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전보장’이 일본 기업·정부 모두에서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경제안보에 대응하는 양상은 다르지만 그 핵심에 ‘중국’의 영향이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일본 기업이 ‘경제안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미중 갈등’이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과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경제안보총괄실’을 비롯한 관련 조직을 신설해 ‘중국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출 제한’처럼 미중 갈등에서 비롯된 문제가 서플라이체인(공급망)과 거래 등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중 갈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도 신경 써야 하지만, 미국과 함께 직접 중국 견제에 나서는 측면에서도 경제안보를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 작년 이후 기술·정보 유출 방지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데, 그 핵심 대상이 중국이다. 중앙 정부부처의 경제안보 관련 인력을 내년에 100~200명가량 늘릴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미쓰비시전기는 지난해 경제안전보장총괄실을 신설하는 등 국제정세 동향에 맞춰 대응하고 있다.
▶日기업 미중 갈등 리스크 대응 위해 ‘경제안보총괄실’
중국을 최대 교역상대국으로 두고 있는 일본의 기업들이 미·중 갈등과 관련해 처한 상황은 지난 3월 사례에서 볼 수 있다. 지난 3월 일본을 찾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그가 국무장관 취임 후 처음으로 방문한 일본에서 첫 일정으로 마주 앉은 사람은 미무라 아키오 일본상공회의소 회장과 미키타니 히로시 라쿠텐 회장 겸 사장이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공식 회담이 예정돼 있었지만, 그 전에 경제인과 먼저 머리를 맞댄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미무라 상공회의소 회장과 미키타니 라쿠텐 회장을 만나 “지적재산권 등을 도용한 곳에 대한 책임을 묻는 데 (미국과 일본이) 협력할 절호의 기회”라며 “불공정하고 위법적인 관행에 대항하며 미래산업을 구축하는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일본 경제계에 중국 견제에 동참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중국 기업을 주요 거래처로 갖고 있지만, 외교·군사뿐 아니라 경제·산업 면에서도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입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일본 기업의 현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 중국 화웨이에 대한 규제가 시행된 데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도 반도체 등 주요 기술·제품에서 중국을 제외한 서플라이체인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등이 중국의 신장웨이우얼(신장위구르)에 대한 강제노동·인권침해 등을 문제 삼으면서 이곳의 면화를 사용하던 업체들이 영향을 받는 등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 기업 가운데 경제안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곳은 미쓰비시전기이다. 마이니치·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미쓰비시전기는 작년 가을 사장실 직속으로 경제안전보장총괄실을 신설했고 담당임원으로 일본 정부의 경제산업성에서 에너지정책 등을 담당했던 간부를 영입했다. 경제안전보장실이 하는 주요 업무는 이 회사의 매출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미중의 수출관리정책이나 규제 등을 분석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다.
미쓰비시전기의 매출 중 중국 시장은 12%, 미국은 9%가량을 차지한다. 작년 트럼프 정권에서 중국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 등을 제한하면서, 미쓰비시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미쓰비시전기의 주요 제품 중 하나인 모터에 사용되는 희토류의 경우 중국이 전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의 수출을 제한하면 미쓰비시전기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미쓰비시전기 관계자는 “중국 이외의 조달처를 확보하는 등 규제 강화나 국제정세 동향에 맞춰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쓰비시전기 외에 자동차부품 대기업인 덴소도 관련 부서를 설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재계 관계자는 “경제안보 담당을 두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5월 말~6월 초 일본 기업 10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중 갈등 등에 따른 경제안보 문제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답변이 22개사,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다’는 응답은 58개사였다. 조사 대상 중 80%가 경제안보 문제를 의식하고 있는 셈이다. 또 경제안보 대책으로 ‘경제안보전문 부서를 설치했다’고 답한 곳은 5개 업체였다.
경제안보와 관련한 리스크 등을 분석·제공해주는 기업도 있다. IT 기업 프론테오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기업의 서플라이체인에 숨어있는 리스크를 분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장위구르나 군부의 탄압이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와 관련해 일본 기업의 거래처·제휴처가 인권침해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지를 공개자료 등을 바탕으로 조사한다. 프론테오 관계자는 “리스크를 사전에 판단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따라 이 같은 서비스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3월 일본을 찾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日정부, 경제안보 인력 100~200명 증원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미중 갈등이 경제에 미치는 파장도 관리해야 하지만, 미국과 함께 중국 견제에 나서는 것도 핵심 사안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을 비롯해 다양한 기회를 통해 중국의 팽창주의 견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미국과 발을 맞춰왔다. 특히 일본 정부는 작년부터 해외로의 기술·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왔는데, 이 핵심 대상국이 중국이다. 예를 들어 유학생·외국인 연구자들이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관련 기술 등이 해외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관리를 강화했는데, 이 규제의 중심에 있는 게 중국이다.
최근에는 관련 인력의 증원도 표면화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내각인사국과 국가안전보장국은 주요 부처의 경제안보 관련 부서·인력 정원에 대해 통상의 인원 사정과 별개의 틀로 다루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이는 경제안보 관련 인원은 100~200명가량 증원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2022년도 예산 편성 때 구체적 증원 규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내각인사국은 각 부처에서 특정 부문의 인력을 늘릴 때 다른 부문의 인원을 줄여 ‘인력 합리화’를 유지하도록 요구해왔다. 하지만 경제안보와 관련한 증원은 기존의 틀에서 분리해 다룬다는 것은 그만큼 이 문제를 중요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구체적으로 증원이 예상되는 곳은 재무성·경제산업성·총무성·문부과학성·금융청 등이다. 재무성·경제산업성에서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심사 인력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작년 외환법 개정을 통해 원전 등 안보상 중요한 기업에 외국 자본이 투자할 때 사전에 신고해야 하는 지분의 기준을 기존 1%에서 10%로 확대했다. 이 같은 법 개정에 따라 사전신고 건수가 10%가량 증가했고, 관련 규정의 준수 여부를 점검해야 하는 경우도 늘었다. 이에 따라 재무성·경제산업성 등의 안전보장 관련 인력이 증원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문부과학성은 외국인 연구인력 등을 통해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인력을 늘리고 총무성에서는 미국·일본이 경제안보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5G와 관련해 서플라이체인을 분석하는 분야에서 증원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금융청은 금융기관 등을 통한 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경제안전보장실(가칭)’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에는 토지 활용 등에서 주요 정보가 중국 등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법을 개정했다. 중국을 염두에 두고 자위대 기지나 원전 주변 등에서 외국 자본의 토지의 부적절한 사용을 막겠다는 의도이다. 개정안에서는 자위대 기지 등 주요 시설 주변을 ‘주시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등기부 등을 활용해 토지·건물 소유자를 조사할 수 있도록 했다. 자위대 사령부 등 특히 중요한 곳의 주변에서는 토지를 매입할 때 사전신고서를 제출토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