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소비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1인 가구와 MZ세대(20·30세대)다. 일본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고령화를 가장 먼저 경험하고 있는 데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연간 결혼 건수와 신생아 출산 건수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만큼 1인 가구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MZ세대 또한 소비의 주역이 되고 있다. 이들이 물건 구매의 큰손으로 부상할 수는 없지만, 독특한 소비 트렌드는 기업들로 하여금 제품 생산 방식을 바꾸도록 만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출시되는 가전제품에 회사 로고가 없어지고 있는 현상을 집중하여 보도했다. 과거 브랜드 로고는 소비자 신뢰의 상징이었다. 소비자들이 한국의 경우 삼성이나 LG, 일본에서는 소니, 도시바, 산요의 로고를 확인한 뒤에 안심하고 물건을 사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일본 MZ세대의 경우 가전제품 디자인의 중심에 놓여 있는 회사 로고가 디자인의 매력을 떨어뜨린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가전을 인테리어의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가전제품의 기능이나 신뢰성 등이 전체적으로 올라간 상황에서 굳이 브랜드를 따지면서 물건을 살 이유가 없어진 경향도 있다. 전문가들은 “생활 가전제품의 경우 어느 회사의 제품을 선택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없다고 소비자들은 인식하고 있다”며 “과거처럼 대기업의 로고를 보고 물건을 사는 경향은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 소비자청의 2021년 조사를 보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 소비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로 ‘품질과 성능’이 55%로 1위로 꼽혔다. 이어 ‘비용 대비 효과’ 32%, ‘외관·디자인’ 22%로 각각 2위와 3위에 올랐다. 과거 제품·서비스 구입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던 ‘브랜드’는 6%의 응답에 그치며 9위에 머물렀다.
일본 생활가전업체 아이리스오야마는 지난해 서큘레이터를 출시하며 눈에 잘 띄는 부분에 항상 새기던 회사 로고를 없앴다. 로고는 뒷부분에 작게 새긴 대신 제품 전면을 깨끗한 이미지로 만들었다. 이 회사는 최근 공기청정기나 팬히터 등에서도 로고가 눈에 띄지 않는 제품을 늘리고 있다. 가전을 인테리어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면서 이들이 깔끔한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대형 가전업체인 샤프도 지난해 드라이어와 공기청정기전면에 등장하는 ‘SHARP’ 로고를 과감히 없앴다. 대신 제품의 기능을 설명해주는 ‘플라스마 클러스터’의 로고를 앞세웠다. 기술의 우수성을 알림으로써 소비자의 제품 구매를 끌어내겠다는 목적에서다.
창업 때부터 로고를 아예 붙이지 않은 회사도 있다. 2007년 오사카에서 창업한 생활가전업체 스리업(THREEUP)은 제품에 원칙적으로 로고를 붙이지 않는다. 이 회사에서 판매하는 선풍기와 가습기, 공기청정기 등은 매끈한 디자인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로고가 없다는 것도 여기에 한몫한다는 분석이다. 제품 구매자들로부터 “디자인이 어수선하지 않아서 좋다”는 평가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이러한 트렌드 변화에는 코로나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집에 거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에서의 아늑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이에 따라 가전제품이 집 안 공간에 잘 녹아드는지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보온병과 밥솥의 대명사로 일본에서 유명한 조지루시도 ‘ZOJIRUSHI’ 로고를 없애고 코끼리 마크만 남긴 제품을 선보여 인기를 끌기도 했다.
1인 가구의 확대와 자녀 1명 가구의 확대는 제품 포장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일본 대표 라면회사인 닛신은 3월부터 생면 식감으로 유명한 라면인 ‘닛신 라오’의 봉지라면 1팩 포장을 5개에서 3개로 줄여서 출시했다. 닛신은 과거 1팩에 5개를 넣은 봉지라면을 680엔(세금 별도)으로 판매했다. 이를 3월부터는 3개만 넣어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격은 408엔으로 1개당 136엔인 가격은 같다. 1팩에 5개가 들어가게 되어 있는 포장 기계 설정을 3개로 바꾸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다. 여러 개의 팩을 담는 상자 크기도 바꿔야 하고, 줄어든 크기만큼 바뀐 포장지 디자인 작업도 필요했다. 이러한 모든 것을 감수하고 닛신은 과감히 포장량을 줄인 것이다. 닛신의 이러한 변화는 줄어든 가구 수를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1958년 봉지라면인 ‘치킨라면’을 출시한 닛신은 1팩에 5개를 넣는 포장 방식을 처음 선보였다. 당시만 해도 일본의 평균 세대 인원수는 5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1인 가족이 늘어나고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도 많아지면서 2019년 평균 세대 인원수는 약 2.4명, 2022년은 약 2.3명으로 꾸준히 감소 추세에 있다. 이에 따라 1팩의 라면을 사면 2개 또는 3개가 남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회사로서는 포장을 줄이는 데 따른 장점이 있다. 1팩에 3개가 들어갈 경우 상품 선반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맛의 제품을 전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일본 생활잡화업체 야마젠은 지난해 3단접이침대를 출시해 큰 성공를 거뒀다. 야마젠의 ‘목제 페턴트 침대’는 접이식 침대이지만 기존 제품과 달리 침대 밑에 수납공간을 만들고, 바닥 판은 통기성이 높은 평상형을 채택한 것이 특징이다.
싱글 침대 가격이 2만2999엔(세금 포함)으로 기존 접이식 침대와 비교할 때 약 7000엔 정도 비싸지만 현재 수요를 못 따라갈 정도로 인기다. 접이식 침대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제품이지만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접어서 수납할 수 있다. 야마젠은 생활방식 조사를 통해 1인 가구 등에 있어서 침실의 주역은 침대가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다. 침대가 공간을 방해하지 않고 다른 가구와 어울리는 인테리어가 되기를 많은 사람이 원했던 것이다. 이를 반영해 야마젠은 침대끼리의 연결이 가능하고, 3단으로 접을 수 있어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동시에, 수납이 가능한 침대를 만들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재질도 단순한 스타일의 목재를 선택했다. 이는 제품 출시와 동시에 초기 생산 물량 매진, 이어 예상의 10배를 웃도는 판매로 이어지게 됐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