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의 얼굴을 한 아베 내각’. 지난 10월 4일 제100대 일본 총리로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와 그의 내각에 대해 야당에서 내리는 평가이다. 작년 9월 취임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코로나19 대응 부실 등의 영향으로 지지율 하락에 허덕이다 384일 만에 물러났고 그 뒤를 이은 인물이 기시다 총리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9월 29일 집권 자민당의 총재선거에서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당내 의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바탕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고노 다로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는 국회가 여당·다수당의 대표를 총리로 뽑는 게 일반적이다. 일본 중의원·참의원은 10월 4일 임시국회를 열고 기시다를 총리로 지명했다. 기시다 총리는 당내 온건파로 분류되지만 한일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이 해결책을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2015년 외무상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서에 서명했다. 기시다 총리는 9월 위안부 합의를 거론하며 “일본 측은 합의 내용을 모두 이행했다”며 “공은 한국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분간 한일관계가 크게 개선되기는 어렵다는 의견들이 일본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중의원 3대 ‘정치가문 출신’
기시다 총리는 아버지의 지역구인 히로시마 1구를 이어받아 1993년 이후 중의원 9선을 했다. 중의원을 지낸 조부, 통산관료·중의원을 역임한 부친에 이어 3대째 정치를 이어온 ‘정치가문’ 출신이다. 지역구가 2차 대전 때 원폭의 피해지였던 만큼 이 문제에 관심이 많고 지난 2016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시다 총리는 도쿄에서 태어났고 대학 입시에서 두 번 실패를 맛본 뒤 1978년 일본의 사립 명문 와세다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일본 장기신용은행에서 5년간 외환업무, 해운업 담당 등을 하며 경제 감각을 키웠고 이후 부친 기시다 후미다케 의원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효율과 이익뿐 아니라 다양성·개성 등도 중시하는 인간중심의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정책과 관련해 신자유주의로부터의 전환과 성장·분배의 선순환, 새로운 일본형 자본주의 등을 표명하기도 했다. 특히 중산층의 확대, 격차 축소, 중산층에 대한 분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민당 내 온건보수·리버럴(자유주의) 파벌로 평가받는 고치카이(기시다파)를 이끌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성실한 성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잘 듣는 능력’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얘기한다. 애주가이면서 술이 센 걸로도 유명하고 아베 정권의 외무상 시절 러시아 외무장관과 술을 마시며 협상을 했던 일화도 있다. 1차 아베 신조 정권 때인 2007년 내각부특명대신을 지냈으며 2012년 12월 2차 아베 정권 출범과 함께 외무상에 발탁돼 약 4년 8개월 재직했다. 기시다 총리는 태평양전쟁 후 일본 외무상 연속 재임 일수 1위 기록을 갖고 있다.
▶아베·아소의 그림자 여전
기시다 정권은 ‘아베 정권’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로 시작됐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측근이나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가 이끄는 아소파(의원 53명)가 내각·당의 핵심에 포진했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0월 1일 주요 당직자를 임명해 자민당의 새 체제를 출범시킨 데 이어 4일 내각을 발표했다. 당·내각 인사에서 아베가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호소다파(96명), 아소파, 다케시다파(51명) 등이 주요 직책에 임명됐다. 이들 파벌의 의원 상당수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기시다를 지지했는데, 이에 대한 ‘배려 인사’로 풀이된다. 강경우파가 기용된 것도 눈에 띈다.
우선 자민당의 핵심인 간사장에는 아소파인 아마리 아키라 의원이 임명됐다. 아마리 간사장은 아베 전 총리, 아소 부총재와 함께 ‘3A’로 불리며 7년 9개월 동안 지속된 2차 아베 정권의 당·내각 등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정무조사회장으로는 강경우파로 분류되는 다카이치 사나에 의원이 자리했다. 그는 무파벌이지만 아베 전 총리를 계승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민당 총재선거 기간 중에는 ‘총리가 되더라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자민당 총무회장에는 호소다파인 후쿠다 다쓰오 의원이 임명됐다.
내각의 핵심인 관방장관에 마쓰노 히로카즈 의원이 기용된 것으로 비롯해 아베 전 총리의 동생이며 이번에 유임된 기시 노부오 방위상,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 등 호소다파 4명이 입각했다. 수출규제를 담당하는 경제산업상을 맡은 하기우다는 아베 전 총리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아소파는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 야마기와 다이시로 경제재생상, 마키시마 카렌 디지털상 등을 내각에 포함시켰다. 다케시다파에서는 유임된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을 비롯해 4명이, 기시다파(46명)에서는 가네코 야스시 총무상 등 3명이 입각했다. 니카이파(47명)의 입각 인원은 2명이었고 총재선거에서 고노 다로 의원을 지원했던 이시바파(16명)에서는 한 명도 내각에 들지 못했다. 기시다 총리의 내각 인사에서는 외교·방위상을 유임시키며 이 부문에서 안정·연속성을 중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내각의 ‘입’인 관방장관을 맡은 마쓰노는 과거 ‘일본군 위안부는 성 노예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의견 광고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마쓰노 관방장관이 문부과학상 시절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는 일본 영토’라는 내용을 가르치도록 의무화하는 학습지도요령이 확정된 바 있다. 하기우다 경제산업상은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 등을 인정한 고노 담화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야당은 기시다 총리의 인사에 대해 ‘기시다의 얼굴을 한 아베 내각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경제에선 성장·분배 선순환 강조
“온건파지만 당분간 한일관계의 큰 개선을 기대하긴 어렵다.” 기시다 총리 시대의 시작을 바라보는 일본 정치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2015년 위안부 합의가 지켜지지 않고 징용배상 판결 등이 내려진 것이 한일관계가 악화된 이유인 만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한국 측에서 해결책을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시다 총리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기시다 총리는 2015년 외무상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주도하고 서명했다. 기시다 총리는 작년 9월 발간한 저서 <기시다의 비전, 분단에서 협조로>에서 위안부 합의와 관련, “2015년 양국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에 합의했고 이에 대해 미국을 비롯해 30여 개국이 높게 평가했다”며 “국가와 국가의 국제적 약속만큼 무거운 것이 없는데 한국이 취하고 있는 태도를 보면 솔직히 화가 난다”고 적었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한일 갈등의 복잡한 구조나 기시다 총리가 한일 위안부 합의의 핵심이었던 점, 양국의 정치일정, 아베 전 총리의 영향력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당분간 한일관계의 큰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기시다 총리는 헌법 개정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은 ▲자위대 근거 규정 명기 ▲긴급사태 근거 마련 ▲교육의 충실화 ▲참의원 선거구 관련 등 4개를 개헌 추진 항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4개 항목을 정리할 당시 정무조사회장을 맡고 있었고 자신의 재임 중 개헌을 하고 싶다는 입장이다. 자위대의 명기와 관련해서는 주변 국가들이 ‘전쟁 가능한 국가로 회귀하는 움직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갖고 있어 반발을 살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안보 문제와 관련해 미사일 등으로 적의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의 선택지라는 입장이다. 그는 또 원전 재가동에 전향적 입장을 갖고 있고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묶어 ‘그린 에너지 전략’을 세우겠다는 생각이다. 경제 측면에서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중산층의 확대 등에 대한 생각도 갖고 있다.
한편 마이니치신문이 10월 4~5일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49%로 나타났다. 작년 9월 출범 직후 스가 내각의 지지율이 64%였던 것에 비하면 기시다의 출발이 좋지 않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