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서 때아닌 운하 건설로 시끄럽다.
‘아세안에서 웬 운하’라고 할 수도 있지만, 태국 남부의 끄라지협은 오랫동안 지구촌 새 운하 건설의 후보지였다. 이곳의 운하 건설 계획은 인도양과 태평양의 운항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는 매력적인 프로젝트로 지속적 관심을 받아왔다. 하지만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선 곳은 아니다. 아직 계획조차 불확실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현재 아세안서 운하가 건설되고 있는 곳은 캄보디아다. 지난 8월 5일 공식 기공식을 열었고, 현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운하의 이름은 ‘푸난 테코’로 수도 프놈펜에서 타이만까지 연결하는 180㎞길이로 건설된다. 캄보디아 정부가 이 운하를 추진하는 것은 빈약한 자체 물류망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끄라운하와 달리 지구촌 전체의 해상운송 편의성을 높이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캄보디아 정부가 다소 갑작스럽게 운하 건설을 추진하긴 했지만, 크게 역내에 파장을 일으킬 만한 내적 요소가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끄라운하는 기존 해상 요충지인 말라카해협을 우회해 인도양과 태평양을 오가는 물류길을 만든다는 점에서 아세안 역내 및 글로벌 지정학적인 면에서도 주요 변수로 여겨져 왔다. 그만큼 주변국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단 얘기다.
하지만 이 운하 건설의 소위 ‘물주’가 중국으로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푸난 테코뿐만 아니라 운하 건설은 기본적으로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데, 중국이 이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현재까지 추정된 푸난 테코 운하 건설의 사업비는 약 17억달러(약 2조 3443억원)다. 물론 중국이 사업비를 댄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원래 친중 국가인 캄보디아의 입장을 생각하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창구로 중국만 한 곳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중국이 부담하겠다고 한 운하 건설 자금이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BRI) 관련 예산에서 나온다는 점은 다른 국면이다. 일대일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표적인 대외정책으로 옛 실크로드의 현대판 구상이다. 글로벌 해상 요충지를 연결해 중국만의 지정학적 루트를 만들겠다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천명한 후 중단 없이 추진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약소국들을 돈으로 사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끊이지 않아 국제사회의 시선도 곱지 않다.
때문에 단순한 원조와는 다른 차원의 자금 지원에 아세안 역내에서는 중국의 속내가 무엇인지 바짝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캄보디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베트남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 일대일로의 특성을 감안하면 운하가 캄보디아 내 물류망 개선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다른 용도로도 쓰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번 운하 건설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곳이 메콩강을 두고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베트남이다.
현재 역내 주변국 및 국제사회에서 의심하는 대목은 중국이 캄보디아 운하를 통해 내륙 아세안에서 군사적 행동을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중국의 군함이 운하를 통해 인도차이나 반도 깊숙이 들어올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인데, 실제 이 같은 일이 벌어지면 베트남은 코앞에서 중국의 군대를 마주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실제 운하의 최종 종착지인 타이만과 연결되는 케프(Kep) 지역은 중국의 해군이 주둔하고 있는 리암(Ream)과 그리 멀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운하길을 통해 타국 군함이 인도차이나 반도 깊숙이 들어올 수 있다. 리암은 캄보디아 해군의 주요 거점이지만, 중국 해군이 이곳에 주둔하며 사실상 자국의 해외 기지로 이용하는 곳이다.
아시아 외교 전문지인 더디플로맷은 “BRI 지원 인프라 프로젝트를 따라가다 보면 라오스, 스리랑카, 지부티 등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지정학적 요충지들을 만나게 된다”면서 “캄보디아운하 프로젝트에서도 중국의 전략적 노림수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더디플로맷은 “캄보디아의 남부 해안 지역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사이의 석유가 풍부한 대륙붕에 가깝고, 이 중 일부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자칭 ‘U자형’ 해양 주권 주장에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남중국해는 국제 공역이지만, 중국은 이곳이 자기네 영토라며 현재 막무가내식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중국과 캄보디아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다”며 부인한다.
이 운하 건설이 또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아세안의 젖줄인 메콩강과 관련이 있다. 운하 건설 계획으로 메콩강의 생태 환경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도 인접국인 베트남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현재 가장 큰 우려는 운하 건설로 메콩강의 물 흐름이 줄어들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미 메콩강 일대는 중국이 강 상류에 만든 댐으로 인해 물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데, 여기에 운하 건설이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아예 물의 무기화를 걱정하고 있다. 푸난 테코 운하가 댐 역할을 하여 메콩강 하류 흐름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베트남 남부의 농업과 어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베트남은 캄보디아가 운하 건설 계획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본다.
