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 경기가 열린 2010년 11월29일 밤 9시. 마드리드 시내의 호프집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기자도 마드리드 시내의 한 호프집을 찾았다. 이날 경기는 바로셀로나의 일방적인 리드 속에 5-0으로 끝이 났다. 경기 도중 사람들에게 스페인 재정위기에 대해 물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경기를 관람하던 커슈슈타인씨는 “정부는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가뜩이나 축구 경기가 풀리지 않자 그는 더 흥분한 듯 보였다. 그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경제를 다 합쳐도 스페인의 절반밖에 안 된다”면서 “스페인이 그런 작은 나라들하고 같은 취급을 받는 동안 정부가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침울한 분위기가 고조됐다. 리오넬 메시가 발빠른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오! 메시”라는 탄식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재정위기에 빠진 스페인의 모습이 흡사 이날 마드리드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졌다.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한 저축은행의 위기가 국가 위험으로 전이된 스페인 재정위기는 이미 85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아일랜드의 그것과 비슷했다. 다만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은행 등 대표적인 은행들이 위기에 빠진 반면 스페인은 산탄데르, BBVA 등 대표적인 은행보다는 지방의 저축은행 중심으로 위기가 발생한 것이 차이점이다.
스페인의 부동산 경기는 2007년을 고점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현재 평균적인 부동산 시세는 고점 대비 30~40%가량 떨어졌다.
20%에 육박하는 실업률이 스페인 재정위기의 최대 원인
EU 재무장관들
이날 오후 시내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부동산 경기에 대해서 묻자 택시 운전사가 세세냐로 안내했다. 택시 운전사 레스터 로드리게스씨는 “내가 세세냐에서 마지막으로 일하던 근로자 출신”이라고 말했다. 세세냐 택지개발지구는 마드리드 남부에 위치한 곳으로 맨해튼에 비견되는 곳이었다. 총 1만7000가구를 지어 거대한 주거타운을 형성하고자 했던 계획은 2008년부터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7000가구만 지어진 채 2년째 중단된 상태다.
로드리게스씨의 안내로 현장을 찾자 철조망과 바리케이드로 놓여진 돌덩이들만 과거 이곳이 택지개발지구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인기척을 찾아볼 수 없는 이곳은 유령도시나 마찬가지였다.
로드리게스씨는 마지막으로 짓다 만 건물로 기자를 안내했다. 지하주차장까지 완성되고 1층에는 콘크리트와 철근만 남아 있는 상태다. 이곳 주변에는 크레인 잔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세세냐는 스페인에서 부동산 버블 붕괴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문제는 부동산 버블 붕괴가 금융권의 부실로만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드리게스씨는 “세세냐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전국에서 건설 근로자들이 모여들었다”면서 “나는 운좋게 택시 운전사가 됐지만 당시 일하던 근로자들의 상당수가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했던 건설업의 붕괴는 대규모 실업자 양산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유럽연합(EU) 최고 수준인 20%에 육박하고 있다. 높은 실업률은 내수 침체는 물론 과도한 복지 예산 지출의 원인이 되면서 저축은행의 위기와 함께 스페인 재정위기의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
디에고 카노 마드리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시장을 더 유연하게 바꾸고 저축은행의 부실을 털어내는 것이 스페인 위기 극복의 주요 과제”라고 말했다.
다음 행선지는 포르투갈 리스본이었다. 축구 경기에 열광하는 마드리드의 분위기에 비해 리스본의 분위기는 더욱 침체돼 있었다. 리스본에서는 대다수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2010년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장식물 점등을 시작하고 축제 분위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곳곳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달리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서 축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리스본 최대 번화가인 리베르다드 거리 곳곳에 흰색 장식물이 점등됐다. 중심 광장은 물론 곳곳에 펼쳐진 흰색 조명등도 침체된 분위기를 살려내지 못했다. 오히려 곳곳에 걸려 있는 총파업 참여 촉구 현수막이 포르투갈의 분위기를 더 잘 대변하는 듯했다.
