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기가 반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 중국 경제의 중심축인 수출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 경제를 둘러싼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가 잦아들고 중국 제조업 경기가 바닥을 찍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올해 4월 CPI가 1년 전 같은 달과 비교해 0.3% 상승했다고 5월 11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0.1%)를 0.2%포인트 웃돈 수치다. 중국 CPI는 지난 2월 춘제(春節·중국 설) 효과로 0.7% 오르며 6개월 만에 상승으로 돌아섰다. 이후 3월(0.1%)에 이어 지난 4월까지 3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게 됐다.
국가통계국은 이에 대해 “올해 4월에는 소비자물가가 전년과 지난 3월에 비해 모두 상승세를 보였다”며 “소비자 수요가 대체로 회복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1~4월 4개월 동안의 CPI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1% 올랐다. 최근 3개월 동안 CPI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중국 경제에 대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전보다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중국 경제의 회복 부진에도 불구하고 내수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내수와 소비도 서서히 살아나는 분위기다. 중국 문화여유부에 따르면, 올해 5월 노동절 연휴 기간(1~5일) 중국 내 여행을 떠난 중국인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증가한 2억 9500만 명에 달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서도 28% 증가한 규모다. 특히 이들 자국 여행객이 연휴 기간 동안 지출한 총 비용은 1668억9000만위안(약 31조5000억원)에 이르렀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는 12.7%, 2019년에 비해서는 13.5% 증가한 수치다.
올해 4월 청명절 연휴 기간(4~6일) 때에도 소비는 크게 늘어났다. 당시 중국 내 여행객은 1억 1900만 명으로 2019년 청명절 연휴 때보다 11.5% 증가했다. 지출한 총 비용도 12.7% 늘어난 539억5000만위안(약 10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앞서 중국 상무부는 올해를 ‘소비 촉진의 해’로 지정하고 내수 및 소비 진작에 힘써왔다. 이를 위해 구형 장비나 소비재를 신제품으로 교체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이구환신(以舊換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경제 성장률 목표인 ‘5% 내외’를 달성하려면 내수 활성화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중국 수출도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으며 호조를 보이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올해 4월 중국 수출액(달러 기준)은 2924억5000만달러(약 401조380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1년 전보다 1.5% 상승한 수치로 블룸버그 시장 예상치(1.3%)와 월스트리트저널(WSJ) 예상치(1.0%)를 웃돌았다. 한달 전인 지난 3월(-7.5%)과 비교해선 증가세로 전환했다.
국가별로 보면 4월 중국의 대일본 수출은 1년 전보다 10.9% 늘었다. 아세안이 8.1%, 대만이 4.0%씩 각각 늘었다. 반면 미국으로 수출은 2.8% 감소했고 호주와 한국으로의 수출도 줄었다. 같은 기간 4월 수입액은 8.4% 늘어난 2201억5000만달러(약 301조원)를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5.4%)를 크게 웃돌았다.
장즈웨이 핀포인트애셋매니지먼트 사장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내수 부진은 물가 하락으로 이어졌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중국 제품 가격을 낮춰 수출 경쟁력을 제고시켰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수출 증대는 글로벌 수요가 회복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향후 중국 경기 회복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의 제조업 경기도 두 달 연속 확장 국면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국가 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4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4로 집계됐다. 올해 3월(50.8)과 비교하면 0.4 포인트 하락했으나 시장 예상치(50.3)는 넘어섰다. 특히 지난해 3월 이후 약 1년 만에 2개월 연속 기준치(50)를 웃돈 것이다. 제조업 PMI는 기업 구매담당자 대상 설문조사를 통해 집계되는 경기선행지표로,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위축 국면이라는 뜻이다.
중국 제조업 PMI는 지난해 ‘리오프닝(경기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감으로 1분기 동안 경기 확장 국면을 보였다. 그러나 그해 4월 49.2로 하락한 뒤 8월까지 위축 국면을 이어가다 9월 50.2로 반등했지만 10월에 다시 하락했고, 이후 올해 2월까지 5개월 연속 50을 밑돌았다.
이번 PMI 수치를 두고 블룸버그는 “중국의 제조업 활동이 두 달 연속 확장 국면으로 진입해 세계 2위 경제대국의 경제 회복이 지속될 수 있다는 희망을 북돋우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저가 제품 수출이 서방의 ‘자국보호주의’ 등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도 경고했다.
중국 경제를 나타내는 여러 지표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지만, 장기 침체 중인 부동산 경기와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는 청년 실업률 등의 불확실성이 여전해 중국 정부가 추가 부양책을 꺼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건설업 경기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 최근에는 집값까지 하락하면서 중국인 중산층 사이에서는 우울증 상담을 받는 사례까지 늘어나고 있다. SCMP는 중국 기업 신용정보 제공업체 ‘큐씨씨닷컴’ 조사 결과를 인용해 2022년에만 정신 상담 기관 수가 전년 대비 60% 폭증했다고 전했다. 현재 중국 내 정신 상담 기관 수는 3만700개다.
상담 기관을 찾는 고객은 대부분 대졸자로, 이들 중 90%는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을 보유한 고학력자로 나타났다. SCMP는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이 집값에 있다며 “부동산 시장 위기, 코로나 팬데믹 19 이후 경기 회복 불투명, 고용 불안, 의료 및 교육 비용 상승 등이 중국 중산층의 정신적 고통과 무력감을 증폭시켰다”고 설명했다. 극심한 취업난도 젊은 세대의 우울감을 늘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6월 21.3%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러자 국가통계국은 청년 실업률 발표를 잠정 중단한 뒤, 지난해 12월 취업준비생을 제외한 새로운 통계 기준을 적용해 발표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통계 신뢰도와 정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보니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는 지급준비율(RRR·지준율) 추가 인하가 지목된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