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大위기] Part Ⅲ IT 혁신 | ➊ 전염병 대응 절치부심 실리콘밸리, 소비 급랭 마케팅 직격탄 인력감축 불가피, 직원 퍼스트… 코로나19 진단키트 확보 안간힘
신현규 기자
입력 : 2020.03.30 18:19:35
수정 : 2020.03.30 18:32:33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협은 혁신의 심장이라 불리는 실리콘밸리에도 강한 영향을 주고 있다. 확진자 숫자가 급격히 늘어난 미국 캘리포니아 북쪽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에는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 집 바깥으로 불필요한 출입을 금지하는 강력한 명령이 떨어졌다. 10명 이상 모이는 자리는 금지됐고 거의 대부분의 IT 기업들이 자택근무를 권고하고 있다. 특히 주식시장이 요동치면서 주식(RSU)을 보너스 등의 형태로 받는 이 지역 엔지니어들은 불안감을 크게 느끼게 됐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서비스 ‘블라인드’가 미국 대형 IT 회사들 임직원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포브스지가 보도했는데, 그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3.8%가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또한 62%가 코로나19가 가져온 불안감 때문에 자신들의 소득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나마 급여를 한국 돈으로 수억원씩 받는 엔지니어들은 양호하다. 일한 만큼 급여를 받는 노동자들은 당장 자녀들에게 집에서 먹일 음식을 사는 데도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이 때문에 실리콘밸리 내 교육청에서는 학교 주차장에서 무료로 학생들을 위한 급식을 나눠주는 결정도 내렸다.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안전’을 위협받는 현재 상황 앞에서 실리콘밸리 또한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3월 중순 실리콘밸리의 상황이다.
아마존 물류센터의 모습
▶공급의 위기는 불길 잡아 가는 중
당장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확산되던 시기에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부품 공급선 확보였다. 스마트폰이나 반도체 등과 같은 IT 제품들을 주로 중국에서 아웃소싱하는 미국 IT 회사들은 중국에서 공장이 가동되지 않으면 완제품을 만들 수 없는 처지였다. 애플(스마트폰·PC), 아마존(태블릿·스피커), 테슬라(전기자동차) 같은 회사들뿐만 아니라 구글(스마트폰), 페이스북(VR기기) 등과 같은 곳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3월이 지나면서 중국 공장 가동률이 평균 50%를 넘어가면서 부품 공급 문제에 대해서는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미국 공급자 관리협회가 3월 초 설문한 바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을 위해 생산하는 중국 공장의 가동률은 50%를 넘어갔다. 아직 위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예 부품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수요 쪽에서 터지고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국 전역에 자택격리가 심해지면서 제품에 대한 소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페이스북의 2인자인 셰릴 샌드버그 COO(최고운영책임자)는 지난 16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마케팅 산업에 실질적 타격이 있을 것”이라며 “누구도 얼마나 (그 영향이) 클지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의 주된 수입원은 디지털 마케팅, 즉 광고다.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소비로 인해 디지털 마케팅 역시 어려워질 것이고, 그로 인한 타격이 얼마나 클지에 대해서는 예측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광고 수입을 원천으로 하는 구글, 페이스북 등과 같은 회사들이 얼마나 성장과 실적에 타격을 받을지도 가늠이 어려운 상황이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중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될 때 1분기 매출 전망치를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지면 인력감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원격근무 아이디어 공유 ‘붐’
그러나 이 와중에도 하나둘씩 새로운 유형의 활동들이 싹트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자택근무(WFH·Work from Home)를 보다 잘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이 지역 IT 회사들은 화상회의 솔루션으로 MS의 팀스(Teams), 시스코의 웹엑스(Webex), 구글의 행아웃(Hangout), 그리고 줌(Zoom) 등을 사용하고 있다. 정확한 사용자 숫자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 중에서 특히 ‘줌’의 사용빈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 우한 지역에서 코로나19가 퍼졌을 시기인 2월에 이미 줌의 경우 222만 명의 월간 사용자 숫자를 기록했다. 2019년 일 년간 199만 명이 늘어났는데, 그보다 더 많은 수가 한 달 만에 증가한 것이다. 대용량을 견딜 수 있는 능력과 간편함 등 ‘줌’이 가진 장점이 중국에서 검증되면서 사용자 증가가 가파른 것이다. 이 때문에 ‘줌’ 주최 측은 자사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원격으로 회의 등과 같은 이벤트를 진행할 때 소위 ‘꿀팁’들을 공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줌’은 ▲온라인 이벤트를 조직한다면 1시간 이상 끌지 마라(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게 딴 짓을 하기 매우 쉬운 환경이기 때문) ▲20명 이상이 모이는 온라인 미팅이라면 반드시 혼자 하지 말고 보조를 한 명 둬라(주최자는 말로 설명하고 보조 진행자가 채팅을 하는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시도를 하라는 뜻) ▲듀얼 모니터를 반드시 구하라(한 모니터에서 화상채팅을 하고, 다른 모니터에서는 자료를 띄워 두라는 뜻) ▲녹화를 반드시 하라(기록을 남겨서 회의에 오지 못한 이들도 배려하라는 이야기) ▲눈 맞춤을 하라(스크린이 아니라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말을 하면 상대방은 자신을 보는 것처럼 느끼고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는 뜻) 등과 같은 가상환경에서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실무적 팁들을 공유하고 있다.
