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재선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TV토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지난 7월 13일 총격 사건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으며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정책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노믹스 2.0’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정책이 트럼프노믹스 1.0 못지않게 매우 빠르고 강력히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 공화당 계열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경제·통상 담당 앤서니 김 연구원은 “트럼프는 이미 대통령을 4년 역임했기 때문에 이번에 당선돼도 2028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면서 “이에 따라 4년 내 효과를 보기 위해 몇 가지 핵심 이슈에 대해 과감히 정책 변경을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집권과 동시에 단임이 예정된 대통령이므로 숨 고르기 없이 돌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트럼프 2기 정책의 방점은 무역과 산업 정책에 찍힌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트럼프노믹스 1.0이 대규모 감세를 바탕으로 경제 부흥을 꾀했다면 이번에는 관세가 주력 무기가 된다는 말이다. 통상정책이 전대미문의 보호무역주의가 되면서 전면적인 글로벌 무역전쟁이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 시 미국 재정 적자를 줄이고 자국 제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10% 보편 관세를 추진 중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최대 60% 관세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DC 소재 싱크탱크인 머리디언 리서치 그룹의 존 덩컨 대표는 “트럼프의 10% 보편관세는 단순한 수사가 아닌 진지한 계획”이라면서 “취임과 동시에 2025년 1분기에 단행될 수 있다”고 밝혔다. 10% 보편관세는 1971년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긴급조치로 단행한 바 있고, 지금도 대통령의 권한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의회의 승인 없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관세 인상은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산업 정책은 바이든 뒤집기가 될 전망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대표되는 친환경 산업 정책을 폐기하고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과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확충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IRA 혜택을 기대하고 있는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좌불안석이다. 친환경 보조금 등이 일순간에 사라질 수 있고, 환경규제에 맞춘 제품이 설 자리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정치권에 정통한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트럼프는 반(反)바이든 산업 정책에 올인할 것”이라며 “IRA를 믿고 투자한 한국 기업은 보조금 삭감 등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IRA 자체는 법률로 제정된 것이기 때문에 미 의회에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임을 감안할 때 완전 폐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세제 정책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법인세와 개인소득세가 크게 완화됐기 때문에 조정 수준의 감세 전망이 많다. 트럼프는 2017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크게 인하한 바 있다. 재정 정책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 이어 확장 정책이 펼쳐질 예정이지만 경기 상황을 감안해 그 수준이 정해질 전망이다.
통화 정책은 완화된다는 전망이 많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문섭 UC샌디에이고 교수는 “트럼프는 집권 당시 연준의 기준금리 발표 직전마다 금리 인하를 트위터에서 요구했었다”면서 “연준이 트럼프 재집권 시 과거와 같은 긴축 입장을 유지하기는 힘들어질 것이고, 미국에서 기준금리가 다시 1%대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 분야를 보자면 중국과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트럼프 1기 당시 이미 미·중 갈등이 절정을 찍었고,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미·중 갈등은 크게 완화되지 않았다. 특히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부르짖으며 압도적 세계 1위 대국을 꿈꾸는 트럼프는 2위인 중국을 더욱 압박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최대 60% 관세, 최신 반도체 수출 금지 등 직접 조치들과 함께 동맹국과의 간접 조치들을 동시에 펼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동맹국은 미국의 국익에 따라 운명이 엇갈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기술 개발을 억누르면 그 사이 한국과 같은 반도체 주력 국가가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중국에 대한 봉쇄를 위한 파트너로 미국이 일본을 선택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미국의 공격에 대한 중국의 대응 공격으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류젠차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올해 초 미국 싱크탱크와의 비공개 회의에서 “트럼프 치하에서 우리는 나쁜 경험을 했다”며 거부감을 표시한 바 있다. 그는 중국 차기 외교부장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외교는 일반적인 동맹국과의 관계라기보다는 이슈에 따른 접근이 이뤄질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이 세계질서를 안정시키는 리더로서의 역할보다는 ‘미국 우선주의’ 외교가 자리를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이슈가 주한미군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철수를 내세우며 한국에 더 많은 분담금을 요구할 수 있다.
트럼프 재집권 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후보로 거론되는 엘브리지 콜비 전 미국 국방부 전략·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는 “외국 정부와의 협정이 신성하다는 아이디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협정은 상식적이어야 하며 장기적으로 상호 호혜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에 트럼프의 재등장은 악재로 분석된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집권 시 유로존에 인플레이션이 0.1%포인트 오르고 국내총생산(GDP)은 약 1%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최근 경제적으로 취약해진 유로존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1기 말인 2018~2019년 그의 보호무역주의로 유로존 산업생산은 약 2% 감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