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춘 에스씨엘(SCL) 회장 | 나눌 수 있을 때 행복하다 “나누는 게 곧 富者 되는 길입니다”
입력 : 2014.04.25 10:09:18
빈농의 장남이던 15세 중학생은 단돈 500원을 손에 쥐고 경상북도 김천을 떠났다. 서울로 상경하는 버스 안에서 소년은 생전 처음 하느님께 꼭 사업가로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서울의 볼펜 스프링 공장에서 보조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는 주경야독하며 24시간을 쪼개고 또 쪼갰다. 스물 한살에 작은 회사를 차려 시작한 사업은 여름날 태풍마냥 파고가 심했다. 1980년엔 오일쇼크에 신음해야 했고 1992년엔 5억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났다. 그땐 가족이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자살까지 결심했다.
모든 걸 책임지고 ‘나 하나만 죽으면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이 서른여섯, 장년의 사업가는 그 순간 하느님께 단 한 번만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살려만 준다면 100억원대의 장학재단을 세워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가까스로 다시 일어섰다. 그리곤 외환위기 때 경쟁업체를 인수하며 성장 궤도에 오르게 된다.
외환위기 전 연매출이 20억원이던 회사는 지난해 1300억원을 기록하며 껑충 성장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경기도 부천에 본사를 둔 자동차 부품업체 에스씨엘(SCL)의 이상춘 회장이다.
경기도 화성과 충남 당진, 중국 톈진에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에스씨엘은 국내 자동차 패드 스프링 부품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중견업체다.
올 초 국세청이 발표한 아름다운 납세자 33인에 이름을 올린 이 회장은 2년 전 한국 최초의 계획기부 모델인 기부자조언기금(Donor Advised Fund)의 첫 가입자가 돼 ‘아너 소사이어티(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 기부자 모임)’ 회원이 됐다. 6년 전엔 상록수장학재단을 설립하며 하느님과의 약속도 지켰다.
“500원 갖고 자수성가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어요.(웃음) 제 등뒤 액자에 넣어놓은 게 1992년에 부도 맞은 어음입니다. 늘 그때를 곱씹고 있지요. 어쩌면 그런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련이 됐죠. 그래서 제 두 아들과 장학재단에서 지원하는 아이들에게 나누면 행복해지고 부자가 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게 행복이죠”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다
“아너 소사이어티 모임에 가면 5000원짜리 점심값에서 2000원을 아껴 1억원을 기부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기가 찰 노릇이죠. 그런데 그분들 얼굴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나눔은 돈이 많아서 하는 게 아니라 아껴서 하는 것이죠. 기부하는 분들은 늘 검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