partnership)’이다.
역대 미국의 재선 대통령은 대외정책에서 과감한 배팅을 해왔다. 더 이상 선거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집권 2기에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오바마 2기 행정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업적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기자가 TPP 협상에 주목하는 이유는 오바마 대통령이 평소 중요시해 온 정치적 목표에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목표는 명확하다. 국내적으로는 수출 증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요,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것이다. TPP는 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도구다. TPP란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의 통합을 목적으로 추진되는 다자간 무역협정이다. TPP는 미국의 주도하에 일본 호주 뉴질랜드 칠레 페루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멕시코 등이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다.
2015년까지 회원국 사이의 관세를 100% 철폐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성사만 된다면 세계 최대 시장이 탄생하게 된다. 최근 워싱턴 정가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회의석상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수출 증대’를 외치고 있다. 이런 그에게 TPP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일 수밖에 없다.
TPP의 또 다른 함의는 G2(세계 2대 주요국가)로 성장한 중국이 쏙 빠져 있다는 점이다. TPP는 중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킴으로써 동남아 진출을 견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당사자인 중국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가지 의아스러운 점은 TPP에 대한 ‘온도차’가 심하다는 점이다. 얼마 전 다녀온 멕시코에서 만난 재계 관계자들은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는 반응 일색이었다. 다른 참가국들도 엇비슷한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워싱턴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TPP와 관련해 ‘2013년에는 뭔가 일을 낼 것’이란 관측이 쌓이고 있다. 그만큼 오바마 행정부의 추진 의지가 강력하다.
사실 한국 입장에서 TPP는 ‘뜨거운 감자’와 같다. 한국은 TPP 협상 참가국 대부분과 이미 FTA를 체결하고 있거나 추진 중이다. 굳이 TPP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괜스레 경쟁상대인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만 키워주기 십상이다. 게다가 한국이 TPP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TPP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 온 중국이 토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2기 행정부는 한국에 TPP 참여를 강력히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오바마 대통령의 TPP 도전이 결실을 맺는다면 그것은 세계 경제의 판도를 바꿔놓을 정도의 ‘대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새롭게 그려진 경제지도 위에서 국익을 건 ‘줄타기’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