구글의 인사담당 헤드로 일하다가 실리콘밸리에서 인사관리(HR) 솔루션 스타트업 ‘후무(Humu)’를 창업한 라즐로 복은 최근 자사 블로그에 원격근무를 잘하는 팁을 올렸다. ▲스케줄을 잘 지켜라(집에서 일하다 보면 헛되게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 ▲다른 사람이 일하는 시간을 잘 맞춰서 조심스럽게 일정을 짜라 ▲쓸데없는 이야기라도 더 많은 말들을 하자 ▲요리를 하는 사진을 올린다거나, 가상의 커피타임을 가진다거나 바보 같아 보이는 일이라도 공유하자 등이다.
지난해 열린 500 스타트업 데모데이
▶원격으로 진행되는 스타트업 데모데이·기술 콘퍼런스
실리콘밸리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원천 중 하나는 스타트업을 키우는 문화에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구글, 페이스북, 우버, 에어비앤비 등이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받아 커 온 기업들이라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유망 스타트업들이 투자자들을 만나는 것도 당장 차질이 생겼다.
이 때문에 와이컴비네이터나 500스타트업처럼 실리콘밸리에서 유명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들은 온라인으로 자신들이 키운 스타트업들을 벤처투자자들에게 연결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드롭박스, 에어비앤비 등을 키운 것으로 유명한 와이컴비네이터가 온라인으로 데모데이를 진행했다. 자신들이 겨울 동안 키워낸 200곳의 스타트업을 온라인으로 소개했는데, 약 1200명의 투자자들이 이들의 PT 자료를 보고 개별적으로 이메일을 보내 연락하여 투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3월 26일에는 500스타트업이 비슷한 방식으로 온라인 데모데이를 진행했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이 기술을 공유하는 자리인 콘퍼런스들도 빠르게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있다. 엔비디아가 3월 23일 개최한 자사 최대 개발자대회 GTC를 비롯해, 어도비의 연례 최대 이벤트인 어도비 서밋(3월 31일) 등이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신종 전염병 충격과 싸우는 실리콘밸리 대형 IT 회사들
실리콘밸리 IT 회사들은 코로나19 때문에 던져진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데이터를 활용해 코로나19의 진단율을 높이고 확산을 막는 방안이 이들 IT 회사들로부터 강구되고 있다. 구글은 3월 16일(현지시간) 알파벳의 자회사인 베릴리(Verily)와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실리콘밸리 일대(Bay Area)에 코로나19와 관련된 종합 사이트를 16일 오픈했다. 시민들이 이 사이트에 들어가 간단한 설문에 응하면 그 결과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고, 어디에서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지 등이 안내되는 사이트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3월 중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IT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가 늘어날 경우 주요 도시의 병상 숫자를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애플은 가짜뉴스 유포를 방지하기 위해 검증된 이들에게만 앱스토어에 코로나19 관련 정보 앱을 올리도록 하는 조치를 시작했다. 또한 애플카드 보유자 중에서 신청하는 이들에 한해 3월 한 달간 카드값을 갚지 않아도 한 달간 이자를 받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아마존은 코로나19 이후 특정 품목들의 가격상승을 막고 있다. 사재기를 통해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한 이들이 가격을 높여서 판매하는 것을 차단하는 등의 작업들이다. 여기에 아마존은 오프라인 쇼핑을 꺼리는 이들이 대거 온라인으로 전환함에 따라 물류센터 및 운송을 위한 인원 10만 명을 추가 고용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마존 글로벌 운영 담당 전무인 데이브 클락은 자사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최근처럼 힘든 시기에 아마존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증가 수요를 맞추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물류센터와 배송망을 위해 일할 10만 명의 풀타임 및 파트타임 포지션의 채용계획을 연다”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 식당, 여행, 호텔 등의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가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게 된 사람들이 아마존에 고용되었다가, 상황이 호전되면 다시 원래 직장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밝혔다. 여기에 아마존은 시급 15달러인 아마존 피고용인 대상 최저임금을 4월까지 한정적으로 시간당 2달러씩 올리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밖에 버라이즌을 제외한 대다수 이동통신사들이 무료로 데이터를 공급하고 있다.
LA에 있는 코스트코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
코로나19 백신 개발하는 스타트업들도 있어
실리콘밸리에 있는 바이오 기업들은 진단키트 공급과 치료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엔젤투자자 론 콘웨이는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대량생산하기 위한 펀드를 모금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한국계 기업 아벨리노랩은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 기준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유전자 진단하는 키트를 준비해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인증을 받았다. 미국 국방부 산하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18개월가량 걸리는 백신 개발 이전에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바이오 스타트업들에게 자금 투입을 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시리즈 <팬데믹>에 출연한 제이컵 글랜빌 박사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디스트리뷰티드 바이오’는 2002년 발생한 사스(SARS)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체를 재빠르게 진화시켜 오늘날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감지할 수 있는 항체를 개발하고 있다.
[신현규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