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테마파크 천국이다. 도쿄에는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도쿄디즈니랜드가 있고, 오사카에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USJ)이 굳건히 간사이(関西·일본 혼슈 서부) 지역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해리포터의 영화 장면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해리포터 스튜디오까지 도쿄에 들어섰다.
일본 부동산업계도 이러한 흐름을 모를 리 없다. 디즈니랜드와 USJ, 해리포터 스튜디오 등은 모두 해외 라이선스를 들여와 만든 시설이다. 토종 테마파크를 지어 여기와 경쟁하겠다는 곳이 있을 수밖에 없다.
테마파크와 관련해서 일본서 가장 유명한 토종 기업 중 하나가 카타나(刀)다. 카타나는 모리빌딩컴퍼니 계열의 부동산·레저 전문 개발기업이다. 모리빌딩컴퍼니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본을 찾는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대표 관광지인 롯폰기 힐스를 개발한 곳이 바로 모리다. 든든한 부동산 재벌을 모회사로 두고 있는 카타나도 탄탄한 실력을 갖춘 업체다. 최고경영자(CEO)인 모리오카 츠요시는 한때 도산 위기에 놓였던 USJ를 되살린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USJ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일하면서 가족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스누피와 헬로키티 등을 활용한 ‘원더랜드’ 구역을 만들었고, ‘에반게리온’ ‘원피스’ 등 유명 애니메이션과의 협업으로 히트를 쳤다. 물론 USJ의 V자 반등을 이끈 결정적 한 방은 2014년에 문을 연 ‘해리포터 앤드 더 포비든 저니’였다. 당시 모리오카는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연간 매출의 절반에 달하는 450억엔의 투자를 밀어붙였는데, 결과적으로 USJ를 탄탄한 반석에 올려놓는 계기가 됐다.
이후 카타나에서 모리오카는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에 있는 세이부엔 유원지를 새롭게 탈바꿈시켰고, 현재 나가사키 사세보의 명물 하우스텐보스 리조트 재개발도 진행 중이다.
카타나가 이번에 주목한 것은 ‘체험형(Immersive)’ 놀이시설이다. 롤러코스터와 바이킹, 대관람차 등을 갖춘 고만고만한 테마파크로는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카타나는 체험형 시설을 통해 기존 테마파크와 확실한 차이점을 주겠다는 각오다. 일본에는 이미 체험형 놀이시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2018~2019년 핼러윈 시즌에 맞춰 USJ에서 운영됐던 ‘호텔 앨버트’는 입소문을 타고 매회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또 사이타마현의 세이부엔 유원지에는 현재 체험형 놀이시설인 ‘몰입형 드라마틱 레스토랑’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는 ‘르발리에르’로 이름 지어진 호화 열차에 참가자들이 탑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참가자들은 호화 식당칸으로 꾸려진 무대 속 테이블에 4명씩 짝을 지어 앉게 된다. 식당칸에서는 애프터눈티가 서빙되고, 참가자들은 이를 즐기면서 배우들의 공연에 참여한다. 1인당 5400엔이라는 적지 않은 가격인데도 57석의 좌석은 매회 공연마다 꽉꽉 찬다고 한다. 공연은 90분 동안 이어지는데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르발리에르의 첫 운행에 다양한 사람들이 초대돼 이를 축하하는 것이다. 등장인물은 열차 개통을 주도한 재벌집 딸과 많은 사건을 해결한 유명 탐정, 소설가, 재벌집 딸의 친구이자 유명인, 철도 공사와 관련된 연구원, 무언가 비밀을 가진 것 같은 열차 차장 등 다양하다. 물론 본인도 여기에 초대받은 사람 중 하나다. 이런 가운데 열차 운행 중에 등장인물 중 1명이 죽게 되고, 다양한 장면 속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관객들이 찾는 것이다.
이때 재미있는 것은 등장인물이 자연스럽게 관객과 대화 하면서 범인에 대한 힌트를 전달하는 것이다. 또 긴 열차구조의 무대이기 때문에 각자가 앉아 있는 장소에서 얻게 되는 정보가 전부 다르다. 관객이 무대에 등장해 독이 든 병을 전달하거나, 중요한 메시지를 다른 배우에게 전달하는 과정도 있다. 이러다 보니 57명이 똑같은 90분의 시간을 보냈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범인은 모두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관객들이 공연이 끝난 뒤 “나는 차장이 범인이라고 생각해” “아니야, 범인은 소설가야”라는 식으로 논쟁하며 무대를 떠나는 일이 매우 흔하다. 세이부엔 유원지를 운영하는 카타나 관계자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고 관객이 스스로 이야기에 관여하는 구조”라며 “획일적이 아니라 백인백색의 개별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체험형 놀이시설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카타나는 모리빌딩컴퍼니 계열답게 부동산 재개발을 통해 체험형 놀이시설 건립에 나섰다. 카타나가 선택한 곳은 도쿄 부도심으로 불리는 인공섬 오다이바의 ‘비너스포트’다. 1999년 문을 연 비너스 포트는 유럽 스타일로 내부가 장식된 실내 쇼핑몰로 큰 인기를 누렸다. 메인 광장에 있는 분수대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주말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룰 정도였다.
하지만 도쿄 도심 재개발로 대형 쇼핑몰들이 많아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더니, 급기야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해외 관광객 발길마저 끊어지자 결국 2022년 3월 문을 닫았다. 카타나는 실내로 돼 있는 데다, 내부가 유럽 스타일이라는 점에 착안해 이곳에 대형 체험형 테마파크를 만들었다.
‘이머시브 포트 도쿄(Immersive Fort Tokyo)’로 이름 지어진 이 시설은 2024년 봄 개장을 앞두고 있다. 체험형 놀이시설은 범죄 현장의 목격자, 파티의 주인공, 독약 살인자, 테러리스트 등 다양한 설정 속에서 관객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자신만의 결말을 가져가게 되는 것들이 들어설 전망이다. 또 다행인 것은 해당 놀이시설에서 외국어도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