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LUXMEN·현대경제연구원 공동기획 한국경제 위기 大진단| 위기 타개할 산업정책은… 해외 인재 유치, 혁신형 창업 올인해야
입력 : 2019.09.23 17:03:29
수정 : 2019.09.23 17:03:47
우리 경제가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임을 고려하면, 세계 경제가 둔화되고 글로벌 교역이 부진하면 우리 수출 경기도 부진해진다.
수출 경기는 2017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는 양호했지만, 2018년 하반기부터 이상 조짐이 보이더니 12월부터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플러스를 기록하지 못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누적 수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간 대비 -9.5%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수출 증가율이 마이너스가 될 확률은 거의 100%다. 마이너스 한 자리가 될 것인지 두 자리가 될 것인지를 두고 경제전문가들이 고민할 것 같다.
Check 1 반도체 경기 부진에 상품 단가 하락까지, 수출 위기
최근의 수출 감소의 원인은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업종의 경기 부진, 수출상품 단가 하락, 세계 교역 부진, 주요 수출 시장인 중국의 경기 둔화와 경제구조 변화 등이다. 반도체 업종의 경기와 수출 상품 단가의 반등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고 해도 그것이 의미 있는 개선의 모습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세계 교역 부진은 만성적인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을 의미하는 ‘영속적인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인 세계 경제 흐름의 영향이 작용하기 때문에 교역이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다. 여기에 미중 무역분쟁은 기술 및 경제 패권을 둘러싼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기 때문에 누구 하나가 포기하기 전까지는 세계 경제의 가장 큰 하방 리스크 요인 목록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경제 구조 업그레이드가 우리나라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 역시 수출 경기 등락을 떠나 근본적인 차원에서 한국의 수출 개선이 예전만큼 쉽지 않을 것을 시사한다. 올해 1~7월간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간 대비 -17%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중 중국의 총수출 증가율은 +1%를 기록했다. 중국에 많은 수출을 하는 우리로서는 중국의 총수출이 증가하는 기간 중 우리의 대(對)중국 수출이 크게 감소한 점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 이유는 중국의 기술력이 진전되어 자국 중간재 사용 비중을 확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가공무역 위주의 대(對)중국 수출 구조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 중 가공무역 비중은 약 45% 정도로 대만의 48%를 제외하고는 다른 주요국(미·일·독 평균 16%)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중국의 수요 변화에 취약한 점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수출 측면에서 중국과의 동조화 현상이 소멸된다는 점은 세계 경기 및 중국 수출이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수출 경기는 여전히 부진한 모습에 머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중국의 수출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위협 역시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2016년 조사 기준으로 한국의 기술수준 120개 국가전략기술 전체 기준은 중국 대비 1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2014년 한중 간 기술격차였던 1.4년에 비해 0.4년 더 앞당겨졌다. 2년간 중국이 한국 기술 수준을 0.4년 더 추격한 것이다. 지금은 한국과 중국의 기술수준이 거의 동일할 것으로 추정된다.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항공우주 부문에서는 중국의 기술 수준이 한국보다 훨씬 앞선다고 평가받고 있다.
Check 2 첨단기술·고부가가치 산업의 경쟁력 약화
중국과의 기술 격차 축소는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의 추락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UNIDO의 CIP(Competitive Industrial Performance Index)지수를 보면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순위는 2014년 4위에서 2015년과 2016년 5위로 한 단계 하락했다. 반면 중국은 2014년 한국보다 한 단계 낮은 5위에서 2015년 한국을 제치고 4위로 부상하였으며, 2016년에는 미국마저 추월하여 3위로 올라섰다.
제조업 경쟁력 하락은 제조업 부문에서의 부가가치 위축의 영향이 클 것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력산업 침체를 경험한 주요 제조업 강국(한·미·일·독) 가운데 제조업 부가가치 증가세가 가장 크게 둔화된 국가가 한국이다. 한국은 최근 약 15년간 제조업의 연평균 총부가가치 증가율이 3.7%p 하락하는 동안, 일본은 0.8%p, 독일은 1.2%p 증가했다. 미국은 0.5%p 정도로 미미하게 하락했다. 전 산업의 경우에도 한국이 2.1%p나 하락하는 동안, 미국은 1.3%p만 감소했다. 반면 일본과 독일은 모두 1.0%p씩 증가했다.
다른 국가와 달리 유독 한국의 부가가치 증가율 하락폭이 큰 이유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제조업과 ICT, 사업, 금융, 교육, 보건의 지식기반서비스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이 성장성 및 혁신 잠재력 측면에서 취약하기 때문이다.
먼저 성장성을 보면 국내 고부가 산업의 총부가가치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증세를 보였지만, 2014년을 전후해 감소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GDP 대비 고부가 산업 비중은 독일, 일본, 미국 등과 비교해 가장 낮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중국에게도 역전당했다.
