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본의 최대 고민거리는 ‘사람’이다. 우리보다 많은 1억2000만명의 인구가 있는 나라에서 무슨 얘기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 모든 영역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통계지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올해 4월 실업률은 2.3%다. 최근 수년간 일본 실업률은 2% 안팎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숫자로 보면 대략 190만명 안팎이 된다. ‘이렇게 놀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이 일하면 되지 않느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때 참고할 수 있는 지표가 ‘유효구인배율’이다. 이는 구직자 1명당 구할 수 있는 일자리 숫자를 보여주는 것으로 숫자가 높을수록 일자리가 많다는 의미다. 지난 4월 일본의 유효구인배율은 1.26을 기록했다. 전달보다 0.02%포인트 하락했음에도 여전히 구직자에게는 1개 이상의 일자리가 있다는 의미다. 이를 고려하면 실업자 상당수가 보다 나은 일자리를 위해 현재 잠시 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즉 현재의 실업률은 일본에 있어서는 의미 없는 숫자라는 분석이다.
현재 법적으로 보장받는 일본 기업의 정년은 만 60세다. 2000년부터 만 65세 고용노력의무화를 시행했는데, 이것이 완전히 법으로 보장받는 시기는 내년부터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이미 65세 정년을 일반화해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 2021년부터는 고연령자 고용안정법을 통해 기업이 정년을 70세로 늘리거나, 원하는 근로자에게 계약직 재고용 등의 방식으로 만 70세까지 고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많은 기업이 만 60세 정년, 이후 계약직 재고용으로 만 65세까지 근무하는 것을 일반화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 부족이 심화하면서 만 70세 고용을 일반화하려는 기업이 나오고 있다. 일본 대표 기업인 토요타는 65세 이상 시니어 사원의 재고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일부 직종에만 시험적으로 실시하던 제도를 오는 8월부터 모든 직종 사원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토요타 정년은 원래 60세이고 65세까지는 재고용 형태로 일할 수 있었다. 이번에 인사 제도를 바꿔 재고용 나이를 70세까지로 늘린다. 급여 등 세부 근로 조건은 현행 재고용 제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결정할 예정이다. 인테리어·가구 기업 니토리도 7월부터 직원이 60세 정년 이후 재고용 형태로 일할 수 있는 나이를 65세에서 70세까지로 높이기로 했다. 이 회사는 시니어 사원이 받는 급여 수준도 올려 일부 직원에게는 정년 퇴임 이전의 90%에 해당하는 보수를 지급할 방침이다. 고용 상한 나이를 70세로 높인 아사히맥주는 58세 이상 사원을 대상으로 그룹 내외 구인 정보를 제공하고, 메이지야스다생명보험도 촉탁 재고용 상한 나이를 65세에서 70세로 변경했다. 지퍼 제조로 유명한 YKK는 2021년 일본 사업체에서 정년제를 없앴고, 자동차 업체인 마쓰다는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높여가는 중이다. 도호쿠전력은 내년부터 재고용 나이를 70세까지로 단계적으로 높인다.
기업들이 고령자 재고용에 나서면서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에도 적극 나섰다. 통상 만 60세 정년 이후 시니어 계약직으로 일할 경우 급여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흔했다. 일본 기업은 정년 연장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되면 직책이나 퇴직금 등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 정년 후 계약직 채용을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토요타는 현재 60∼65세 사원이 부장 보직을 맡지 않는 경우 임금이 60세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정해진다. 이에 따라 60세 정년 시점에 회사를 아예 퇴직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토요타는 이르면 10월에 관련 제도를 개편해 공헌도 등을 근거로 추가 보상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스즈키의 경우 60세 이상 재고용 사원의 기본급을 현역 수준으로 유지하는 새로운 인사제도를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일률적으로 급여를 최대 절반까지 줄였는데 앞으로는 제대로 보상해주기로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스즈키는 60세 이상 65세 미만의 약 1200명을 대상으로 정년 전에 한 것과 같은 내용의 업무를 이어가는 것을 조건으로 65세까지 재고용하고, 기본급 또한 유지해주기로 했다. 자동차부품 업체인 니혼세이코와 배터리 업체인 GS유아사 등도 시니어 사원의 기본급을 인상하는 방법으로 임금 현실화에 나섰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일하는 사람의 비중은 전년보다 14만명 늘어난 1468만명으로 취업자 전체의 21.8%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65~69세의 취업률도 전년 대비 1.2%포인트 증가한 52%로 절반을 넘었다. 나이가 들어도 건강에 자신 있는 고령 세대가 늘면서 이들의 취업 의욕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닛케이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70세 이상까지 일하겠다는 응답이 39%를 차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들의 정년 연장 움직임이 커지자 일본 재계는 아예 고령자 기준을 현행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도쿠라 마사카즈 회장과 니나미 다케시 경제동우회 대표간사는 5월 말 정부가 주최한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고령자의 건강 수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고령자 정의를 5세 늘리는 것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일본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 속도가 2030년대에 더욱 빨라질 것을 염두에 두고 모든 세대의 생산성을 높일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의견을 냈다. 일본 정부가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고령자’ 관련 정의는 없지만, 통상적으로 65세 이상을 고령자로 간주해 고령화율을 산출한다. 아울러 노령 기초연금 수령, 병간호 보험 서비스 이용, 대중교통 운임 할인의 하한 나이도 65세여서 실질적으로는 65세가 넘으면 고령자로 인식된다.
재계 제안처럼 고령자 기준이 올라가면 이러한 혜택을 받는 나이 기준도 자연스럽게 70세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고령자 인구 통계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일본 고령자는 362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9.1%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게이단렌은 외국인 노동자도 적극 수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 수는 지난해 10월 말 현재 204만8675명으로 10년 전의 2.9배가 됐다. 같은 시점의 취업자수는 6771만명으로, 외국인 노동자 비율은 3.03%로 집계된다. 게이단렌은 2040년에는 현재의 3배가 넘는 최소 674만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주요 7개국(G7)에서 일본 이외의 미국 등 각국은 인구에 차지하는 이민자의 비율이 10%를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