방만한 재정 운용이 포르투갈 위기 자초
아일랜드 시민들의 시위 모습
2010년 11월24일 포르투갈 근로자 300만명(주최 측 추산)은 정부의 긴축재정에 반대하는 총파업에 동참했다. 1988년 이후 22년 만의 총파업이었지만 당시 180만명이 참여한 것에 비하면 참가 인원이 큰 폭으로 늘었다. 재정 관리를 잘못한 것은 정부임에도 복지예산 축소로 근로 계층에만 희생이 강요되고 있다는 노동계의 주장이 국민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한 결과였다.
총파업 집회가 열렸던 호시우광장에서 만난 페르난도 멘드스씨(50)는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에는 관심 없이 자리보전만 하고 있는 이 나라 정치인들과 국민이 굶어 죽어도 미사일만 쏘고 있는 김정일이 뭐가 다르냐”면서 “포르투갈 정치인들을 모두 북한으로 보내 버리고 싶다”고 격분했다.
이 같은 국민 정서 속에서 치러진 총파업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추진했던 긴축재정안은 대부분 원안 그대로 2010년 11월26일 의회를 통과했다.
출판업체 푸낙에 근무하며 파업에 참여했다는 주아몽 올리베이라씨(30)는 “총파업으로 공분을 모았다고는 하지만 저항이라기보다 민주적 절차에 따른 의사표시에 불과했다”면서 “정부는 총파업으로 인한 어떠한 위협도 받지 않았다”고 허탈해 했다.
포르투갈 정부가 추진한 긴축재정안은 공공부문의 임금 5% 삭감과 부가가치세를 현행 21%에서 23%로 2%포인트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포르투갈 위기는 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방만한 재정으로 재정이 취약해진 데서 비롯했다. 일례로 2010년 3분기 포르투갈의 경제성장률은 1.5%에 머물러 있다. 2009년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성장이 멈춰버린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에 따르면 2010년 정부 부채는 1506억유로로 GDP 대비 87.1%까지 치솟았다.
자유의 거리 인근 커피숍에서 만난 엘시도 넬시규씨는 “EU에서 양극화 정도로 따지면 터키 다음이 포르투갈”이라며 “그러나 정부 대책은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EU로부터 받은 막대한 지원금도 제대로 못쓴 것이 지금의 포르투갈 정부”라며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아일랜드의 EU·IMF 구제금융 반대 시위
국민 사이에는 아일랜드 다음 타자가 포르투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세르지오 비에이라씨(65)는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받는 것은 불가피해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포르투갈을 떠나는 사람도 늘고 있다. 6년 전 브라질에서 이민왔다는 호부스씨는 “그때는 건설 노동자로 살 만했지만 이제 이 나라에서는 희망이 없다”며 “브라질이 훨씬 더 전망이 좋을 것”이라 비꼬며 귀국행 비행기를 탈 것이라고 말했다. 포르투갈 위기는 재정 위기다. 경제가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방만한 재정 운용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나라의 곳간이 텅 비어버린 것이다. 포르투갈의 2009년 국내총생산(GDP)은 전년에 비해 2.5% 감소했으나 공공부채는 1259억유로로 GDP의 76.8%까지 치솟았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는 이미 포르투갈 경제를 나락으로 밀어넣고 있다. 리스본의 ‘명동’쯤 되는 알발리드와 살다냐에는 비어 있는 점포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금싸라기 땅이 주인을 찾지 못해 을씨년스럽게 방치돼 있는 것.
