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급 직무교육, 유급 휴가, 의료보험, 연금보험, 학자금 지원, 주급, 직원 할인, 파트타임도 가능, 그리고 플러스 알파!’
미국 뉴저지주 버겐필드에 있는 햄버거 체인인 웬디스가 내건 채용 조건이다. 뉴저지주 클로스터에 있는 유통체인인 ‘홀푸드’에서는 ‘시급 15달러 이상, 매장 내 제품 20% 할인’을 내건 채용 공고가 붙어 있었다. 미국이 여전히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뉴욕 맨해튼 거리를 걷다보면 은행, 유통기업, 레스토랑, 델리, 커피점 등 분야를 막론하고 ‘채용 중(Now Hiring)’이라는 문구와 함께 각종 채용 혜택을 내건 애절한 구인 공고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JOLTs(구인·이직 보고서)에 따르면 실업자 1명당 구인 건수 비율은 1.7명으로 집계됐다. 전월 1.9명에 비해서 비율이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노동 시장에서 수요가 공급을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로 금융권까지 해고에 나서고 있지만 이런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물가와의 전쟁’이 2단계에 접어들었다. 1단계 타깃은 ‘상품 인플레이션’ 격파였고,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 2단계는 ‘서비스 인플레이션’ 격파다. 11월 CPI(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7.1%를 기록, 전월(7.7%) 대비 크게 하락했다. 상품 분야 물가상승률이 크게 둔화된 덕이다. 하지만 최근 소비가 서비스에 물리면서 서비스 분야 물가 상승률은 둔화세가 더디다.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11월 말 브루킹스연구소 연설에서 “상품과 주택 부문의 인플레이션 압력은 둔화되고 있지만 임금 상승에 따른 서비스 물가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11월 시간당 임금 상승률은 전월 대비 0.6%를 기록, 예상치의 두 배를 기록했다. 수정된 10월의 전월 대비 상승률(0.5%)보다 0.1%포인트 높았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5.1% 상승하면서 10월(4.9%)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
테크 기업에 이어 금융권에도 칼바람이 불고 있지만 이것은 일부 업종의 이야기일 뿐이다. 11월 비농업 분야 취업자 수 증가 폭은 26만3000명을 기록, 월가 전망치(20만 명)를 크게 초과했다. 실업률은 3.7%에 그쳐, 심각한 구인난이 계속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계속 실업수당 청구(2주 이상 실업수당 청구)가 소폭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팬데믹 이전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쪽에선 미국의 경기 침체를 우려하고 있는데, 왜 고용에서는 이런 현상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미국 고용 시장에서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현상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노동 시장 참여율이 급격히 하락한 이후 임금이 오르며, 분야·직종을 막론하고 이직이 활발해졌다.
원래 미국은 이직이 자유로운 편이지만, 극심한 인력 공급난 속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JOLTs에 따르면 10월 기준 자발적 퇴직자 수는 402만6000명을 기록했다. 전월 대비 3만4000명이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자발적 퇴직자 중에 은퇴자도 있겠지만, 이직을 위해 현재 일자리를 떠난 사람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연봉을 올려 이직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임금 상승률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파월 의장은 12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이후 기자회견에서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노동 공급이 약 400만 명 감소했다”며 “350만 명이 노동 시장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코로나19에 따른 사망자, 퇴직자 증가,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에 따른 노동력 공급 감소 등이 겹치며 미국의 노동 공급 부족 현상은 당분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정하에 연준은 2023년에 공격적인 긴축 정책을 계속해서 펼쳐나갈 의지를 확인했다. 12월 FOMC 회의 결과로 나온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기준금리 전망치)에서 2023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가 5.1%로 제시되며 시장에 충격을 줬다. 월가 전망치가 5%를 밑돌았던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심지어 파월 의장은 “2023년 말까지 금리 인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어, 충격을 더했다. 이는 월가에서 대체적으로 2023년 3~4분기부터는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과 배치된다.
CME그룹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2023년 3월까지 기준금리는 현재보다 50bp(0.50%포인트) 올라가서 유지되며, 9월, 12월에 각각 25bp씩 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파월 의장보다 한 술 더 뜨고 있다. 윌리엄스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견고하게 높다면 최종금리는 (점도표에) 우리가 적어낸 것보다 더 높을 수 있으며 그 경우 금리 전망을 높여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비둘기파로 알려졌던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연방준비은행 총재까지 매파적인 자세로 돌아서고 있다. 데일리 총재는 “물가 안정이라는 (목표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며 “노동 시장은 균형을 잃은 상태”라고 우려했다. 데일리 총재는 “최종금리에 도달하면 11개월은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인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과 연준이 이렇게 공격적인 긴축 정책을 지속할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시장은 믿지 않고 있다. 주요 투자은행 중 골드만삭스를 제외하면 연준의 주장대로 2023년 말 기준금리가 5%를 넘을 것이라고 보는 곳은 거의 없다. CPI가 2개월 연속 하락하는 것이 확인된 상황이고, 지나친 긴축으로 경기 침체가 뚜렷하게 나타날 경우 연준이 다시 방향을 전환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전망 때문에 연준의 매파적 언급이 나와도 기준금리에 민감한 2년물 국채금리가 상승하지 않고 하락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골드만삭스는 2013년 미국 경제성장률을 1.3%로 보고, 경기 침체 확률이 낮다고 보고 있다. 시장 컨센서스(0.4%)보다 높은 것은 물론이며 연준의 성장률 전망(0.5%)보다도 높다. 미국 경제가 과거 전형적인 경기 침체와 다르게 고용 안정 속에서 큰 무리 없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데비시 코드나니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코참(미한국상공회의소) 강연에서 “우려와 달리 경기 침체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2023년 말 기준금리는 5.00~5.2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는 “비공식 시장 데이터를 보면 주거비 역시 2023년에는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2023년 말에 물가상승률은 3%대로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완전 고용과 경기 침체는 이론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명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이론이 바뀔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경기 침체의 골이 깊지 않으면 실업률이 크게 상승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침체 속에서도 물가는 안정되는 데 좀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팬데믹이 바꿔 놓은 또 다른 경제학 교실이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8호 (2023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