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경제규모가 두 번째로 큰 중국은 경제에 미치는 정부의 영향력이 지구촌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만큼 절대적이다. 그래서 중국 경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늘 중국 공산당과 정부(국무원)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특히 매년 12월이면 세계 경제계의 이목이 중국 베이징으로 집중된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최고위 정책 결정자들과 지방정부 고위 관료, 국영기업 대표 등 수백 명이 매년 12월 수도 베이징에 모여 이듬해 경제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를 개최하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에도 시 주석 등 핵심지도부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베이징에서 중앙경제공작회의가 개최됐다. 다만 이번 중앙경제공작회의 기간은 역대 회의 중 가장 짧았다. 통상 3일 이상 열렸던 회의가 이번에는 이틀 만에 끝났다. 회의 기간은 짧았지만 이번 회의가 논의한 주제는 결코 다른 회의에 비해 가볍지 않았다. 중국 최고 지도부는 이번 회의를 통해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며 해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깊은 내상을 입은 중국 경제는 2023년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나섰다. 하지만 당초 기대만큼 중국 경제의 회복 속도는 빠르지 못했다.
부동산 위기, 지방부채 문제, 내수 부진 등이 여전히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데다 디리스킹(위험 제거)을 앞세운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 리스크도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면초가 위기 속에 중국 당정이 중앙경제공작회의를 통해 어떤 해법을 내놓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24년 중국 경제정책의 큰 얼개는 이번 회의 발표문에 담긴 12자에 대부분 담겨 있다. 중국 당정은 2024년 경제기조로 ‘온중구진(穩中求進)·이진촉온(以進促穩)·선립후파(先立後破)’를 내세웠다. ‘안정 속에서 성장을 추구하고 성장으로 안정을 촉진하며 먼저 세우고 나중에 돌파한다’는 의미다.
안정 속에서 성장을 추구한다는 ‘온중구진’은 2021년과 2022년 경제공작회의에서도 등장한 표현이다. 팬데믹 시절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경제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취지였다.하지만 이번 경제공작회의에서는 ‘온중구진’ 외에 성장으로 안정을 촉진한다는 ‘이진촉온’과 먼저 세우고 나중에 돌파한다는 ‘선립후파’가 새롭게 추가됐다. 이 두 가지 키워드가 새롭게 등장하자 시장에서는 중국 당국이 과거에 비해 안정에서 성장으로 무게중심이 조금씩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베이징에 소재한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성장으로 안정을 촉진한다는 문구를 추가한 것은 중국 당국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얼마나 성장을 갈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선립후파’는 중국 당국이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부작용이 커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정책들을 보다 온건하고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선립후파 대상에는 중국의 ‘쌍탄(雙炭)’ 목표, 부동산 정책, 공동부유 정책이 포함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SCMP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중국 당국이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 부동산 개발 분야의 선두권인 헝다(恒大)에 이은 비구이위안(碧桂園)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이어 부동산 위기가 금융권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대책들을 꺼내 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쌍탄’ 정책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정점(탄소피크)을 찍은 뒤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쌍탄 목표를 설정하고 그 이후 석탄 화력발전소 감축에 나섰다. 하지만 무리한 쌍탄 목표 추진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결국 정부가 과거보다 신중한 행보를 택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 회복이 시급한 상황에서 중국 지도부가 공동 부유 정책의 속도 조절에도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중국 톈펑증권의 쑹쉐타오 수석애널리스트는 “중국 당국의 공동부유 정책 재검토는 부의 재분배 방법을 결정하기 전에 부의 파이를 더 키우는 걸 의미한다”면서 그것이 바로 선립후파 방침이라고 짚었다.
당정은 또 이번 경제공작회의에서 미중 패권전쟁을 의식한 듯 과학기술 발전을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로 꼽았다. 2022년 12월 열린 경제공작회의는 2023년 정책과제 1순위로 내수 확대를 꼽았고 과학기술은 2순위였다. 하지만 이번 경제 공작회의에서 2024년 정책과제 1순위로 과학기술을 제시했다. 내수 확대는 2순위였다.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한 의지가 담긴 결과물이다. 이번 경제공작회의에서는 2024년 경제성장률 목표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다만 구체적인 논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통상 경제공작회의에서 윤곽이 정해진 성장률 목표치는 추가 논의 과정을 거친 후 이듬해 3월에 열리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공식 발표된다.
시장에서는 중국 정부가 2024년 성장률 목표치를 5% 안팎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국제기구나 해외 IB 등에서 4%대 예상치를 내놓기도 하지만 중국 당국은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대해 여전히 긍정적인 전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회의에서 당정은 “중국의 발전이 직면한 유리한 조건은 불리한 요인보다 강하고 경제회복과 장기적 긍정적 전망의 근본 추세는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제선전과 여론지도를 강화하고, 중국 경제의 ‘광명론(光明論)’을 크게 외치라”고 지시했다. 5% 성장률 달성을 좌우할 최대 변수는 중국의 대규모 부양책이다. 중국 정부는 이번 경제공작회의에서 구체적인 부양책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조만간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 부양책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긴축 기조가 마무리 국면에 들어간 만큼 중국 인민은행이 추가 금리 인하나 지급준비율 인하와 같은 완화적 통화정책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 내수 경기 회복, 부동산 경기 부양 등을 위한 대규모 특별국채 발행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된다. 블룸버그는 “부동산 위기가 여전히 중국 경제 회복을 위협하고 있고 내수 부진에 대한 지적도 잇따르면서 중국 정부는 경제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