알발리드 거리 대표 쇼핑몰이었던 알발리드 쇼핑몰은 한때 30여개 점포가 있었지만 지금은 옷가게, 애완동물 가게 등 4~5개 점포만 운영되고 있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말가리다 프레자옹씨는 “옆에 있던 중국음식점은 점심시간마다 인근 공무원들이 줄을 서서 밥을 먹던 곳”이라면서 “그런데 손님이 없어 폐업한 지 1년이 다 돼가는데도 다른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는 유통업계의 트렌드마저 바꿔놓고 있다. 리스본 아마도라에 있는 점보마트는 ‘폭탄세일 구역’을 신설해 대박이 났다. 싼 제품만 판매하는 매장을 만들자 판매가 늘어난 것이다. 점보마트를 운영하는 가브리엘 코스타씨는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이제는 싼 물건밖에 팔리지 않는다”며 “정가를 주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동 중 만난 택시 운전사 독토르 코레이아씨는 “소득이 10%나 줄었다”며 “승객들도 경제 위기만 얘기한다”며 걱정했다. 위기는 코레이아씨에게도 현실이다.
그는 “택시 영업이 안 되면서 영업권을 내놓는 사람이 늘어 라이선스 가격도 8만3000유로에서 7만5000유로까지 떨어졌다”고 한탄했다. 국민들의 분노와 허탈감이 워낙 크다 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는 일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반중 감정이다.
지난달 초 포르투갈을 찾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이 지원을 언급하면서 포르투갈 국민들의 ‘역린’을 건드려 버린 것이다.
자유의 거리에서 만난 사웅 산토스씨는 “포르투갈 국채 매입 가능성을 언급하는 후진타오 주석의 모습은 중국의 탐욕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산토스씨는 “중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며 앞으로 중국 물건은 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리스본에서 더블린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때 아닌 기습 폭설로 아일랜드 더블린 공항이 폐쇄됐기 때문이다. 마침 IMF와 아일랜드가 구제금융 세부 내용에 대한 합의문에 서명한 이날 아일랜드에서는 10년 만의 폭설이 내렸다.
리스본 공항에서 오전 11시20분에 출발한 뒤 오후 3시40분에 파리발 더블린행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이었지만 더블린 공항 폐쇄로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두 차례 출발이 연기된 뒤 탑승했다. 그러나 비행 시작 한 시간 남짓 지났을 때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여전히 더블린 공항의 기상이 좋지 않아 밸파스트로 항로를 변경했습니다.” 벨파스트에 도착한 것은 오후 10시30분. 이곳에서 에어프랑스사가 마련한 버스를 타고 더블린으로 출발했다. 2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였지만 폭설로 노면 상태가 좋지 않아 4시간 이상 소요됐다. 새벽 2시30분에 겨우 도착한 더블린에서 택시 잡기는 전쟁에 가까웠다. 200여명의 도착 승객들이 한꺼번에 택시 잡기에 나서는 바람에 택시를 잡는 데만 두 시간 이상 소요됐다.
더블린으로 가는 길은 암울한 아일랜드의 상황을 말해주는 듯했다. 2010년 12월2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은 도로를 마비시켜버린 폭설에 구제금융의 고통까지 더해지며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었다. 이 교통체증은 ‘구제금융 극복을 위한 험난한 여정’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아일랜드 시민들이 재정 긴축에 따른 여파를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공무원을 제설작업에 동원하려면 초과근무 수당을 줘야 한다. 그런데 EU·IMF에 “허리띠를 졸라매겠다”고 약속한 첫날이다보니 제설작업마저 멈칫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일랜드 “부동산으로 흥한 자 부동산으로 망한다”
Xinhua
택시 운전사 제임스 오하라씨는 “정부 씀씀이는 고위층 연봉부터 줄이면 되지 제설작업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정부가 하는 일이 이렇게 주먹구구식이니 나라가 구제금융까지 받게 된 것 아니냐”며 정부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구제금융의 고통은 벌써부터 현실이 되고 있다. 한 가족이 담보대출을 갚기 위해 이틀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전기도 끈 채 생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더블린 시민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더블린 번화가 템플바에서 만난 다니엘 맥라렌씨는 “생계형 대출자를 투기꾼들과 똑같이 대우하는 정부의 행태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탈리아 국적으로 아일랜드 축구팀 감독을 맡고 있는 조반니 트라파토니는 위기 극복을 위해 임금을 덜 받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한때 ‘셀틱의 호랑이’라 불리던 아일랜드가 위기에 직면한 것은 호시절에 무분별하게 이뤄진 부동산대출 때문이었다.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떨어졌고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금융권 부실이 심해진 것이다.
