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펀드를 운용하는 핌코(Pacific Investme
ntManagement Company) 공동설립자이자 최고투자책임자(CIO)인 빌 그로스는 채권왕(Bond King)으로 불린다. 핌코가 1조9200억달러(2030조원) 규모의 막대한 투자자산을 굴리는 세계 최대 채권운용펀드 회사인데다 그가 직접 운용하는 핌코의 대표(플래그십) 펀드 토털 리턴 펀드 운용액만 2854억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물량이면 그가 어떤 채권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채권시장 투자 지형도가 순식간에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니 본드킹으로 불릴 만하다. 그의 입김은 채권에만 머물지 않는다. 채권운용전문펀드이기 때문에 당연히 채권 편입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주식, 금 등도 운용대상이다. 그로스 창업자가 채권 외 주식, 부동산, 금 등 다른 투자상품 수익률 전망과 투자전략을 고객과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1987년 핌코 설립 후 연평균 7.2%라는 안정적인 수익(벤치마크 대상인 바클레이스 채권지수는 5.9% 수익률)을 올려온 만큼 그로스 창업자 펀드운용 능력은 시장에서 상당한 신뢰를 받고 있다. 토털 리턴 펀드는 지난해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10.4%의 고수익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운용된 채권펀드 중 상위 5% 내에 드는 고수익률이다. 이처럼 펀드 덩치가 큰데다 운용수익률도 탁월하다보니 그로스 창업자의 한마디 한마디는 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만큼 많은 투자자들이 그의 투자전략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그가 올해 투자전략을 세울 때 화두로 삼은 것이 바로 인플레이션 압력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물론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등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돈을 무차별적으로 찍어대면서 올해가 인플레이션 압력이 현실화되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이 인플레이션 공룡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주장이다. 때문에 서둘러 투자포트폴리오를 인플레이션 압력을 반영한 상품구성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로스 창업자는 “인플레이션 시대 개막으로 주식·채권 모두 맞바람을 맞게 될 것”이라며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는 주식, 채권 모두 수익률이 5% 미만에 머물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특히 그는 주식투자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가 던진 도전적인 주장은 바로 ‘주식숭배(Cult of Equity)’ 시대가 끝났다는 것. 앞으로 주식투자를 통해 과거에 거뒀던 높은 수익률을 더 이상 거둘 수 없다는 진단이다. 주식숭배는 제레미 시겔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교수가 주장한 것으로 지난 1912년 이후 주식이 연평균 6.6% 수익률을 기록, 장기적으로 주식이 채권보다 높은 수익을 올린 점을 들어 항상 주식이 채권보다 수익률이 높을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로스 인플레이션 압력 외에 주식시장이라는 게 실물경기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데 미국 등 전 세계 경제가 저성장을 의미하는 뉴노멀 시대에 접어든 만큼 주식수익률이 좋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현재 월가 시장전망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월가 전문가들은 지난 한 해 14% 급등한 대형주 중심의 S&P 500지수가 올해도 두 자릿수 성장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을 배경으로 전 세계 경제가 안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고 지난해 채권으로만 몰렸던 투자자금이 주식으로 이동하는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 현상이 강화되면서 주식이 최고의 투자수단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로스 창업자 주장이 맞을지 월가 전문가 진단이 맞을지는 올해 말이 되면 승부가 갈릴 것이다. 그로스 창업자는 그의 전문분야인 채권투자에서도 고수익을 기대하지 말라고 잘라 말한다. 미국 연준의 장기금리 하향 유도를 위한 양적완화로 채권금리가 이미 떨어질 만큼 떨어진 상태에서 추가적으로 채권금리 하락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채권거품이 당장 터질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연준이 열기구에 열기를 집어넣듯 지속적으로 채권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에 채권 거품이 갑작스레 터지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로스 창업자는 연준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채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지난 2011년 미국 국채비중을 확 줄였다가 참담한 수익률을 맛본 경험이 있다. 그때 얻은 교훈이 바로 미국 연준과 맞서지 말라는 것이다. 연준은 올 1월부터 시장에서 450억달러어치의 국채와 400억달러 규모의 주택담보증권(MBS) 등 총 850억달러씩의 채권자산을 사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로스 창업자도 결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이 같은 양적완화 효과를 넘어서면서 채권가격이 하락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민감한 장기국채를 피하라고 주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이 화두가 되는 세상에서 믿을 것은 실물자산, 그중에서도 금이 올해 최고의 투자대상이 될 것으로 그로스 창업자는 전망했다. 인플레이션 헤지차원에서 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금값이 지속적인 상승세를 탈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로스 창업자는 금 외에도 원유와 같은 상품, 인플레이션율에 따라 금리도 올라가는 미국 인플레이션연동채권(TIPS), 신흥시장 주식을 유망 투자대상으로 꼽고 있다. 대신 올해 피해야 할 투자대상으로는 미국·독일·영국 장기국채, 은행·보험 등 금융주, 하이일드 채권을 지목했다.
빌 그로스
세계 최대 채권자산운용펀드 핌코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투자책임자(CIO)다.
1944년 미국 오하이오 미들타운에서 태어났고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 1987년 핌코를 공동 설립한 뒤 지난 2000년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에 매각했고 현재 핌코 최대 펀드인 ‘토털 리턴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