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여름방학을 가질 것인가?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팬데믹 직후 제로금리였던 기준금리가 이제는 5.00~5.25% 수준으로 올라왔다. 유례없이 가파른 금리 인상에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 충격파가 전해지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 시그니처은행이 파산한 데 이어 퍼스트리퍼블릭은행까지 무너지는 등 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 파도에 사라졌다. 지난 3월 은행권 위기가 닥치자 대부분의 시장 분석가들은 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났다고 단정 했다. 하지만 연준은 3월에 이어 5월에도 기준금리를 25bp(0.25%포인트)씩 끌어올렸다. 인플레이션 대응이 더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렇다면 이제 기준금리 인상은 끝난 것일까. CME그룹의 기준금리 선물 시장 지표인 ‘페드 워치’에 따 르면 6월에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80% 안팎에 달하고 있다. 이후 7월에도 동결을 하고, 9월부터는 금리 인하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연내 기준금리 인하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라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확고부동한 소신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선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연준 내부에서도 조금씩 변화의 기운이 나타나고 있다.
연준의 5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성명서가 달라 졌다. 연준은 긴축을 본격화한 이후 계속해서 반복 사용 해왔던 “추가 정책 강화(금리 인상)가 적절할 것으로 예상 된다”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그리고 “추가 정책 강화를 하는 데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FOMC 의사록에서 연준 실무진들이 경미한 경기 침체 가능성을 보고한 데 이어 연준도 이제 금리 인상 주기의 고점에 다가왔음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연준은 마지막 고지를 밟았는지 여부에 대해서 확인하지 않고 있다.
5월 FOMC 이후 발표된 4월 고용보고서,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시장에 다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미국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로 나타났다. 4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4.9% 상승했다. 시장 전망치인 5.0%를 밑돌았고, 10개월 연속 둔화세를 이어갔다. CPI에서 3분의 1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비는 전년 대비 8.1%, 전월 대비 0.4% 상승했다. 주거비가 두 기준으로 모두 전월 대비 하락한 것은 팬데믹 이후 물가 상승세가 본격화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질로(Zillow), 아파트먼트닷컴(apartments.com) 등 민간 조사에서 이미 렌트비 하락세가 나타났지만 정부 통계에 드디어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자가 살고 있는 뉴저지주 주택 임대시장에서도 이런 변화의 기운이 감지 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월세 5000~6000달러 수준의 주택은 시장에 나오자마자 사라졌지만 최근에는 공급이 많아졌다.
물가는 이렇게 한풀 꺾이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나 실업률이 5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노동 시장은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욕 맨해튼은 물론, 미국 어디를 가더라도 구인광고를 목격할 수 있다. 단순 업무를 하는 일자리에 시간당 18달러를 내걸어도 사람을 구하기 힘든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주간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 흐름을 보면, 노동 시장은 극심한 공급 부족 상태에서 조금씩 조금씩 균형을 찾아가는 분위기다. 파월 연준 의장은 이런 점 등을 근거로, 연착륙 가능성을 강하게 믿고 있다.
연준 인사들의 전망은 제각각이다. 지역 연은 총재들의 최근 발언을 보면 추가 금리 인상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보는 매파적 주장이 좀 더 우세하다. 올해 FOMC 투표권을 가진 닐 카시카리 미네아폴리스 연은 총재는 “인플레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연준이 해야 할 일은 아마도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시카리 총재는 기회 있을 때마다 매파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연은 총재는 “앞으로 많은 데이터를 봐야 한다”라면서도 “(향후 금리 인상을 쉬어가더라도) 중단(pause)이라고 하지 않고 보류(hold)라고 표현 하겠다”라고 말했다. 토마스 바킨 리치몬드연은 총재는 중도파였지만 최근에는 매파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바킨 총재는 “5월 FOMC 성명서는 금리 인상을 중단한다거나 고점에 달했다고 결론을 낸 것이 아니라 선택지를 열어놓은 것이었다”라며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필요 하다면 더 금리를 올리는 것도 편안하다”라고 말했다.
6~8월 동결 가능성 거론… 매파들은 반대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연은 총재는 “대부분 인플레이션 지표는 목표(2% 수준)보다 2배 이상 높다”며 “2024년까지는 금리 인하를 하지 않는 것이 기본 가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제는 금융권 혼란에 따른 시스템리스크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비둘기파의 목소리도 있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연은 총재가 대표적이다. 굴스비 총재는 “지난해 5% 금리 인상에 따른 영향이 여전히 있고, 또 영향이 올 것이다”라며 “일단은 (추가 금리 인상을) 잠시 쉬고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연준에서 통화정책 담당 부의장을 맡고 있는 존 윌리엄스 뉴욕연은 총재는 “우리의 결정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라고 말했다.
월가의 전망도 엇갈린다. 바클레이스는 “매우 놀라울 정도로 견조한 4월 고용이 나온 것을 감안하면 6월 추가 인상으로 위험이 약간 더 기울었다”라고 말했다. 반면에 골드만삭스는 “4월 고용지표가 깜짝 증가했지만 연준의 다음 달 금리 동결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방은행 위기로 인한 신용시장 경색을 연준이 더 고려하게 될 것으로 봤다.
이제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요소는 기준금리보다는 지역은행 위기 확산 여부, 상업용 부동산 부실 확산 여부, 부채한도 협상 결과 등이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뉴욕지역 사무실 이용률이 46%에 그치고 있다. 팬데믹 이전을 100%로 봤을 때 출근 비율이 여전히 절반을 밑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출근이 저조하다보니 뉴욕 맨해튼 1급지 상업용 건물의 1층이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비어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토스텐 슬록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하이브리드 근무 형태가 자리를 잡으면서 사무실 이용률 50%는 아마도 주요 대도시권에서는 새로운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오피스 시장이 점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5년 전 저금리로 대출을 받아 건물주가 됐던 기업과 개인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는 기준금리 인상이 더 이상 없다고 하더라도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쉬는 여름방학이 절실하다는 것이 시장의 요구다. 하지만 연준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실물 경제 흐름과 달리 경기가 아직 강력하다는 후행적 통계 지표에 사로잡혀 우(과잉긴축)를 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