아일랜드는 1990년대 건축 활성화를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의 정책을 폈다. 당시 경제학자들도 건축 경기를 살리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건축업의 부흥은 아일랜드 국가 경제의 부흥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이후 아일랜드가 고효율 고소득 국가로 이름을 높이게 된 중심에는 부동산 정책의 뒷받침이 있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부동산으로 흥한 자 부동산으로 망한다”는 교훈을 줬다. 아일랜드 기업연합회 퍼갈 오브라이언 수석연구원은 “아일랜드의 1990년대 10년은 다른 나라들이 벤치마킹하려고 한 역사적 교훈을 줬다면 2000년대의 10년은 따르지 말아야 할 교훈을 줬다”면서 “부동산 버블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국가라면 아일랜드의 사례에 대해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의 생명을 연장시킨 것이 결국엔 정부의 곳간까지 비게 만들면서 EU·IMF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에이단 오하라 외무부 국장은 “아일랜드에서도 일부 모기지 규제가 있기는 했지만 거래세가 9% 수준인 반면 재산세가 없었던 것이 문제”라면서 “보유 자산에 대한 세금이 없었던 것이 부동산 투기를 부추긴 면이 있다”고 개탄했다.
더블린 거리 곳곳에는 아직도 아일랜드 위기를 촉발시킨 부동산 버블의 흔적들이 지키고 있다. 관공서가 밀집해 있는 세인트스티븐그린 스트리트에는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임차인을 구한다는 표지판이 나붙어 있다. 그리스에 이어 유럽 내 두 번째 ‘구제금융 신청 국가’란 불명예를 안게 된 아일랜드는 2010년 그 어느 때보다 춥고 긴 겨울을 나야 한다.
EU·IMF와 체결한 구조개혁안은 4년 동안 150억유로(약 22조6840억원) 적자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 씀씀이를 줄여 100억유로를 아끼고 세금을 50억유로 늘린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당장 최저임금을 시간당 1유로 축소(7.65유로)하고 공공 부문에서 2만4000명을 구조조정한다.
개인으로서는 수입·지원이 줄어드는 반면 지출은 더 늘어나게 된다. 당장 2011년부터 수도세가 부과되고 2012년에는 재산세가 도입된다. 또 2014년부터는 부가가치세도 높아진다.
또 정부는 ‘가능한 한 최단시간 내에’ 정부가 보유한 은행 지분을 비롯한 각종 자산을 팔아야 한다. 다만 법인세는 올리지 않기로 했다. 김창엽 주아일랜드 한국대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법인세를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한 데 대한 기업들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위기에도 불구하고 기업들 실적이 큰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이 현재 아일랜드가 가장 믿는 구석이다.
아일랜드 기업연합회 퍼갈 오브라이언 수석연구원은 “2010년 아일랜드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8% 이상 늘었다”면서 “아일랜드 사태는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한 금융위기이기 때문에 민간부문의 수출 경쟁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일랜드는 2009년 386억 유로 무역흑자를 기록했으며 2010년 들어서도 10월까지 월 평균 35억 유로 규모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더블린을 떠나기 위해 잡아탄 택시의 운전사는 대놓고 팁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택시 영업이 너무 안 된다. 제발 팁을 좀 달라”고 했다. 그래서 5유로를 주기로 하자 이번에는 다짜고짜 “5 유로를 더 달라”고 했다. 이번마저 주겠다고 하면 또 다시 요구할 기세였다. 결국 마지막에 내릴 때쯤 5유로를 더 주기로 했다. 팍팍한 민생이 택시 운전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었다. 택시에서 내리려 하자 “오늘 술집에 가면 여자가 꼬일 것”이라고 덕담을 건네며 환하게 웃는 그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