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왕으로 불리는 핌코의 빌 그로스 최고 투자책임자가 지난 8월 “주식을 추종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투자전망 보고서를 냈다. 이에 대해 세계 최대 뮤추얼펀드인 뱅가드를 창업한 존 보글은 “주식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수익률도 높다”면서 “주식 시장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누구의 말이 맞고 어떻게 대응해야 한단 얘기인가.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유럽 재정위기가 고조되면서 세계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휩쓸려 다니는 유동성 홍수에 휘청거리고 있다. 글로벌 위기로 풀린 유동성이 몰리는 곳에선 버블이 생기고 갑자기 빠져나가는 곳에선 경기침체는 물론이고 국가경제가 붕괴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경기를 살리겠다고 각국 중앙정부가 돈을 풀었지만 금융기관들은 저부터 살겠다고 돈을 돌리지 않아 과잉유동성 속에 신용경색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의 고수들까지 엇갈리는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문가가 틀리는 세상
지난 7월 말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연초부터 예상했던 ‘상저하고’ 전망은 틀렸다”며 고해성사 같은 리포트를 내놨다. 그의 고백처럼 지난 연말 1825포인트로 끝난 코스피는 연초부터 수직으로 상승해 3월 14일 2057.28까지 치솟았다가 7월 하순 1758.99까지 떨어졌다. 연말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만 지금까지만 보면 ‘상고하저’라고 했어야 맞을 전망이었다.
그런데 ‘상저하고’를 예상한 것은 비단 신영증권뿐이 아니다. 대부분 증권 전문가들이 ‘상저하고’를 예상했고 정부까지도 ‘상저하고’의 경제흐름을 내다봤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침묵하고 있는데 조 센터장만이 정직하게(?) 잘못을 실토하고 나선 셈이다.
어찌됐든 시장 전문가들을 믿고 따라갔던 투자자들은 손해를 보았거나 좋은 투자기회를 날려버렸다. 일반 투자자만이 아니라 기관투자가들도 대부분 대동소이한 결과를 냈다.
이는 펀드자금의 흐름에서도 나타난다. 연초 104조원대에 달했던 국내 주식형수익증권 잔고는 5월 21일 90조원까지 줄었다가 이후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다. 상반기 주가가 저조할 것으로 예상해 물량을 던졌던 펀드나 자문형 랩 중엔 주가가 치솟자 뒤늦게 따라붙었다가 대규모 손실을 낸 곳도 속출했다. 특히 자문형 랩은 70% 이상이 지난 상반기에 코스피 수익률을 훨씬 밑도는 저조한 기록을 냈다.
기관들마저 흔들리니 투자자들은 주식을 떠나 확정금리 상품으로 달음질치고 있다. 2007년 12월 42.8%까지 치솟았던 국내 펀드자금 중 주식형 펀드 비중은 현재 30% 수준을 맴돌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 사태로 감독당국이 대출통제까지 강화하자 시중자금은 정기예금이나 채권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 연말 44조8000억원대였던 채권형 펀드 잔고는 8월 10일 47조5000억원대로 늘었다. 단기자금이 몰리면서 머니마켓펀드(MMF) 잔고는 이 기간 동안 53조원대에서 80조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급증했다. 시중자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단기부동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좋은 펀드는 그래도 수익을 냈다
시장이 크게 흔들렸지만 소신을 갖고 투자한 펀드들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연말까지 설정된 자산 10억원 이상인 1336개 주식형 펀드 가운데 764개가 연초부터 7월 말까지 플러스 수익률을 유지했다. 이 기간 중 3% 이상 수익률을 유지한 주식형 펀드는 350개에 달했다.
채권형 펀드는 같은 기간 중 183개 가운데 네 개만 빼고 모두가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3% 이상 수익을 낸 채권형 펀드는 102개로 전체 펀드의 56% 정도가 금융기관 예금에 비해 훨씬 양호한 수익률을 가져다줬다.
주식형 펀드 중 7월 말까지 좋은 성적을 낸 것은 KB자산운용의 중소형포커스펀드와 IBK자산운용의 집중선택20 펀드 등이었다. 이외 상위펀드의 대부분은 운용사에 관계없이 삼성그룹주펀드가 차지했다. 반면에 인덱스펀드들은 이 기간에 대부분 저조한 성과를 냈다. 코스피가 연초 이후 7월 말까지 소폭 상승했는 데도 인덱스 펀드 성적이 저조했다는 것은 그만큼 운용능력이 떨어지는 펀드가 많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저평가 우량주 급반등
그나마 다수의 펀드가 그래도 양호한 성과를 낸 데는 연초부터 3월까지 주가가 강세를 보였을 뿐 아니라 이후 조정장에서 소외됐던 종목들이 크게 오른 게 한몫했다.
