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지냈던 김석봉 씨 부부는 지금 지리산 기슭에서 살고 있다. 젊은 아들은 민박 손님으로 온 기보름 씨를 아내로 맞아 부모 곁에서 지내고 있다. 이 집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모녀처럼 오순도순하다. 도시생활을 접은 그들의 얼굴엔 늘 웃음이 넘친다. 도시의 화려함이나 보다 많은 소득을 얻을 기회를 포기한 대신 아름다운 자연과 행복한 가정을 얻었다.
소설가 공지영은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월급 아닌 연봉 200만원으로도 행복하게 사는 인물을 소개했다. ‘쌍계사 최 도사’는 평사리에서 성수기 5개월간 주말에만 주차요원으로 일한다. 그게 수입의 전부다. 그래도 행복해 한다. 그 돈도 없을 땐 필요한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나마 돈이 생기니 필요한 게 그리 많아져 다시 빈손이 되고 싶단다.
눈을 돌려 밖을 보면 부탄이나 코스타리카 같은 가난한 나라의 행복지수가 아주 높다고 한다.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 돈과 행복은 반비례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컬럼비아대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덴마크나 노르웨이처럼 개인소득이 아주 많은 나라의 행복도도 상당히 높다. 이건 또 무슨 까닭일까.
경제 의사결정이 반드시 합리적으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란 연구로 합리적 기대가설을 엎으며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돈과 행복 의 상관관계를 뒷받침할 결정적 근거는 없다고 했다. 카너먼 교수는 다만 평균 이상의 수입을 얻는 사람들은 저소득층에 비해 만족도가 높아지는데 원했던 것보다 훨씬 큰 부를 얻으면 오히려 우울해한다고 했다.
이처럼 돈이 곧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돈은 행복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지리산 도사들은 아주 적은 돈으로도 만족하고 살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곳에선 적어도 돈은 불행해질 확률을 낮추는 구실도 한다.
앤드루 오스왈드 영국 워릭대 교수도 돈이 행복을 얻는 데 일정부분 역할을 한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리처드 루카스 미시건주립대 교수도 연구를 통해 “연간 15만달러를 버는 사람들이 4만달러를 버는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진짜 행복은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돈 걱정을 넘어서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마이클 노턴 미 하버드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새로운 결과를 제시했다. 같은 돈을 쓰더라도 자신을 위해 쓸 때보다 타인을 위해 쓸 때 행복도가 훨씬 높아졌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돈은 가정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 사기를 당할 위험에 처하지 않으려면 보다 많은 돈을 버는 게 유리하다. 다만 진정한 행복, 더 높은 행복을 얻기 위해선 돈을 넘어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돈을 부릴 수 있을 때, 특히 남을 위해 쓸 수 있을 때 행복도가 높아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