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大위기] Part Ⅱ Global 일본 | 직격탄 맞은 도쿄올림픽… 갈팡질팡하다 연기 결정 아베, 리스크 관리 낙제점
정욱 기자
입력 : 2020.03.30 18:13:16
수정 : 2020.03.30 18:13:29
유럽과 미국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며 전 세계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화두로 부상한 지난 3월 14일.
토요일, 주변엔 별다른 시설도 없는 도쿄 다카나와게이트웨이역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어디론가 이동을 하려는 사람보다는 역에 머물며 구경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역의 이름과 날짜가 찍힌 기념 티켓을 사는 데만 심할 때는 3시간 반이 걸렸다. 서울의 2호선처럼 도쿄 중심부를 원형으로 순환하는 야마노테선에서 49년 만에 새롭게 문을 연 것이 다카나와게이트웨이 역이다. JR의 열차기지를 개발하다보니 아직은 역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곳이지만 열차 팬들이 몰려들며 이날 4만3000여 명이 방문했다. 역이야 개장하더라도 축하행사 등은 수개월 뒤로 연기해도 좋았을 듯싶지만 야마노테선을 운영하는 JR에선 강행했다.
다카나와게이트웨이 역뿐만이 아니다. 이날 일본 전역의 공원은 휴교기간 중 갈 곳이 없던 초중고생과 가족들로 붐볐다. 3월 2일 갑작스런 휴교가 시작된 후 학부모들로부터 “하루 종일 애들을 어떻게 집에서만 보느냐”는 비판이 쏟아지자 일본 정부에서 근처 공원 정도는 가도 좋다고 말한 영향이 컸다. 일본의 일상을 보다보면 전 세계가 코로나19 확산 저지를 위해 싸우는 상황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일본 정부 차원의 규제 수위는 최고조로 높아져 있다. 초·중학교는 휴교가 지속되고 있으며 대규모 인원이 몰리는 디즈니랜드 등 주요 시설도 모두 문을 닫았다.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날로 늘리고 있으며 프로 스포츠 역시 모두 중단됐다.
괴리가 발생하는 것은 일본 정부가 코로나19의 일상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하려 하고 있어서다. 아베 총리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감염자의 80%가 경증환자며 중증화한 환자의 절반가량이 회복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축소 의혹을 받으면서도 검사 자체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 확진자 급증 등이 의료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염려 외에도 일본 정부에 한 가지 더 변수가 있다. 7월 24일부터 시작될 도쿄올림픽이다.
시작부터 삐걱거리더니 연기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성화는 그리스를 일주할 예정이었지만 관객이 몰리자 그리스 정부가 하루 만에 중단을 결정했다. 종목별 세계대회가 중단되면서 출전권 배분이나 각국별 대표 선발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전 세계가 빗장을 걸어 잠그는 상황이다 보니 일본 국민들도 개최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이다. 아사히신문이 3월 14~1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도쿄올림픽과 관련해 연기와 중지를 택한 의견이 각각 63%와 9%였다.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답변은 23%에 그쳤다. 도쿄올림픽조직위(이하 조직위) 등에서도 연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카하시 하루유키 조직위 이사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올여름 열릴 수 없다면 1~2년 연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주요 7개국(G7) 회담 후에 “완전한 형태로 치르기로 했다”면서도 개최시점에 대해서는 말을 흐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개인적 의견이지만 1년 연기가 나을지도 모르겠다”며 “무관객은 상상할 수도 없으며 (올림픽을 위해) 훌륭한 시설을 건설한 것도 아깝지 않으냐”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발언이 나올 때마다 연기·중지 관련 보도들이 들끓고 일본 정부에서는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서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세계 스포츠계의 강한 반발이 있고서야 연기로 돌아섰다. 일본 정부가 강행을 고집해왔던 것은 IOC의 도쿄올림픽 중지 결정만은 피하기 위해서다.
일본 회계감사원에 따르면 올림픽 관련한 일본 정부의 지출이 1조600억엔(약 12조340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도쿄도와 조직위가 각각 1조 4100억엔과 6000억엔가량을 집행해 전체로는 3조엔을 넘는다. 취소가 되면 이 비용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여기에 올림픽에 맞춰 이뤄진 민간의 투자도 있다. 비용만 문제가 아니다. 아베 총리는 잃어버린 20년, 동일본대지진을 넘어섰음을 선언하는 이벤트로 올림픽을 추진해왔다. 올림픽이 중지되면 이를 진두지휘한 아베 총리에도 정치적 타격이 적지 않다.
올림픽 개최와 관련한 최종 결정권한은 IOC가 갖고 있다. IOC가 안전상의 이유로 중지 검토를 발표한 뒤 60일 내에 해당 사유가 해소되지 않으면 중지된다.
지금껏 올림픽이 중단된 것은 하계 3번과 동계 2번으로 총 5번이다. 모두 1·2차 세계대전 시기다. 일본은 1940년 하계올림픽이 중지된 경험이 있다. 연기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올림픽 헌장에 ‘4년에 한 번씩 개최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헌장 개정은 과거에도 수차례 이뤄졌으며 회원국 간 동의만 이뤄지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이를 위해선 IOC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개최국인 일본 입장에서 연기를 먼저 말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월 12일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활용해 미일 공동으로 연기를 제안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 후 몇 시간 뒤엔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1년 연기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연기가 이뤄진다면 아베 총리 입장에선 최악은 피할 수 있다. 오히려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정치적 구심력을 강화시킬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올림픽 개최 때까지는 힘을 모아달라는 말로 자신에 대한 반발을 잠재울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올림픽 연기가 이뤄지면 아베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코로나19와 인류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벌이는 축제의 제전을 일본이 주최한다는 식으로 도쿄올림픽에 새로운 의미를 덧칠할 수도 있다.
IOC 입장에서도 중지보다는 연기가 나은 선택이다. 연기가 이뤄지면 전 세계 방송국들과 체결한 중계권료 계약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여기에 코로나19 극복을 축하하는 장으로써 올림픽을 부각시켜 그동안 IOC에 쏟아진 지나친 상업주의 경도 비판도 잠재울 수 있다. 만일 2년 연장이 이뤄질 경우 2022년엔 동계올림픽, 하계올림픽, 아세안게임, 월드컵 등이 잇따라 열리는 대형 스포츠의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연기가 말처럼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당장 일정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도쿄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은 2021년 7월 말에 이미 다른 행사를 유치한 상태다. 여기에 각종 프로 스포츠 일정도 고려해야 한다. 2년 연기설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2년 뒤엔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저장 탱크가 가득 찰 시점이다. 올림픽에 맞춰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문제가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이미 정해진 출전국을 인정할 것인지, 또 각국도 국가대표 선수 선발을 어떻게 할지를 두고 혼선이 불가피하다. 또 일본정부나 조직위 입장에선 비용문제도 있다. 올림픽 개막에 맞춰 건설한 경기장 등의 유지관리 비용만 해도 수백억엔은 될 것이란 게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여기에 이미 올림픽 선수촌을 분양받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 문제 등도 불거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