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日 후쿠시마 원전 사고 11년 만에 원전 개발 신호탄 쏘아 올린 기시다
김규식 기자
입력 : 2022.09.29 16:45:42
수정 : 2022.09.29 16:46:05
일본 정부가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원전 신설·개축을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에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 차세대 원전의 개발·신설을 검토하기로 했고 원전의 재가동이나 운전기간을 늘리는 방안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탈탄소 대응과 에너지 안보, 전력난 완화 등을 위해 원전의 활용도를 높여가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원전 전략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이다. 그는 최근 탈탄소 실현을 논의하는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X) 실행 회의’에서 “차세대형 혁신로 개발·건설 등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항목이 제시됐다”며 “여러 방안에 대해 연말에 구체적 결론을 낼 수 있도록 검토를 가속해달라”고 밝혔다. 일본 언론은 이 발언에 대해 ‘원전의 신·증설’로 전환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후 원전 신설·개축을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는데 여기에 변화의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원전의 운전기간 연장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운전기간을 원칙적으로 40년으로 정했으며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인정하는 경우 최장 20년 연장해 총 60년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이 보유한 원전은 33기이며 이 가운데 10기가 원자력규제위의 심사에 합격하고 지방자치단체의 동의를 얻어 재가동한 적이 있다. 이 중 현시점에서 가동하고 있는 것은 6기이며 나머지는 안전점검 등으로 다시 멈춰있는데 이에 대한 가동을 서두른다는 방침을 지난 7월 내놓은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일본 정부는 원자력규제위의 심사에는 합격했으나 지자체의 동의를 얻지 못했거나 안전 대책 공사가 늦어져 아직 재가동에 돌입하지 못한 원전 7기에 대해 내년 여름 이후 적극적으로 가동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새로 내놓았다. 일본 정부가 원전의 활용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는 데는 탈탄소와 전력난, 에너지 안보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전력사들이 이용률·채산성이 낮은 노후 화력발전소를 멈추고 원전의 재가동에 속도가 붙지 않으면서 지난 6월 때 이른 더위에 전력난을 겪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7년 만에 전국적으로 ‘여름철 절전’ 요청을 하기도 했다. 당시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올여름 생활과 경제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가능한 한 전국에서 절전·에너지 절약에 협력을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일본 관료는 “실내 온도를 28도로 하거나 불필요한 조명을 끄는 등 절전·에너지 절약을 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올겨울 추위가 심하면 다시 전력난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나오는데, 이처럼 반복되고 있는 전력난이 원전 재가동 정책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전국적인 절전 요청에 나선 것은 2015년 이후 처음이다. 일본에서는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단계적으로 원전 가동이 중단됨에 따라 2012~2015년에 일부 지역 혹은 오키나와현을 제외한 전역을 대상으로 정부의 절전 요청이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력발전에서 활용하는 에너지 자원의 수급이 국제 정세에 따라 불안해질 수 있는 점도 일본의 원전 정책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산업성은 원전 1기를 가동하면 LNG 이용량 약 100만t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장기적으로는 탈탄소 대응에도 원전을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일본 정부는 ‘그린성장전략’을 통해 2050년 전력원에서 화력·원자력 등의 비중을 30~40% 가져가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특히 그린성장전략에 ‘원전은 안정적으로 탄소중립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등의 내용을 포함시켰다. 일본 정부는 장기적 원전 전략의 일환으로 기존 원자로에 비해 출력이 10분의 1~3분의 1 정도 되는 소형모듈원전(SMR)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본은 그린성장전략에서 차세대 SMR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일본은 SMR에서 앞서가고 있는 미국 등과 연계해 개발·도입을 서두른다는 방침이다. 특히 2030년 실용화를 거쳐 2040년 양산체제를 갖추고 2050년대에 이 기술을 수출하겠다는 게 장기 로드맵이다. 2019년 기준으로 원전이 일본의 전력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에 그친다. 일본은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전력원에서 원전의 비중을 20~22%까지 높인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27기 정도의 원전이 가동돼야 한다는 추산이 나와 일본 입장에서는 갈 길이 멀다.
원전의 활용에 대한 목소리는 재계에서도 나온다. 일본의 대표적인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은 2050년 탈탄소 사회 실현을 위해 일본 정부에 전달한 제언을 통해 SMR 등 차세대 원전의 개발·건설을 요청했다. 게이단렌은 “(원전의) 안전성 확보를 대전제로 적극 활용해나간다는 방침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이단렌은 특히 일본의 현행 규정상 원전의 최대 가동연한인 60년을 적용하더라도 2050년에 20기 정도의 원전밖에 남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운전 기한의 연장’을 제언했다.
일본의 원전 고민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에서 출발한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동북)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규모 9.0의 강진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이 사고를 국제원자력 사고등급(INES)에서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최고 레벨(7)로 산정했다.
동일본 대지진 전에 일본이 보유한 원전은 54기로 전력의 30%가량을 책임졌다. 하지만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점차적으로 가동을 멈춰 2012년 5월에 ‘가동원전 제로(0)’를 맞게 된다. 원전의 재가동을 위해서는 안전대책을 강화하는 등 새로운 기준을 만족시켜야 하고 이런 추가 대책에 원전 1기당 수천억엔이 소요되는 등 비용부담이 커졌다. 이에 따라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거나 문제가 있는 것들은 폐로됐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전력난, 에너지 안보, 탈탄소 대응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다시 원전의 활용을 늘려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