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의 천국, 아세안이 코로나19 사태로 닫았던 빗장을 속속 열고 있다. 전 세계 백신 보급이 일정 수준에 이르자, 역내 산업의 큰 축인 관광산업을 살리기 위해 국가를 다시 개방하고 있는 것이다. 태국,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들은 무격리 입국까지 허용하고 있다.
태국은 11월 1일부터 미국과 중국 등 5개국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자들의 무격리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입국 전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자들이 유전자 증폭(PCR) 검사에서 코로나 음성이 확인되면 무격리 입국을 할 수 있다.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이 같은 사실을 알리며 “전 세계에 태국이 재개방을 위해 얼마나 잘 준비했는지 말할 수 있도록 국민의 협조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격리 입국 대상 국가는 앞으로 더 늘어날 예정이다. 현재 무격리 입국이 허용된 곳은 미국·중국·영국·독일·싱가포르인데, 앞으로 늘어날 국가에 한국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관광 샌드박스 프로그램으로 재개장한 태국 푸껫섬을 찾은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운데)가 공항에 도착한 외국인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태국 내 외국인에게 재개방되는 지역도 확대된다. 이와 관련해 정부 코로나19 상황관리센터(CCSA)는 외국인 재개방 지역을 기존 푸껫과 수랏타니·팡응아·끄라비 일부 등 4곳에서 방콕 등 15개 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 조치는 11월 1일부터 시행된다. 또 오는 12월 1일부터는 치앙마이와 수코타이 등 16개 주요 지역도 재개방할 예정이다. 이미 무격리 입국 조치를 시행 중인 싱가포르는 대상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는 독일과 브루나이를 대상으로 백신 접종자에 한해 무격리 입국을 시행 중인데, 11월부터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과 영국, 프랑스, 캐나다, 덴마크,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등으로 대상국을 확대한다. 싱가포르의 이같은 조치가 주목되는 것은 개인 및 단체여행, 상용 또는 관광목적 여행이 모두 허용된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도시 자체를 봉쇄하는 강력한 방역 조치를 시행했던 베트남도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전환하며 문호를 다시 개방하고 있다. 대중교통 운행을 허용하는가 하면, 호텔 식당 등의 시설에 대해서도 제한된 인원하에 영업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여기에 더해 올해 연말께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외국인들의 주요 관광지 방문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미 남부 휴양지인 푸꾸옥의 경우 11월부터 개방에 들어갔다.
인도네시아는 휴양지 발리섬의 문을 열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직후 1년 넘게 발리섬에 외국인 관광객을 받지 않았다. 발리섬에 입국이 허용된 국가들은 동북아, 중동, 서유럽 등 19개국이다. 구체적으로 한국, 일본, 중국, 뉴질랜드, 인도, 아랍에미리트, 서유럽 및 걸프해협 일부 국가 등이 포함됐다. 역내 다른 국가들처럼 백신 접종 완료자에 한해 발리 입국을 허용하며, 무격리 조치는 시행되지 않는다. 발리 입국을 희망하는 외국인은 출국 2주 전 백신 접종을 완료해야 하며, 접종 증명서도 필수다. 발리 도착 후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해 음성판정이 나와야 하고, 지정된 장소에서 5일간 격리도 해야 한다. 격리 4일 차에 PCR 진단검사도 요구된다.
조코 위코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발리에서 백신 접종률이 높아져 코로나19 신규 감염이 상당히 감소했다”며 입국 제한 해제 조치 배경을 밝혔다.
말레이시아도 이 같은 역내 흐름에 따라 닫혔던 국경 문을 열고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지난 9월 대표 휴양지 랑카위를 재개방할 때 외국인 방문을 허용치 않는 것이 그 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도 백신 접종자들을 대상으로 입국 범위를 점차 넓혀갈 것으로 전망된다.
▶관광산업 회복 없이는 경제 성장도 힘들어
이처럼 아세안 각국들이 일제히 문호 개방에 나서는 것은 고사 상태에 빠진 관광산업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을 아예 봉쇄해버리는 등 다른 국가들에 비해 강도 높은 방역 조치를 시행해 왔다. 그러다 보니 내수 경제의 근간인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이 확 줄어들면서 관련 업계의 일자리들은 사라졌고 대규모 실업자들이 양산되는 등 관광산업 자체가 초토화됐다.
실제 태국의 경우 관광산업이 살아나지 않으면서 지난해에만 업계에서 200만 명가량의 실업자가 생겨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9년 48억달러의 관광수익을 올렸던 캄보디아는 지난해 10억달러만 관광으로 벌어들였을 뿐이다. 관광이 전체 수출액에 차지하는 비중도 25%에서 7%로 줄었다.
캄보디아 프놈펜 무역관은 “올해 사정은 더하다”면서 “올 상반기 캄보디아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동기 대비 90% 넘게 감소했다”고 전했다.
베트남도 지난 2019년 1800만 명에 달했던 외국인 방문객이 지난해 380만 명으로 줄었다.
사정은 쉽게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세계관광기구(UNWTO) 조사에 따르면 아세안의 관광산업 붕괴로 지역 전체 GDP의 약 10%를 갉아먹을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인 관광객의 역내 전체 방문은 80% 가까이 줄 것으로 전망됐다.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쿠타 해변에서 노점상들이 손님맞이 채비를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18개국의 백신 접종 완료 외국인 관광객에게 휴양지를 개방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은 각국의 경제 전망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이 지난 9월 올해 각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해 내놓았는데, 아세안 각국의 수치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태국의 경우 올 4월 3% 정도의 경제 성장 전망치가 제시됐지만 이번에 0.8%까지 낮아졌다. 그나마 역내에서 경제 상태가 양호했던 베트남도 기존 6.7%에서 3.8%로 축소됐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각각 기존 4.5%와 6%에서 3.1%와 4.7%로 전망치가 줄어들었다. 그나마 싱가포르만 전망치가 소폭 올랐다.
아세안이 관광 부활에 힘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세안 각국이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면서 관광산업의 부활에 먼저 힘쓰고 있는 것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구조적 이유도 있다. 캄보디아의 경우 GDP의 30% 이상을 관광산업이 차지하고 있고, 태국과 필리핀 등은 그 비중이 20%나 된다. 역내 선진국인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와 라오스도 국가 경제의 10%를 관광산업이 뒷받침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위드 코로나 정책 바람으로 해외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어 아세안의 문호 개방은 꽤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문을 연 인도네시아 발리의 와얀 코스터 주지사는 “관광 재개는 이 섬에 필수적”이라며 “발리 경제의 54%가 관광 수익에 의존하기에 관광업 회복은 우리에게 큰 이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