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9일 중국 우한(武漢)시에서 후베이(湖北)성 정부와 한국 대사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한중 경제문화교류 행사가 열렸다. 한중 수교 20주년을 기념하면서 그와 함께 후베이성에 대한 한국기업의 투자유치가 행사의 주요 목적이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행사 제목이 ‘한강정(漢江情)’이었다는 점이다. 원래 우한에는 양자강과 합류하는 한강이라는 강이 흐르고 있는데 서울의 한강과 이름이 같다고 해 중국 주최 측에서 이를 통해 후베이성과 한국 사이에 긴밀한 우호관계를 형성하려고 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두 한강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후베이성 정부가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 한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려는 심정만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현재 중국의 중서부 지역은 연해지역의 뒤를 이어 본격적인 고도성장 시대를 열어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자면 외자기업을 포함한 지역 외부로부터의 투자유치가 관건이어서 각 지역 간에 외자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후베이성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한국기업에게 더 매력이 있다는 점을 어필하는 과정에서 양국 강 이름이 일치한 것마저 충분히 활용했는데 이것이 바로 대표적인 중국식 ‘관시’ 문화의 발상이다.
중국에서 ‘관시’는 상호간의 특수한 인연을 이용해 비즈니스를 포함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윈-윈’을 실현하려는 인적교류 확대의 한 방식인데 이미 중요한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이러한 ‘관시’ 문화는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아시아 국가들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의 ‘학연’이나 ‘지연’ 혹은 선후배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중시하고 활용하는 것 역시 본질적으로 중국의 ‘관시’ 문화와 같은 맥락이다.
다만 한국인들이 중국에서의 ‘관시’를 특별히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중국식 발음 그대로 전문용어화(관계-관시) 한 것은 아마 중국에 진출한 기업인들이 이를 잘 몰라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오죽하면 ‘중국에서 관시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경험담처럼 오고 갔겠는가. 중국의 ‘관시’를 신비화하는 배경에는 또 중국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행정절차의 복잡함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실제 사례를 분석해 보면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양국 국민들이 ‘관시’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을 제외하면 중국의 ‘관시’ 문화가 반드시 비즈니스의 승패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거나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이 ‘관시’에 대해 한국인들과 다르게 보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우선 양국의 사회구조상 각 사회계층 혹은 직업에 대한 양국 국민들의 보는 바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아 두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교수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상당히 존경을 받고 박사 졸업 후 가장 선호하는 직업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대학교수가 연구소 연구원들에 비해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특별히 높은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중국에서도 베이징대나 칭화대 등 최고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이 청소년들의 꿈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서울대, 연고대 출신들처럼 한평생 우월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지방대 출신이 졸업 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베이징대, 칭화대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는 상황이 비일비재한데 이는 양국 주요대학 교수들의 출신대학 비중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또 석·박사 지원자들도 무조건 명문대를 목표로 하는 것보다 지방대라도 그 분야에서 실력과 권위가 있는 교수를 따라 입학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물론 한국의 교육자원이 주로 서울에 집중돼 있는 것과는 달리 중국이 땅이 넓고 지방에도 훌륭한 대학들이 포진해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관료 사회도 중국은 한국과 큰 차이가 있다. 우선 공산당이 집정당인 만큼 관료사회도 정부행정 지도기관 외에 공산당 지도기관이 있는데 물론 당 지도기관의 권력이 더 막강하다. 중국에서 당서기가 시장보다 권력의 서열에서 더 앞에 있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상식에 속한다. 또 각 기관부서 중 당기관의 조직부가 가장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알아야 할 기본 상식이다. 다만 당 조직부의 파워는 해당 관료가 제멋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적에 따른 평가를 통해 어느 정도 규범화되어 있다는 점도 명기할 필요가 있다.
중국도 지연이나 학연 및 선후배 간의 특별한 관계를 중시하지만 한국과 다른 점은 이런 것이 다만 ‘관시’의 초기 조건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서로 경쟁 상대로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학연, 지연이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 올 때도 있다. 반면, 비록 우연히 알게 된 사이더라도 서로 끊임없이 상호 간의 관계를 ‘윈-윈’의 실제 행동으로 활용하는 것이 확고한 ‘관시’를 형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즉 아무리 학연, 지연으로 원래 잘 아는 사이였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연락이 없고 상호 간에 ‘윈-윈’ 결과를 가져 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들은 당사자의 ‘관시’ 범위에서 멀어져 있다. 사실 ‘관시’는 이전부터 서로 간의 정보 교류의 역할, 즉 이른바 ‘거래비용’을 줄이는 역할을 해왔다. 현대사회에서 인터넷이나 트위터가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 간의 감정이 오가는 정보교류 역할을 대체할 수 없다. 바로 서로 믿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윈-윈’의 결과가 발생되는 것이다. 일부 한국인들은 중국의 ‘관시’ 성격을 오해해 반드시 뇌물을 주고받거나 권력과 금전과의 거래를 하는 불법적이고 불명예스러운 행위로 보고 있는데 이는 오해다. 현재 중국에서 부정부패와 연관된 ‘관시’ 문화가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전부가 아니며 반드시 공중도덕을 위반해야만 ‘윈-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 ‘관시’ 문화에 대한 오해 중의 하나는 음주를 포함한 고급 식사 접대가 ‘관시’ 형성의 전제일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일반적으로 중국인들도 한국인들처럼 술 문화를 통해 ‘관시’를 형성하고 재확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너무 고급적인 음식 접대는 오히려 관시 형성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 사이에 서로 주고받아야 친근해 질 수 있는데 너무 고급스러운 접대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받기만 하고 줄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한 번의 술 접대에서 취중에 형님동생 했다고 해 ‘관시’가 형성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관시’는 장기간에 걸쳐 쌓인 신뢰의 결과다. 특히 어떤 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급히 관련 인사를 고급 식당에 초청해 식사하거나 귀중한 선물을 주는 것은 ‘관시’ 형성보다는 오히려 매수에 가까운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금물이다. 법을 어기지 않은 전제하에서 자발적으로 도와주려고 하는 친구를 평시에 많이 사귀어 두는 것, 이것이 중국 ‘관시’ 문화를 이해하는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