국내 증시에는 2년 전부터 ‘차화정’이니 ‘전차군단’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했다. 일부 자문사를 주축으로 다수 펀드매니저들이 몇 개 종목을 밀어 올리며 나온 말이다. 그런데 이들 종목에 손을 댄 펀드 중 선두의 일부는 제법 수익을 올렸으나 막차를 탄 대부분은 큰 손실을 냈다. ‘폭탄 돌리기’에 당한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삼성전자이다. 지난해 8월 중순 이후 주가가 100% 이상 상승한 삼성전자를 일찍 편입한 삼성그룹주 펀드는 지금까지 수익률표의 상단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유행의 바람을 타던 차화정이나 그 뒤를 이은 IT주도 아닌 종목 중에 최근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게 있다. 증시 전문가들조차 거들떠보지도 않던 종목들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 위기로 코스피가 급락해 1700선 언저리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지난해 9월 말 주가 3만원이 깨졌던 한국가스공사 주가는 지난 8월 14일 5만1600원까지 상승했다. 배당을 빼더라도 이 기간 동안 70% 이상의 수익률을 냈다. 개인들이 던지는 물량을 외국인과 기관들이 꾸준히 사들이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E1이나 SK가스 등은 같은 기간 중 상승-조정-재상승을 거치며 역시 주가가 크게 오른 종목 대열에 끼었다.
이들 종목은 평소엔 기관은 물론이고 해당 업종 애널리스트조차 관심을 주지 않았으나 주가는 가치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신용경색이 심화되면서 급락했던 은행주도 최근 가스주와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다. 다만 7월 하순 바닥을 치고 상승하고 있지만 아직은 가치를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8월 14일 기준 27조원대의 자본총계를 갖고 있는 신한지주의 시가총액이 17조원대, 23조원대의 자본총계를 갖고 있는 KB금융의 시가총액은 14조원대에 불과했다. 20조원대의 하나금융지주는 시가총액이 9조원대에 머물렀다.
이처럼 주식시장에선 유행에서 소외됐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제 가치를 찾는 종목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대가들이 긍정적 시각을 유지하라는 이유다.
긍정에 투자하라
루치르 샤르마 모건스탠리투신운용 신흥시장 총괄대표는 “비관론이 판치다 보니 시장 전망이 과도하게 낮아진 상태”라며 “지나친 비관론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해 조그만 서프라이즈에도 시장은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샤르마 대표는 주식이 죽어가고 있다는 빌 그로스의 견해에 대해서도 “시장이 바닥에 있거나 투자심리가 불안할 때 항상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현재 주식 밸류에이션은 투자하기에 괜찮은 수준이다. 올해 들어 전 세계 경기가 지지부진하지만 다우와 나스닥지수는 오히려 7.2%와 13.9% 올랐다”는 얘기로 긍정적 측면을 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채권수익률이 급락하면서 외국인들은 주식, 특히 배당주 쪽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S&P 500기업의 배당수익률은 평균 2.6%로 1.54% 수준인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보다 1% 포인트 이상 높다. 영국의 FTSE 100 편입종목의 85%가 10년 만기 영국 국채 수익률보다 높은 배당수익률을 유지하고 있고 MSCI유럽종합지수 편입종목의 평균 배당수익률은 4% 수준으로 이 지역 A등급 이상 회사채 수익률보다 1% 포인트 정도 높게 나오고 있다.
선진국 연기금 배당주 ‘사자’
이처럼 상장기업의 배당수익률이 채권수익률보다 높게 나오자 선진국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이 배당주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국에선 지난 1분기만도 글로벌 배당주 펀드에 100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들어왔다.
국내에서도 실적이 급증한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어 배당주를 비롯한 우량주 투자의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 실적이 감소했거나 적자를 내는 기업도 있지만 삼성전자나 삼성물산 삼성전기 삼성카드 등 삼성그룹주나 GS리테일 LG하우시스 현대위아 현대에치씨엔 락앤락 컴투스 한미약품 등은 순이익이 급증해 표정관리를 할 정도다. 투자의 성공 여부는 숨어있는 진주를 얼마나 열심히 찾느냐에 달린 셈이다.
그렇다면 현재 투자할 만한 대상은 무엇이 있을까.
이윤규 사학연금 기금운용관리단장은 “금리가 너무 낮아졌기 때문에 리스크 자산을 선택해야 수익률을 맞출 수 있다. 주식과 지수에 연동한 원금보장형 ELS나 크레디트 채권(신용도를 감안해 투자할 채권) 등을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이 단장은 “최근 동부그룹 채권은 6~7%선에 거래되고 있다. 개별기업 채권은 리스크가 있지만 한화 동부 등 그룹주 채권은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LS투자와 관련해 이 단장은 “낙인(knock-In)이 안된 개별기업 ELS는 손실 가능성이 있으니 지수연계 원금보장형 ELS에 한해 관심을 두라”고 했다.
다만 금융기관들이 과도하게 움츠리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경계할 대상이다. 저금리로 돈이 풀린 상태에서도 신용경색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 그만큼 현금이 있다면 급매물을 싸게 쓸어담을 수 있다는 얘기이나 반대로 시장이 잠깐 반짝한다고 추격매수를 하지는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직은 철저히 싼(가치에 비해) 대상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