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가전양판점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판매사원 B씨(73세). 30여 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B씨는 이 회사 6000여 명의 판매사원 중 72명밖에 없는 ‘에이스 컨설턴트’로 선정될 정도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일본 보험사에서 일하고 있는 A씨(63세)는 만 60세이던 3년여 전에 정년퇴직한 후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재고용돼 젊은 직원들에게 사고에 대한 사정(손해 등을 평가) 노하우를 알려주고 있다.
일본의 한 구두약 제조사 시니어 직원이
신입 사원에게 제품 사용법 등을 전수하고 있다.
일본이 고령화와 일손 부족, 사회복지재정 등을 감안해 시니어(고령자) 인력 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주로 퇴직 후 촉탁직 등으로 재고용하는 방식이 많고 정년 연장 등도 활용된다. 고령화가 진행 중인 한국도 최근 제4기 인구정책태스크포스(TF)를 통해 고령화와 생산연령 인구 감소 등에 대응할 목적으로 시니어 인력의 활용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함에 따라 일본의 사례에 관심이 모인다. 일본의 고령사회 백서에 따르면 2020년 10월 기준으로 일본에서 65세 이상 고령자는 전체 인구의 28.8%인데 2025년 30%, 2040년 35%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김명중 닛세이(일본생명) 기초연구소 박사는 “고령화와 노동인구 감소, 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의 재원 등을 감안해 2000년대 들어 일본 정부가 법·제도를 통해 65세 이상까지 고용을 장려해온 게 일본 기업들이 고령자 고용에 적극 나서게 된 큰 이유”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전문 인력을 새롭게 확보하기 쉽지 않은 점과 시니어 사원의 노하우를 활용한다는 측면도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원칙적으로 60세 이상을 정년으로 정하고 있는데, 2006년 ‘65세까지 고용 확보 조치를 의무화’한 데 이어 2013년에는 여기에 적용받는 고령자를 노사협의로 제한할 수 없게 해 사실상 희망자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일본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작년 4월부터는 고용주에게 ‘70세까지 취업 기회 확보를 위한 노력’을 의무화했다. ‘취업 기회의 확보’ 방법으로는 기존의 정년 폐지·상향, 계속고용제도에 더해 ▲위탁계약을 통한 취업 유지 ▲자사와 관련된 사회공헌사업을 통한 고용 등이 추가됐다.
일본은 초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65세 이상 일본 노인 중 취업자는 약 730만 명으로 12년 연속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기업들은 비용 등의 문제를 감안해 정년 폐지·상향보다는 퇴직 후 촉탁직으로 재고용하는 등의 계속고용제도를 통해 시니어 인력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65세까지 고용 확보 조치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은 99.9%이다. 이 중 정년 상향과 폐지를 활용하는 경우는 각각 20.9%, 2.7%에 그친다. 나머지 76.4%는 계속고용제도를 통해 시니어 인력의 근로를 지속하고 있다. 또 66세 이상이어도 일할 수 있는 제도를 갖고 있는 기업의 비중은 33.4%였다.
정년을 폐지한 기업 중 하나로 샷시·지퍼 등으로 유명한 YKK그룹이 있다. YKK는 2021년도부터 국내 사업장에서 65세로 유지하던 정년을 폐지했다. YKK그룹의 주요 계열사로 알루미늄 샷시 등을 만드는 YKKAP의 경우 일본 내 약 1만2000여 명의 직원이 있고 이 중 60대는 950여 명이다. 일본의 대형 가전양판 기업인 노지마는 2020년 7월 정년(65세) 이후 80세까지 건강 등을 감안해 1년 단위로 계약하며 임시직(비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는데 작년 사실상 ‘채용 80세 상한’마저 폐지했다.
일본 시니어의 경우 정년에 이르러서도 대부분 계속 일하는 방안을 선택한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60세 정년 제도를 갖고 있는 기업에서 2019년 6월~2020년 5월 정년에 도달한 인력 중 85.5%가 계속고용(퇴직 후 해당 기업·자회사·관련 기업에 촉탁직으로 재고용)됐다. 반면 계속 고용되기를 희망하지 않은 비율은 14.4%에 그쳤다.
시니어 사원의 경우 퇴직 후 재고용되는 방식이 정년 연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 감소가 크다.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가 계속고용을 활용하는 기업과 정년 연장 기업에서 60세 직전 평균 임금에 비해 60대 전반기의 평균 임금이 어떻게 변하는지 분석한 결과 계속고용의 경우 ‘20~40% 미만 감소’(34.2%)가 가장 많았고 20% 미만 감소(25.5%), 증가·변화 없다(21.9%), 40% 이상 감소(18.2%) 등의 순이었다. 반면 정년 연장의 경우에는 증가·변화 없다(66.8%)가 가장 많았고 20% 미만 감소(21.1%)가 뒤를 이었다.
김명중 박사는 “퇴직 후 촉탁사원으로 재고용하는 경우 임금이 많이 낮아지다 보니 시니어 사원의 근로 의욕이나 생산성이 기대에 못 미치기도 한다”며 “이에 따라 성과주의를 확대하거나 평가 기준을 세분화하는 기업 등도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 기업의 경우 고령자 계속고용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들을 기존에 일하던 부서에서 빼내 인력이 부족한 곳이나 시니어가 일하기 적당한 곳으로 배치하는 방법 등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