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무역 박람회인 중국수출입상품교역회(캔턴페어·Canton Fair)가 지난 5월 개최됐다.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열리는 캔턴페어는 중국 대외무역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특히 이번에 열린 133회 캔턴페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 전면 오프라인으로 개최된 행사여서 높은 관심을 받았다. 전시장 크기가 이전보다 32만㎡ 확대된 150만㎡로 사상 최대였고 참가 기업도 3만5000개로 역대 가장 많았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도 캔턴페어 소식을 전하면서 “전시회가 열리는 광저우 컨벤션센터가 인산인해로 붐비며 중국 대외 무역의 활력을 보여줬다”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박람회의 최종 성적표는 당초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주최 측 집계에 따르면 현장 수출 계약액은 216억9000만달러(약 28조7800억원)였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춘계 캔턴페어 당시 계약액 297억3000만달러(약 39조4500억원)보다 27% 감소한 수치다.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이후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계약 실적은 코로나19 발생 이전 수준을 훨씬 밑돈 것이다. 캔턴페어를 방문한 해외 바이어 역시 12만9000명에 그쳐 과거 20만 명을 웃돌던 것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번 캔턴페어의 저조한 수출 실적은 그동안 수출을 성장 지렛대로 커온 중국 경제에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외환경이나 대내여건 모두 향후 중국 수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깐 과거 역사를 되짚어보면 수출이 중국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자리잡게 된 계기는 지난 2001년 12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다. 중국은 1986년부터 15년간에 걸친 협상 끝에 어렵게 미국의 동의를 구해 143번째 WTO 회원국이 됐다. 서방과 중국 사이의 교역을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가 들어서자 낮은 생산비용과 거대한 수출 시장을 갖춘 중국으로 해외 투자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이후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은 미국의 월마트 매장을 점령했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수출을 먹고 자란 중국 경제의 덩치도 빠르게 커졌다. WTO 가입 당시 세계 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였지만 지난해 18%까지 높아졌다.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교역국 자리를 차지했고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를 이끄는 G2 자리에 올랐다. 영국 BBC는 훗날 2001년에 발생한 세계 주요 사건들을 기록하면서 중국의 WTO 가입이 9·11 테러보다 세계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중국 수출의 위세가 꺾이면서 세계의 공장이라는 타이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실제 중국 수출은 성장률이 점차 둔화되면서 중장기적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는 모습이다. 올해 들어 기저효과로 인해 월별 수출실적이 반짝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춘제 연휴 등으로 인한 통계착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이 점차 ‘세계의 공장’이라는 타이틀에서 멀어지는 배경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크게 대외적 요인과 대내적 요인으로 구분된다. 우선 대외적 요인부터 살펴보면 미·중 패권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꼽을 수 있다. 미중 갈등으로 인해 이른바 ‘차이나 리스크’가 커지면서 서방 기업들이 중국을 떠나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다른 지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중국 공급망에 올인했던 애플이다. 애플은 그동안 아이폰, 에어팟 등 주력 제품들을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해왔다. 하지만 스마트폰 새 모델 아이폰 14 일부를 작년 9월부터 인도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JP모건은 “2025년이면 모든 아이폰 생산의 25%가 인도에서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애플은 아이패드도 중국에서 인도로 생산 이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워치도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탈중국을 시도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가장 많이 주목하는 국가가 인도라고 보도했다. WSJ는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 된 인도가 ‘세계의 공장’으로 일컬어지는 중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라고 전했다. 서방 회사들이 ‘차이나 플러스원’(China plus one)’으로 불리는 전략을 세우고 중국을 대체할 지역을 물색하고 있는데 인도가 ‘플러스 원’의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설명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탈중국 움직임에는 미중 갈등과 같은 외부 환경뿐 아니라 중국 내부 변수도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예고도 없이 도시 전체를 봉쇄해버리는 중국식 통제시스템을 직접 경험한 글로벌 기업들이 예측 가능성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중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또 급격하게 오른 중국의 인건비도 기업들의 탈중국 행렬을 부추겼다. 과거 외국 기업 공장들 유치에 큰 힘을 보탰던 저렴한 인건비의 매력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 스스로도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 모델에서 내수 중심의 자립경제 구축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는 것을 지켜본 중국은 외부 변수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자립형 경제 시스템 구축에 더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중국의 수출 경쟁력 약화는 그동안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해 달러를 쓸어 담았던 한국에게도 위기를 가져다줄 수 있다. 이미 곳곳에서 아우성이 시작됐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한국의 올 1분기 대중 수출은 382억달러로 지난해 1분기보다 28.2%나 감소했다. 특히 감소폭은 해관총서가 주요 수입 국가로 분류하는 23개 나라 중에 가장 컸 다. 이에 30년간 지속된 대중국 무역 흑자 기조도 막을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수지는 지난해 10월 마이너스 12억6000만달러를 기록한 이후 4월까지 7개월 연속 적자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올해 연간 기준으로 첫 적자를 기록해도 전혀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동안 가장 큰 경제적 혜택을 입었던 한국은 이제 달라진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성장전략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미국, 일본과 밀착행보를 보이면서 한중관계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탈중국 전략을 정말 정교하고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그래야 그동안 중국과 거래하며 먹고 살았던 국민이나 기업이 정부를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