일부 전문가들은 캄보디아의 대규모 쌀 생산 지역도 운하 건설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캄보디아 개발위원회 제1부위원장인 선찬톨 부총리는 “운하는 토지 관개 및 어업에도 사용될 것”면서 “방향이 바뀌게 될 물은 ‘양동이의 한 방울 물’처럼 미미한 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캄보디아 정부가 발표한 운하 루트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자치항구에서 시작해 메콩강의 지류인 바싹강(Bassac River)을 타고 내려오다가 코톰(Kaoh Thum) 지역에서 타이만과 접해있는 케프(Kep)주로 이어진다.
운하 공사는 총 3 구간으로 나눠 진행된다. 첫 번째는 메콩강과 지류인 바싹강을 연결하는 과정이다. 총 20km 구간이다. 두 번째는 30km 구간으로 바싹강을 그대로 이용하게 된다. 다만 운하 완공 후 대형 선박들이 오가게 돼, 준설 등 정비 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째가 이번 운하건설의 메인 구간인 캄보디아 중부지역과 타이만을 연결하는 내륙 수로를 만드는 구간이다. 총 130km 구간으로, 칸달(Candal), 타케오(Take0 o), 깜폿(Kampot), 케프(Kep) 등 총 4개주를 관통한다.
훈마넷 총리가 기공식을 가진 타케오 지역은 운하 건설의 중간 지점에 해당된다.
푸난 테코 운하는 상부 폭 약 100m, 하부 폭 80m, 수심 5.4m로 설계됐다. 선박이 상호 오갈 수 있도록 2개 차로로 이뤄진다. 운항 가능 선박 중량은 건기에는 최대 3000톤(DWT), 우기에는 최대 5000톤이다. 운하에는 3개의 댐과 11개의 교량도 들어선다.
이렇게 설계된 푸난 테코 운하의 총 공사 예정 기간은 4~6년이라는 것이 캄보디아 당국의 설명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현재 추산된 운하 건설 총 사업비는 약 17억달러(약 2조 3443억원) 규모다. 하지만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내륙 수로 건설 구간의 지형이 어떤지 어떤 공법으로 운하를 파게 될지 등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특히 암반 등이 많으면 공사가 더 까다로워져 사업비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태국 남부 끄라지협의 운하 건설 계획은 아무리 루트를 길게 잡아도 푸난 테코보다는 짧다. 하지만 현재 추산되는 사업비는 30조~40조원 정도다. 이는 해당 지역의 고도차가 심하고 지형도 험준해 공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금액도 충분할지 공사를 진행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만일 푸난 테코 운하 공사도 난항을 겪는다면 사업기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중국이 자금을 전적으로 대지만 지분은 캄보디아 측이 더 많이 확보했다는 점이다. 공사가 끝나면 캄보디아 정부가 51%, 중국 측 파트너인 중국도로교량공사(CRBC)가 49%의 지분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는 외견상일 뿐이다. CRBC는 운하 완공 후 40∼50년간 운영을 독점한다. 그 이후에 캄보디아 측에 반환을 하게 되는데, 운영을 책임지는 기간 동안 운하 이용 정도에 따라 원금은 물론 수익도 챙겨갈 수 있다.
애초 이 운하는 톤레 바싹 운항 로드와 물류 시스템 프로젝트였다. 훈센 전 총리 때 계획됐다. ‘테코’란 말은 크메르어로 ‘강력한’이란 의미를 뜻한다.
캄보디아가 밝힌 운하 건설의 목적은 만성적으로 부족한 국가 물류 인프라를 강화해 인접국인 베트남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캄보디아는 도로 등 물류 인프라 부족으로 자국의 수출입 항인 시아누크빌 항구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전체 수출입 물량 33%를 베트남 사이공 항구에 의존하고 있다. 이 문제를 운하 건설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인데, 훈마넷 총리는 이번 운하 건설을 두고 “우리의 코로 드디어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라고까지 한다. 그만큼 자체 물류길 확보가 숙원이었던 셈이다.
운하가 완공되면 사이공항을 통해 오가는 물량은 10% 정도로 줄어든다는 것이 캄보디아 당국의 추산이다. 이를 통해 운송 비용이 70%까지 절감될 수 있다고 본다.
선 찬톨 부총리는 “운하 개통 후 통행료 수입 등으로 첫 해에 연간 8800만달러, 2050년까지 연간 5억 7000만달러의 수익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약 16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 캄보디아 정부는 운하 건설 노선을 따라 경제 특구 건설, 관광산업 육성 등 부가가치 창출도 계획하고 있다.
[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