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토콜 경제] Part Ⅲ 블록체인 기술이 기반 | 프로토콜 경제의 핵심은 ‘규칙의 중립성’ 플랫폼 독단 막고 참여자 모두 투명한 보상
박지훈 기자
입력 : 2021.07.28 15:52:13
수정 : 2021.07.28 15:52:50
프로토콜이란 컴퓨터 간 데이터를 교환할 때 수월하게 만들기 위해 사전에 정해놓은 규칙을 의미한다. 경제활동에 접목하면 시장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프로토콜을 만들어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을 프로토콜 경제라고 한다. 프로토콜 경제를 실현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블록체인이 각광받고 있는 이유다. 탈중앙화 및 탈독점화를 통해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 참여자 모두에게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참여형 공정경제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토콜 경제는 탈중앙화를 통해 여러 경제주체를 연결하는 형태의 새로운 경제 모델이다.
▶승자독식 벗어나 공정한 수익 분배
플랫폼 이익보다 참여자 의사 우선반영
플랫폼 경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래를 연결해주는 중개자가 수수료 수취를 통해 이익주도권을 가지는 데 반해 프로토콜 경제는 프로토콜 기반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서 중개자가 아닌 거래 참여자들이 그 이익을 사전합의를 통해 분배받을 수 있는 구조다. 플랫폼 독식의 수익구조 개선이 가능한 것이다. 수익 분배뿐 아니라 정보 공유를 통해 운영 과정에서의 투명성도 보장된다. 플랫폼 경제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독점 및 폐쇄성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또한 한 플랫폼에 많은 이용자가 몰리면 그 플랫폼 내에서 활동하는 콘텐츠는 플랫폼에 귀속되어 운영될 수밖에 없다. 이는 플랫폼이 독점적 지위를 가졌기 때문인데 플랫폼 기업이 우리 삶에 깊이 자리매김하면서 이런 독점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로토콜 경제 모델의 도입이 이러한 한계점을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다.
남기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플랫폼 경제와 프로토콜 경제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규칙의 중립성”이라며 “플랫폼 기업에 더 큰 이익 창출이 가능하다면 이러한 규칙 변경은 쉽게 정당화되지만 프로토콜은 한 번 규칙이 정해지면 웬만해서는 수정하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현재 플랫폼 기업들은 큰 힘을 가지고 있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는다.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는 단일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하고 콘텐츠 입장에서는 플랫폼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는 개별 콘텐츠 성장보다 회사의 매출과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새로운 규칙을 만들거나 기존의 규칙을 바꾸기도 한다.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수수료를 인상하거나 단기적으로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콘텐츠를 내부적인 기준에 의해 퇴출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콘텐츠 입점비나 광고료를 부과하는 방식도 플랫폼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일환이다.
프로토콜 경제를 표방한 온라인 번역 서비스 ‘자메이크’
이에 반해 프로토콜 경제는 개별 콘텐츠에 부정적인 방향이라면 기존 참여자에게 규칙 변경에 대해 합의를 얻어내는 것이 힘들어진다. 또한 새로운 참여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규칙과 기존 규칙의 이점을 따져서 커뮤니티 참여 여부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규칙 변경은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는 유리한 조건일 가능성이 낮다. 즉 프로토콜 경제하에서는 중개자인 플랫폼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의 이해관계도 더욱 적극적으로 고려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프로토콜 경제는 주식회사의 주주와 노동자의 갈등 그리고 경영진과 노동자의 갈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남 연구원은 “프로토콜 기반으로 돌아가는 네트워크 경제 조직들은 주식회사가 돌아가는 형태와는 다르다”며 “프로토콜 조직의 경우 주주와 노동자의 구분이 없으며,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모두가 기여한 만큼 함께 만들어낸 가치를 보상받아가는 형태로 운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플랫폼 기업의 변신은 가능한가?
프로토콜 경제 도입한 스타트업들
정보와 수익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기존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의식은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30%에 달하는 구글과 애플의 과도한 플랫폼 사용료 논쟁과 중개 플랫폼의 수수료 인상 이슈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기존 플랫폼은 프로토콜 경제 시스템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박항준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기존 창업자와 주주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며 “스톡옵션과 같이 단순한 보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온전한 프로토콜 경제라 할 수 없고 처음부터 완전한 보상에 대한 합의와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알고리즘을 갖춘 시스템을 구축해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기존 플랫폼 기업의 노조 시스템을 구현하거나 사내벤처 형태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여지를 뒀다.
반면에 남기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프로토콜 기반의 네트워크는 주식회사의 구조를 조금만 변경하면 가능하다”며 “회사 내의 몇몇 가지를 개방하고 그 다음에 생태계에 참여한 커뮤니티에 주식과 같은 보상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줄 수 있는 부분을 프로토콜화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남 연구원 역시 “현재 헤게모니를 가진 주체는 프로토콜 경제가 도입되는 것을 반대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지 않은 주체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존 플랫폼과 차별화한 프로토콜 경제 모델을 차용한 스타트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보이스루는 자메이크라는 번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메이크는 회사 내부에 번역 담당 직원이 한 명도 없음에도 현재 유튜브에서 국내 번역 시장 점유율 9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영상을 만드는 스트리머들이 작업물을 올려놓으면 수많은 번역가가 프로토콜 형태로 이 영상을 잘게 쪼개서 받아쓰기하고 이후 초벌 번역을 하고 다시 한 번 검수하여 흩어진 결과를 합쳐서 완성하는 형태다. 이 같은 프로세스는 한 사람의 전문번역가가 작업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빠르고 저렴하게 자막 번역을 완성할 수 있게 해준다. 보이스루는 해외에 거주하는 수많은 번역가에게 일일이 개별 송금을 통한 수입 정산이 번거로운 관계로 블록체인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 지급을 위한 인프라를 개발하고 있다.
다음으로 옥소폴리틱스는 서로의 다른 정치적 견해를 이해하면서 효율적으로 토론하고 어젠다를 만들어가는 플랫폼이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거버넌스를 개방하고 합의해주는 시스템으로 구성됐다. 옥소폴리틱스는 월간 사용 활성자 기준 3만 명 이상의 이용자들이 글을 올리고 있으며 정치적인 어젠다에 대해서 본인의 성향을 찬반 투표하면서 데이터를 남긴다. 블록체인의 역할은 참여자들에 대한 신뢰 확보다. 온라인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의 대중 간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게 될 경우 정보의 신뢰성 보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서울거래소는 금융위원회에서 샌드박스 라이선스를 받은 회사 중 하나로 블록체인 기반으로 비상장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기존 비상장 주식 거래는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개인끼리 직거래로 진행돼 허위 매물, 대금 미지급 등 다양한 문제가 있었다. 서울거래소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거래 수수료를 무료(0%)로 낮췄다.
안동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프로토콜 경제가 주주와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용자까지 참여하는 형태로 진화된다면 프로토콜 경제를 도입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플랫폼 기업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