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년간 일본은 기록적인 물가 인상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을 위해 정부가 푼 자금이 시중에 유입되면서 물가를 자극한 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어진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은 에너지값마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만들었다.
연간 물가 인상률은 2~3% 수준이지만 서민이 느끼는 부담은 이보다 더욱 크다. 특히 30여 년간 물가 인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최근의 물가 인상은 충격이 되고 있다.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점심 세트 메뉴 가격도 슬금슬금 올라 600~700엔 하던 것이 이제는 1000엔이 기본이 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가격 인상은 설음식으로 불리는 ‘오세치(御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신정을 지내는 일본인들은 새해 첫날 온 가족이 모여 오세치를 먹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다. 사각형 도시락 모양의 오세치에는 각종 고기와 수산물, 채소 등이 담기는데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조사에 따르면 올해 판매된 오세치 가격이 최소 10%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오세치의 주역을 장식하는 로스트비프 가격이 1년 전보다 20% 올랐고, 어묵 등 반죽의 원료가 되는 명태살 가격 또한 20% 비싸졌다. 조림에 사용되는 토란은 6% 올랐으며, 그나마 연어알 정도만 가격이 제자리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렇듯 일본인들이 물가에 예민해지면서 지갑을 닫고 저가 상품이나 프라이빗브랜드(PB)를 찾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저가 상품의 경우 질이 나쁜 경우도 많고, ‘너무 싼 것만 사는 것 아닌가?’ 하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고든 것이 소위 저가에 프리미엄을 붙인 ‘저가 프리미엄’ 제품이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전반적으로 물가가 싼 편이지만 사람의 손길이 들어가는 것은 가격이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것 가운데 하나가 커트(이발)다. 머리를 자를 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가야 하지만, 미용실이나 이발소(바버숍) 가격은 대부분 5000엔 안팎이다.
물론 여기에는 커트뿐 아니라 스타일링과 샴푸, 두피 마사지, 경락 마사지 등이 포함된다. 그렇다고 해도 대기업 신입사원 초임 월급이 20만엔을 간신히 넘기는 일본에서 5000엔은 ‘사악한’ 금액으로 통한다. 이 때문에 젊은이들 사이에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기르다가 3~4달에 한 번 또는 6개월에 한 번 자르는 사람도 흔하다.
이들을 겨냥한 곳이 ‘QB 하우스’다. 이곳에서 머리를 깎는 데에는 1350엔이면 충분하다. 우리로 치면 1만원 안팎의 ‘블루클럽’과 유사한 콘셉트다. 가격이 싼 대신 순수하게 커트만 해준다. 샴푸 등은 집에 가서 해야 하고 스타일링도 거의 되지 않는다.
카드 사용도 안 되고 현금만 가능한 데다 예약도 받지 않는다. 대신 홈페이지를 통해서 지점의 현재 대기인원 수를 표시해주기는 한다.
저렴함을 내세운 ‘QB 하우스’가 한 단계 진화한 것이 ‘QB 프리미엄’이다. 저가에서 약간의 프리미엄을 더한 성격이다. 가격은 세금을 포함해서 1800엔이다.
가격을 조금 높였을 뿐인데 외관에서부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풍긴다. 내부도 QB 하우스는 평균 10평에 3석 정도가 주류이지만, QB 프리미엄은 이보다 2배 수준인 20평에 4~5석을 갖추고 있다. QB 하우스를 즐겨 이용했던 사람이라면 QB 프리미엄에서는 한껏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예약도 가능하고 현금뿐 아니라 신용카드도 쓸 수 있다. 머리를 감겨주는 샴푸 서비스는 이곳에서도 안 되지만 스타일링까지는 해준다.
특히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는 것은 자신이 과거에 한 커트와 스타일링 기록을 전자기록으로 남겨준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다음 번 방문 때 일일이 원하는 스타일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지난번과 똑같이 해주세요” 한마디면 충분하다.
우리에게 ‘100엔 숍’으로 불리는 다이소는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 장소다. 웬만한 생활용품은 이곳에서 구매한다는 일본인들이 많다.
다이소의 최대 장점이 ‘100엔’을 기본으로 하는 싼 가격이지만, 많은 사람이 불편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품질이다. 간단히 쓰고 버리는 제품은 큰 불편이 없는데, 주방이나 거실 등에서 오래 두고 쓰는 제품의 경우 확실히 가격 수준의 품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겨냥해 다이소가 내놓은 브랜드가 ‘스탠더드 프로덕츠(Standard Products)’다. 다이소가 슈퍼나 편의점 같은 인테리어를 갖고 있다면, 스탠더드 프로덕츠는 이보다 훨씬 고급스러우면서도 밝은 분위기로 꾸며졌다. 다이소가 거실부터 화장실까지 집 안에 필요한 모든 제품을 판매한다면, 스탠더드 프로덕츠는 주로 거실과 주방에 집중한 제품을 선보인다. 여기에 아웃도어 인구를 겨냥한 별도의 라인업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