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집권 자민당이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헌법 9조에 자위대 근거를 명기하는 헌법 개정을 비롯해 선거공약의 추진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시다 총리는 작년 10월 취임 직후 중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끈 데 이어 이번 참의원 선거도 압승으로 이끌며 기반을 다지고 장기 집권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지난 7월 8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습·사망’ 사건이 보수표 결집과 추도·애도표로 이어져 참의원 선거 승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점 ▲아베 전 총리 영향력의 지속 정도 ▲자민당 내 보수 세력의 지형 변화 등이 온건파로 분류되는 기시다 총리의 향후 행보와 정치색 발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참의원 선거 후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단기간에 크게 개선되기 어렵고 복잡한 현안·상황 등이 놓여있는 만큼 중·장기적 차원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월 10일 진행된 참의원 선거의 결과는 자민당의 압승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상원격인 참의원의 이번 선거에서 선거구·비례대표를 합쳐 참의원 정원(248석)의 절반인 125석(보궐 1석 포함)의 당선자를 가렸다. 참의원의 임기는 6년인데, 3년에 한 번씩 전체 의석의 절반에 대한 선거를 진행한다.
선거전과 비교하면 여당의 의석은 7석 늘었다. 이번 선거 승리의 배경에는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50%대를 유지하며 국정운영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은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아베 전 총리의 사건이 보수표의 결집과 애도표 등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7월 11~12일 실시된 요미우리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아베 전 총리의 총격·사망 사건이 참의원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이 32%, ‘다소 영향을 미쳤다’는 비율이 54%였다. 응답자의 86%는 참의원 선거에 아베 전 총리 사건의 영향이 있었다고 보는 셈이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50%대를 유지한 것 등이 선거 승리의 바탕이 됐다”며 “아베 전 총리 사건으로 인해 보수표가 결집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참의원 선거의 승리에 따라 헌법 개정을 비롯해 자민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안들의 추진에도 어느 정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헌법 개정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인 방위비를 2% 이상 염두에 두고 증액 ▲적기지 반격(공력) 능력 보유 ▲안전이 확인된 원전 최대한 활용 등을 내세웠다. 자민당은 특히 개헌과 관련해 ▲헌법 9조에 자위대 명기 ▲긴급사태 대응 규정 신설 ▲통합선거구 해소 ▲교육 환경 충실화 등 4가지 구상을 담아 제안했다. 이 가운데 자위대 명기가 민감한 쟁점사항이 되며 주변국의 관심을 받고 있다. 자위대 명기를 비롯한 헌법 개정은 아베 전 총리가 주도해왔으며 그의 숙원으로 꼽히기도 한다.
일본은 2014년 이미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권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전쟁 가능 국가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염려를 샀다. 집단권 자위권은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아도 주변국을 비롯해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나라가 공격받으면 이에 대해 무력 개입을 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위대를 명기하면 전쟁 가능 국가로 좀 더 접근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주변 국가에서 나온다. 선거에서 승리한 기시다 총리는 헌법 개정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이다. 기시다 총리는 최근 자위대 명기 등을 담은 자민당의 개헌안에 대해 “(개헌) 발의를 위해 3분의 2 결집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가능한 한 빨리 발의하고 국민투표로 연결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헌법 96조는 중의원과 참의원이 각각 총의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함으로써 개헌안을 발의하고 국민 투표를 시행해 과반이 찬성해야 개헌이 성사된다고 규정한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공명당·국민민주당, 일본유신회 등 헌법 개정에 긍정적인 4개 정당의 의석수는 177석으로 3분의 2(166석)를 넘었다. 중의원에서도 개헌에 긍정적인 세력이 3분의 2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앞으로 헌법 개정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58%가 ‘기대한다’고 답해 ‘기대하지 않는다’는 응답(37%)을 크게 웃돌았다. 다만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4개 정당 사이에서도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미묘하게 의견이 나뉘어, 개헌을 위해서는 의견 차이를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선거 승리를 바탕으로 8~9월에 개각과 당직 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작년 10월 중의원 선거에 이어 이번 참의원 선거도 승리로 이끌면서 장기 집권의 기반을 어느 정도 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의원을 해산하지 않으면 향후 3년간 큰 국가 선거가 없어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는 기틀도 마련됐다는 평가다.
작년 10월 기시다 총리 취임 후에도 각종 정책 등에서 아베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강경보수파의 영향력이 계속돼왔다. 이번 참의원 선거 승리로 온건파인 기시다 총리가 자신의 색깔과 목소리를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을 좀 더 키웠지만 아베 전 총리의 피습·사망 사건이 여러 가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냉각된 한일관계와 관련해서는 단시간 내에 크게 개선되기는 쉽지 않고 시간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 기미야 타다시 도쿄대 대학원 교수는 “참의원 선거 결과에 아베 전 총리 사건의 영향이 반영됐을 점이나 우파 설득을 위한 구심점(아베 전 총리)이 사라진 것 등을 감안하면 일부의 예상처럼 한일관계에서 기시다 내각의 입장이 단기적으로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며 “한국에서도 지지율이 낮아진 새 정권이 단기간에 일본에 관심을 가질 (징용배상 판결 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미야 교수는 “한일관계는 시간을 갖고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며 “국제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해 양국의 신뢰를 회복하고 현안을 논의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쿠조노 교수는 “중장기적으로는 기시다 총리가 참의원 선거 승리와 보수의 정책 개입 약화 등을 바탕으로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강화하고 한일관계 개선에도 나설 수 있을 것”이라며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담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