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大위기] Part Ⅱ Global ASEAN | 전염병에 가로막힌 커넥티비티, 자국민 안전 우선 아세안 국경 폐쇄 잇따라
문수인 기자
입력 : 2020.03.30 18:15:46
수정 : 2020.03.30 18:16:15
코로나19로 전 지구촌이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아세안의 상황도 점점 심각해지면서 유럽과 마찬가지 상황에 놓이기 시작했다. 각국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을 폐쇄하기 시작하는 등 강도 높은 조치들을 속속 시행하고 있다.
아세안은 2015년 말 아세안경제통합체(AEC) 출범 이후 유럽연합(EU)과 같은 단일 경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각국의 빗장을 거두고 커넥티비티(연결성)을 강화하는 노력을 해왔다. 그 물리적 토대로 도로망을 정비하고 국경 출입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통합’의 키워드에 맞는 정책들을 긴밀한 협조 하에 시행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그동안의 노력을 일거에 수포로 만들고 있다. 자국의 안전이 최우선시되는 시점에 아세안 공동체의 ‘커넥티비티’ 지향점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0일 라오스 정부는 향후 30일간 모든 종류의 도착비자(Arrival Visa)와 전자비자(E-visa) 발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또 기존 일부 국가에 대한 사증면제조치를 일시적으로 정지하고, 기존 입국비자 소지자의 경우에만 관계당국이 발행하는 건강검진서와 입국 전 14일간의 여행 이력서를 소지해야 입국을 가능토록 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내륙국 라오스는 인접 국가들과의 교류를 활발히 하기 위해 곳곳에 국경검문소를 두고 있었지만 이번 사태로 규모가 작은 국경검문소에 대해선 아예 폐쇄 조치를 내려 버렸다. 라오스와 태국을 잇는 우정의 다리도 전격 폐쇄했다. 기간은 한 달 정도지만 상황에 따라 연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상 자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을 봉쇄해 버린 것이다.
텅 빈 베트남 하노이 국제공항 체크인 카운터
태국도 국경 폐쇄란 강도 높은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진정기미가 보이지 않자 자국과 인접한 미얀마, 라오스 등을 연결하는 주요 국제 검문소 중 각국당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폐쇄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라오스와 연결된 우정의 다리뿐만 아니라 미얀마와의 우정의 다리도 막혔다.
우리 국민들을 예고 없이 사실상 입국금지시킨 베트남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캄보디아와의 통로를 사전 통보 없이 폐쇄해버렸다. 이에 캄보디아는 발끈, 자국에서 들어가는 베트남과의 연결 통로를 막아버렸다.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양국은 하루 만에 서로 국경 폐쇄조치를 철회했지만 앙금은 남아 있는 상태다.
내륙뿐만 아니라 해양 아세안도 마찬가지다. 내륙에 비해 연결성이 약한 말레이시아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하자 3월 17일부터 2주간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고, 자국민들의 해외여행 또한 금지했다. 그런데 이 조치로 싱가포르가 당황했다. 하루 평균 30만 명이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로 넘어가 노동력, 식량, 물자를 공급해왔기 때문이다.
각국의 봉쇄 조치에 아세안 내 국제선을 띄우지 않는 항공사들이 잇따르면서 역내의 연결성은 육상길뿐만 아니라 하늘길에서조차 막혀 버린 상태다.
이런 가운데 각국 자체 내에서도 강력한 봉쇄 조치들이 속속 시행되고 있다.
태국의 수도 방콕은 3월 22일부터 4월 12일까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장소 26곳을 선정해 아예 폐쇄해버렸다. 여기에는 음식점, 백화점, 편의점, 미용실, 시장 등 생활에 있어 필수적인 시설들이 포함됐는데, 이후 방콕 곳곳에서는 사재기 행렬이 이어졌다. 이에 방콕 당국은 식당의 경우 테이크아웃은 이용할 수 있고, 편의점은 간이 식탁만 금지된다는 등 부연설명을 하며 시민들 달래기에 나섰다. 실제 방콕 시내 글로벌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의 경우 탁자와 의자를 모조리 치운 채 영업을 하고 있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3월 9일 한 경찰관이 ‘봉쇄 지역’이라는 안내문이 내걸린 장소를 지키고 서 있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모든 기업에 재택근무를 실시하도록 요청했다. 인도네시아 역시 사재기 열풍이 일고 있는데, 일부 생필품에 대해 구매한도를 정해놓고 있다.
아세안의 이 같은 상황은 세계의 성장 동력으로 각광받았던 열기도 한풀 꺾이게 하고 있다.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관광 산업의 타격이 크고, 외국 투자 움직임도 당분간 살아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 최대 관광 대국인 태국 당국은 올해 외국인 관광객 수가 500만 명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태국 GDP에서 관광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로 관광 산업이 살아나지 못하면 전체 경제성장률은 꺾일 수밖에 없다. 태국 관광청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관광 산업 피해 규모를 GDP의 1.5%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태국 정부는 관련 산업의 피해 최소화 및 경기 부양을 위해 15조원을 투입키로 결정했다. 관광객들에게 자국에서 쓸 수 있는 현금을 주는 방안까지 고려됐지만 논란 속에 채택되지 못했다. 태국 정부의 다급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관광 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필리핀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필리핀 통계청에 따르면 관광 산업은 최근 10년간 꾸준히 성장해 현재 GDP의 10%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필리핀은 2022년까지 관광객 1200만 명 유치 및 3조9000억 관광수입 창출이라는 목표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아세안을 찾는 전체 유입 관광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필리핀이라고 뾰족한 수는 없다. 다만 관광이 본격 재개될 때를 대비해 자국 내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요소를 잠재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영업이 중단된 방콕 시내 유흥업소 주변에서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방역 작업에 나선 태국 군인들.
필리핀을 포함해 각국 정부가 쓰고 있는 주요 수단은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 동원 및 금리 인하 정책이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코로나19 사태 발발 후 자국 경기 부양을 위해 5조원이 넘는 지원책을 발표했다. 말레이시아는 소득세 납부기한을 연장하고 교통 숙박 바우처 지급 등을 통해 관광 산업 방어전에 돌입했다. 싱가포르도 관광 업계에 저리의 자금을 공급하는가 하면 법인세의 분할 납부를 허용했다. 필리핀도 금리를 0.25%p 인하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역내 국가들의 올 경제는 추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는 아세안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발 금융위기론도 지구촌을 엄습하고 있다.
태국국가경제사회개발위원회(NESDC)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 2월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2.7~3.7%에서 1.5~2.5%로 1.2%p 하향 조정했다. 올해 4.8%의 목표치를 세웠던 말레이시아는 이번 사태로 3.2~4.2%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싱가포르는 아예 최악의 경우 마이너스 성장도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폭은 크지 않지만 성장률이 감소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베트남이 선전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충격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 목표치는 6.8%,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6%대를 유지하느냐가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