R&D 투자로 본 혁신 잠재력은 주요 경쟁국에 비해 높게 평가할 수 있으나, 첨단기술제조업 부문은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고부가가치 산업의 기업부문 R&D는 2010~2015년간 연평균 8%대의 증가율을 보여 유사 기간 동안 5%대를 보인 일본, 6%대를 보인 독일에 비해 혁신 잠재력은 높았다. ICT(컴퓨터·전자), 제약, 항공우주 등 첨단기술제조업 R&D 투자액도 비슷하게 한국의 증가율이 일본, 미국, 독일보다 높아 2010년대 초반까지는 혁신 잠재력 측면에서 강점을 보였었다. 그러나 2010~2012년 두 자릿수 성장을 보이던 첨단기술제조업 분야의 R&D 투자 증가율이 2013년 한 자릿수로 떨어진 후 2015년에는 전년대비 4.0% 감소하면서 역성장으로 전환했다.
Check 3 성공 가능성이 높은 연구에만 매달리는 R&D
경쟁력 약화의 또 다른 측면이자 원인은 R&D 투자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에 부합하는 투자성과, 질적인 측면에서의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비는 많다. 그런데 그 연구비가 거의 대부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연구에 투입된다. 한국의 R&D 성공률이 거의 100%에 육박한다고 한다. 즉 성공 가능성이 높은 연구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자신이 잘할 수는 없겠지만 꼭 해야만 하는 연구는 기피한다. 이러한 연구 풍토에서는 투자 대비 효과가 낮을 수밖에 없다. 1990년 OECD국 평균 수준(2.1%)이었던 한국의 GDP대비 R&D 투자액 비율(2.2%)은 이후 확대되면서 2017년에는 OECD국 평균의 2배 수준임과 동시에 OECD국 중 1위인 4.6%를 기록했다.
그러나 질적 측면을 보면 한국 R&D 투자의 성과는 OECD 평균 수준보다 떨어진다. 한 국가가 연구 인력에 비해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품질 높은 특허를 취득하는가를 나타내는 ‘연구원 1만 명당 삼극특허(잠깐용어 참조) 수’ 측면에서 한국은 OECD 평균에 비해 낮을 뿐만 아니라 2010년까지 증가했던 추세에서 그 이후에는 감소세로 전환됐다.
구개발의 핵심인 연구 인력에 대한 처우나 대우가 낮은 점도 세상을 바꿀 만한 연구 결과를 낳지 못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우리나라 연구원들은 국내보다는 해외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 확인되고 있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가 2016년 이공계 박사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년 안에 다른 취업 기관을 찾아야 한다면, 국내 혹은 해외 중 어느 곳을 우선으로 생각하는가’에 대한 답변에서 국내는 31%, 해외는 47%로 응답했다. 연구 수행의 핵심인 인적 자본이 유출되어 연구 수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게 되는 부작용이 초래되는 것이다. 고급 인력의 유입 매력도를 나타내는 IMD의 해외고급인력유인지수(잠깐용어 참조) 0~10 사이의 값을 가지는 IMD의 해외고급인력유인지수는 2005년 5.14p(27위)에서 2018년 4.00p(43위)로 악화됐다. 국내 연구자들은 국내 연구 환경에 대해서 연구자에 대한 처우 및 지원 불만족, 단기성과 중심의 실적 평가 등의 이유로 국내보다는 해외 취업을 더 선호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연구개발 활동에서 세상을 바꾸는 ‘그 무엇’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지적재산권 보호나 새로운 도전에 대한 태도가 약하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의 보호가 잘 이뤄지거나 새로운 문화 및 도전에 대한 태도가 전향적일 경우 기술 혁신의 유인이 더 커지게 된다. 굳이 숫자로 이야기하자면,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 정도는 OECD 국가 평균은 7.25p지만 한국은 6.00p로 한국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태도 분야를 보아도 OECD 국가 평균은 6.53p지만 한국은 5.83p로 한국은 도전을 받아들이는 태도 측면에서 폐쇄적이거나 적응 능력이 약하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부두
Check 4 자동차·반도체가 20년 동안 주력산업, 신산업의 부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글로벌 기술과 산업 지형도는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산업 구조는 20~30여년 전에 머물러 있다. 과거 제조업에서 성장을 견인했던 산업이 현재에도 주력 산업이다. 1970~1980년대 GDP 중 비중이 높았던 화학 산업의 비중은 2010년대에도 여전히 4% 중반이다. 1990년대 중반 GDP 중 비중이 3%대로 높아진 자동차(운송장비) 및 반도체(전기전자)는 당시 한국 수출의 2대 품목이었고 20여 년이 지난 2015년에도 수출 2대 품목에 랭크되어 있다.
신산업 부재는 창업이 힘들기 때문이다. 창업해도 생계형 창업이 대세다. 특히 새롭게 변화되는 시대 트렌드에 잘 적응하는, 혹은 미래 트렌드를 창조해낼 수 있는 청년 창업이 저조하다. 선진국 대비로도 국내 청년층 창업률이 낮다. 글로벌 기업가정신 모니터(GEM)에서 42개월 이내 창업기업 비율을 의미하는 초기창업활동비율(Total early-stage Entrepreneurial Activity; TEA)을 연령별로 보면, 2016년 한국은 18~24세 1.8%, 25~34세 4.7%로 조사됐다. 이를 한국과 같은 혁신주도형 경제에 속한 미국, 독일, 핀란드, 이스라엘, 그리고 효율주도형 경제인 중국과 비교해 보면, 한국은 가장 낮은 수준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