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마이카’ 시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주유소다. 차량 판매가 늘면서 주유소 숫자도 꾸준히 증가했고 주유소 업체 간 경쟁도 치열했다. 경쟁 업체가 어느 지역에 주유소를 내는지를 파악해, 인근에 자사 주유소 부지를 확보하는 것은 주유소 영업 인력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최근 전기차 판매가 늘고 주유소 수익이 줄면서 주유소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시골 도로를 달리다 보면 폐허처럼 놓여 있는 주유소를 쉽게 볼 수 있다.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주유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이제 주유소 회사의 주요 업무가 될 정도다. 이러한 고민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자원에너지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일본 주유소 숫자는 2만 7414곳으로 집계됐다. 일본도 최근 10년간 7200여 곳의 주유소가 문을 닫았다.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량의 등장으로 일본 내 휘발유 수요는 매년 2% 정도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주유소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얘기다. 1994년 6만 개에 달했던 주유소는 지난해 2만 7414개로 줄었다. 향후 10년 이내에 2만 개 안팎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도심 지역에서의 주유소 감소 속도가 빠르다. 도쿄도의 경우 인구 1만 명당 주유소 숫자가 0.638곳으로 가장 낮다. 땅값이 비싸 적절한 이윤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인근 가나가와현과 오사카부도 1곳을 밑돌았다. 인구 500만 명 이상의 도도부현(일본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홋카이도를 제외하고 사이타마현, 지바현, 효고현, 아이치현, 후쿠오카현 등도 하위 10위에 꼽힌다.
일본에서도 주유소 감소의 원인으로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저연비차가 등장하면서 이용자가 과거보다 적게 찾게된 것을 꼽고 있다. 지방의 경우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기관이 취약해 자가용이 중요한 교통수단이고,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주유소 이용률이 높다. 반면 도심에서는 대중교통 활용이 많고 공유차량 보급도 확대되면서 주유소를 들를 기회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일본 최대 정유 업체인 에네오스(ENEOS)가 운영하는 도쿄도 아다치구의 주유소 ‘닥터 드라이브 셀프호키마점’은 최근 창고로 변신했다. 주유소는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있고 공간이 넓어서 대형 트럭 등의 주차가 쉽다. 주유소 내에 편의점이 같이 있는 곳도 생기면서 트럭 운전사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강점을 살려 에네오스는 지난해부터 수도권 70여 곳의 주유소에 물건을 일시 보관할 수 있는 창고를 추가했다. 창고에 보관되는 물건은 주유소로부터 반경 2㎞ 이내에 거주하는 주민이 배달을 요청한 것이다.
물류회사가 이곳에 짐을 보관하면, 주민이 자전거 등을 타고 와서 짐을 찾아가는 구조다. 일정 비용을 받고 여기 물건을 집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특정 거점에 물건을 한꺼번에 내려놓기 때문에 물류 회사로서는 배송에 걸리는 시간을 30~40% 줄일 수 있다. 주민은 배송비 할인 혜택을 받는다. 에네오스는 물류회사로부터 배송비를 받기 때문에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게 된다. 회사 측은 실증 시험을 거쳐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2위 정유 업체인 이데미츠코산은 지바현 주유소 17곳을 고령자 지원 거점으로 운영 중이다. 전문 스태프 16명이 주유소로부터 3~4㎞ 인근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각종 민원을 해결해주는 것이다. 요금은 시간당 3000엔부터인데 70~90대 노인 400여 명이 현재 이용하고 있다. 이들은 “새로 산 스마트폰의 설정을 도와달라”라거나 “손자의 결혼식에 갈 수 있게 도와달라” 등 다양한 요청을 쏟아낸다고 한다. 업체는 조만간 상속이나 주택 매각 등과 같은 상담으로도 범위를 넓혀갈 예정이다. 또 지역을 확대해 10년 이내에 이용자를 1만 명으로 늘린다는 각오다.
일본 3위 정유업체인 코스모에너지홀딩스는 2021년부터 주유소를 재생에너지 판매 영업 거점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전기와 태양광 패널, 전기자동차(EV) 등을 판매하는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특히 코스모에너지가 주력하는 사업 중 하나인 풍력발전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인근 지자체에 제안하고 있다. 또 코스모에너지에서 운영하는 주유소에서는 주말에 사용하지 않는 전기차를 인근 지역 주민에게 빌려주기도 한다. 또 코스모에너지는 최근 가정에서 사용이 끝난 튀김기름을 주유소에서 회수해 재생항공연료(SAF)로 재이용하는 실증 시험도 시작했다. 도쿄도 내의 주유소 3곳에서 사용이 끝난 기름을 모은 뒤, 이를 SAF 생산설비에 보내 가공하는 것이다.
현재 코스모는 네리마구와 나카노구, 미나토구의 주유소에 회수 상자를 설치했다. 가정에서는 페트병 등에 기름을 넣어 이곳에 두면 된다. 이로 인해 소비자가 얻는 금전적 이익은 없다. 기름을 굳혀서 버려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는 정도다. 이데미츠코산은 최근 드론을 사용한 서비스의 사업화를 검토하면서 주유소를 관련 거점 또는 유지보수 시설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데미츠코산은 2021년 부터 후타바전자공업과 함께 산업용 드론 2종류를 개발했다. 배터리를 제외한 드론 자체 무게는 약 10㎏으로 이를 분해해서 상자에 넣으면 택배 배송도 가능하다.
이데미츠코산이 드론 거점으로 주유소를 주목하는 것은 재해가 발생해도 바로 에너지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여기에 주유소에는 특별한 내진 설계가 들어가는데, 이 경우 재해 시에도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더해 이데미츠코산은 과거 주유소였던 곳을 코팅이나 세차, 경정비 등을 하는 곳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적자 심화로 문을 닫은 주유소를 코팅·세차 전문점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주유소는 지하 저장 탱크를 비롯해 특수 설비를 갖추고 있고 토양 오염 위험도 있기 때문에 해체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코팅·세차 등의 서비스는 기존 설비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이 장점이다. 이데미츠는 코팅·세차를 넘어 판금·도장과 차량공유 등 자동차 관련으로 서비스를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최근 홋카이도에 선보인 3호점은 중고차 판매점을 겸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점포를 2030년까지 250개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