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재대결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두 후보의 경제 공약과 정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정치 및 경제계 안팎에선 두 후보 진영 모두 무역정책은 보호무역으로 기울었다는 평가다. 트럼프는 더 강력한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을 준비 중이고, 바이든은 ‘바이 아메리카’를 기반으로 한 무역정책을 내세우려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와 기업에서는 높아질 무역 장벽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보편적 기본관세(universal baseline tariff)’를 전면에 내세우며 재임기간보다 더 강화된 보호무역정책 논의에 불을 지폈다. 보편적 기본관세란 모든 수입품에 일률적인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뜻한다. 기존 무관세 혹은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는 물품의 수출업자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인 꼴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폭스와의 인터뷰에서 “(외국) 기업들이 제품을 미국에 덤프(적정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면 자동으로 한 10% 관세를 내야 한다”면서 “난 모두가 10%를 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를 통한 수입으로 빚을 갚을 것”이라며 “법인세도 낮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학계와 민주당으로부터 즉각적인 비판을 받았다. 더글라스 어윈 다트머스대 경제학과 교수는 “보편적 기본관세 도입은 무역시스템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며 교역 상대국이 보복적 조치를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식 무역정책 공약을 밝히기도 전에 논란이 일자 트럼프 참모들은 관세정책이 주요 대선 공약이 될 수 있다면서도 아직 관세율을 확정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측은 일단 진화에 나섰지만 재임기간 무역 분쟁이 재현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트럼프는 재선을 위해 지지층이 선호하는 보호무역 기조를 더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나라에 똑같이 높은 관세를 적용하는 ‘매칭세(matching tax)’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아울러 의도적으로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는 국가에 보복관세를 물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에 따라 워싱턴 안팎에서는 그의 구상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애덤 포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은 “미친 것 같고 끔찍한 짓”이라며 “국내 생산을 장려하겠다는 의도겠지만 10%의 관세는 수입에 의존하는 수천 개의 미국 기업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구상은 실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재임 시절 실천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거 대선운동 시절 자유무역으로 미국 노동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에서 많은 지지를 받은 바 있다. 당선 후 실제로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각각 25%, 10%의 고율 관세를 물린 바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바이든 대통령의 무역정책 변화다. 트럼프가 보호무역정책을 더 강화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과거 자유무역정책을 버리고 트럼프 정책을 더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3월 부과한 철강과 알루미늄 고율 관세를 철회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또한 그해 말 트럼프가 중국산 상품에 부과한 관세 역시 유지 중이다.
아울러 바이든의 중국에 대한 무역전쟁, 리쇼어링(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추진, 미국 우선주의를 담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제조업 우선주의 등은 트럼프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대개 미국 민주당은 역사적으로 자유무역정책을 옹호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임기 때 오히려 보호무역으로 선회한 셈이다.
이에 대해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민주당 내 주류 정책의 변화가 바이든의 정책 변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 시절 ‘소비자’ 중심의 경제정책을 펼쳤다면 지금은 오바마 행정부를 거쳐 ‘노동자’ 중심의 경제정책으로 바뀌었다는 말이었다. 노동자가 경제정책의 우선순위가 되다 보니 일자리 보호, 리쇼어링, 제조업 중심, 중국과의 무역전쟁 등이 바이든 행정부 시절 대거 쏟아졌다.
지난해 PIIE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물품에 대한 관세만 철폐해도 미국 각 가정은 1년에 약 800달러를 아낄 수 있다.
김 대표는 바이든 무역정책의 또 다른 배경으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의 역할을 꼽았다. 라이트하이저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보호무역정책의 설계자로 유명한데,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도 알게 모르게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라이트하이저는 최근 발간한 자신의 저서 <No Trade Is Free(자유무역은 없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내가 시작한 미국 무역정책의 변화를 바이든 행정부가 상당 부분 이어나가는 것은 그만큼 해당 정책이 성공적이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결국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하게 되면 핵심 지지 기반인 노동자의 이익을 앞세우며 트럼프처럼 ‘아메리카 퍼스트’에 기반한 경제무역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응이 중요해졌다. 우선 한국 정부는 주요 수출국과 연대해 자유무역을 증진하기 위한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경제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 기회에 한국이 글로벌 무대에서 무역정책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기업과 산업 차원에서는 수입규제 강화 조치에 대비해야 한다. 예컨대, 중국산 제품과 동일 품목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이 중국을 겨냥한 수출규제에 함께 포함될 수 있기에 해당 수입국의 대중국 수입 물량 추이 등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