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계만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상처뿐인 아프간 전쟁 20년… 미군 철수와 탈레반의 카불 함락에 대혼란, 아프간 힘의 공백에 중국이 중재자로 나서
강계만 기자
입력 : 2021.08.27 15:52:52
수정 : 2021.08.27 15:53:04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간 전개했던 ‘테러와의 전쟁’이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마침표를 찍는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철군을 진행하던 도중에 2021년 8월 15일 수도 카불을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에 함락되는 참사를 겪었다. 다급했던 미군이 아프간 대사관에서 헬기를 동원해 미국인들을 카불공항으로 이동시키는 장면은 1975년 4월 월남 철수의 치욕을 연상시킬 정도로 논란이 됐다. 아프간인들은 탈레반을 피해서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카불공항 담벼락 철조망 사이로 “아기만이라도 살려달라”며 건넬 정도로 부모들은 절박했다. 과일을 팔던 10대 형제와 유소년 축구대표팀 선수였던 젊은이들이 아프간에서 벗어나려고 미국 C-17 수송기에 매달렸다가 하늘에서 떨어져 숨졌다. 미국과 아프간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탈레반 보복을 피해 숨어 지내고 있다. 사실상 외출이 금지된 여성 인권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모든 미국인과 현지 조력자들을 철수시키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프간에서의 철군 계획은 변함없다고 분명히 했다. 아프간 정치 지도자가 해외로 도피하고 아프간 군인들이 싸울 의지가 없는 곳에서 더 이상 미국 젊은 군인들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국익이 없는 곳에서 미국이 싸우지 않겠다는 뜻도 전했다. 세계의 경찰로서 전 세계에 파병하던 미국의 국제사회 리더십에도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미국 힘의 공백 속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넓혀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 20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철수 작전에 대해 연설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영국, 러시아, 미국도 물러난 ‘제국들의 무덤’
영국은 19세기 유라시아 대륙 패권을 경쟁하던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세 차례 아프간을 침공했다. 영국과 러시아의 충돌을 의미하는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 과정에서 아프간은 유럽, 아시아, 중동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그러나 영국은 수많은 전사자만을 남기고 세 차례 모두 후퇴했다. 그 다음에는 러시아가 1979년 아프간에 밀고 들어가서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했으나 아프간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10년 만인 1989년 빈손으로 물러났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조직을 비호하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아프간을 공습했다.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통해 아프간에서 탈레반 정권을 몰아냈지만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탈레반은 게릴라전과 자살폭탄으로 버텼다. 미국 브라운대 부설 왓슨연구소에 따르면 미군은 한때 파병 규모를 10만 명까지 늘려 탈레반을 압박하고 민주 정부 건설을 지원했지만 아프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프간 정부군과 탈레반의 오랜 내전 과정에서 미군 전사자 2442명을 포함해 아프간 경찰·군인·민간인, 탈레반과 반미 무장단체 등 24만 명이 희생됐다.
미국은 아프간에 머물면서 전쟁비용으로만 2조2610억달러를 투입했다. 국방부와 국무부 전쟁예산, 기지예산 증가분, 참전용사 관리, 전쟁차입금 예상이자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2600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밑 빠진 독에 이처럼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다보니, 미국은 철수 시점을 번번이 놓쳤고 결국 미국 역사상 최장기인 20년 전쟁을 치르게 됐다. 이렇게 전쟁 피로도가 쌓이게 되자 바이든 대통령은 9·11 테러 20주년이 되는 올해 완전 철군을 결단하기에 이르렀다. 테러와의 전쟁을 마치고 21세기 위협요소인 중국과 러시아 견제를 위한 병력재편에 나서려는 의도도 깔려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의 국익이 없는 분쟁지역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미군을 철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는 결코 없다”며 철군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군 무기 장악한 탈레반, 테러 온상 되나
탈레반이 전투 한 번 없이 수도 카불까지 순식간에 장악한 배경을 살펴보면 아프간 정부의 무능함과 오랜 부패를 들 수 있다. 미국이 아프간 재건을 위해 들어간 막대한 지원금은 아프간 정부 관리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또 중간에 복잡한 전달 과정을 거치면서 대부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아프간 군인은 장부상 30만 명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대부분 ‘유령 군인’이며 실제로는 4분의 1인 7만5000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2019년부터는 군 훈련 지원도 중단됐고 군인 월급 체납도 빈번했다. 군 식료품과 식량 등 보급품이 불법으로 유출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사기가 떨어진 지역 군과 경찰은 탈레반의 회유에 넘어가 쉽게 투항했다.
아프간 군대가 미국의 공군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다보니 독자적으로 전투할 만한 전술을 갖추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탈레반 정보 분석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탈레반이 지난 5월부터 거침없이 진격해서 아프간 수도 카불까지 넉 달 만에 손에 넣어 미국의 허를 찌른 것이다. 탈레반은 공개적으로 인권존중과 보복금지라는 유화 메시지를 내지만 이면에는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을 앞세워 공포통치를 하고 있다. 거리로 뛰어나온 반탈레반 시위대에게 무차별적으로 총격도 가했다. 정부군, 언론인, 통역사 등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가족들을 위협하면서 추적하고 있다. 이슬람 전통복장인 부르카를 입지 않고 외출했던 여성이 총살당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아프간 인권과 난민문제 해결에 공동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아프간에서 테러 세력인 이슬람 근본주의 부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 9·11 테러를 자행한 알카에다는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축하했고 1~2년 내 전 세계를 위협할 만큼 아프간에서 다시 급성장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군으로부터 빼앗은 총기와 차량뿐만 아니라 UH-60 블랙호크 공격헬기 등 현대식 군사무기가 테러 세력에게 넘어가면 전 세계에 큰 위협일 수 있다.
▶탈레반·중국이 아프간 재건 주도하나
20년 만에 탈레반에 다시 함락된 아프간은 미군 철수로 인한 힘의 공백 속에서 열강들의 시험대에 오른다. 아프간은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이 2020년 기준 581달러에 불과한 최빈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인도적인 지원 없이는 빵 한 조각 나눠주기 힘든 구조이다. 그러나 미국은 돈줄을 죄면서 탈레반을 압박하고 있다. 아프간의 외환보유액은 90억달러(약 10조3000억원)이지만 대부분 미국에서 보관하고 있어서 쓸 수도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아프간의 특별인출권 배정을 보류하면서 탈레반을 재정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사실상 아프간 경제활동은 멈췄고 유일한 수입원이 아편 재배이다. 아프간의 최대 교역국인 인도와의 수출입도 차단됐다. 이로 인해 언제든 경제위기가 찾아올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탈레반 정권 유지에도 부담이다. 이에 따라 탈레반은 아프간을 장악하고 나서 정상국가를 표방하면서 외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은 미군 철군을 계기로 아프간에서의 경제재건 참여의사를 밝히면서 탈레반과 밀착하고 있다. 공사비 620억달러에 달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인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고속도로, 철도, 송유관사업)을 아프간까지 연결하기를 기대한다. 아프간 땅 속에 묻혀있는 철, 구리, 금, 희토류, 리륨 등 1조달러 규모의 광물자원 개발 가능성도 눈여겨보고 있다. 이는 탈레반을 억제해 중국 내 신장 위구르 이슬람 독립 세력과의 연계 가능성을 차단하는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러시아는 아프간 국경지역 경계를 강화하면서 중재자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유럽뿐만 아니라 터키, 이란,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도 아프간 정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미국의 동맹관계에 균열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중국은 미국을 믿었던 아프간처럼 대만도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내전 중이던 아프간과 한국, 대만, 나토 등 동맹은 다르다’며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동맹국 달래기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