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50년을 넘어 희망의 100년으로 가는 길을 열겠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전경련 회장 취임 일성이다. 허 회장은 지난 2월24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제50회 정기총회에서 제33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됐다. 이 발언에는 올해 8월16일로 창립 50주년이 되는 전경련의 역사에 대한 감회와 앞으로 다가올 50년에 대한 각오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허 회장은 “자유시장 경제의 창달과 국민경제의 발전이라는 전경련의 존립 가치를 실현하는데 회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전경련의 기본정신에 충실하겠다는 얘기다.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전경련이 앞장서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희망의 100년으로 가는 길을 열고자 경제의 글로벌화에 앞장서고 전략 국가들과의 경제협력과 민간 경제외교도 강화할 것이다. 국민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고 국가적 과제를 정부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만장일치 회장 추대, 한편의 드라마 방불
2월 24일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정기총회에서 신임 허창수 회장이 회장단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허 회장이 전경련 수장으로 추대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전경련은 올 1월1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회장단 회의를 열고 차기 회장의 추대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을 비롯해 두 사람의 전임 회장인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과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등이 추대위원으로 선정됐다. 이들 추대위원은 전경련 회장단 20명중 해외출장중인 1~2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과 접촉해 회장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전경련측이 회장으로 가장 추대하고 싶었던 사람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었다. 그러나 이 회장이 바쁜 일정 등을 이유로 끝까지 사양하자 차기 회장 적임자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이 회장이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추대위원들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도 찾아갔다. 과거 전경련 회장직을 10년간 맡았던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뜻을 계승한다는 차원에서도 회장직을 수락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현재 맡은 자동차와 철강사업이 워낙 바빠서 어렵다며 고사했다. 4대 그룹 총수 중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새로운 회장이 누가 되든 반대하지 않겠다는 의중을 밝혔다고 한다.
추대위원들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에게도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고 있어서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면 더욱 바빠진다”며 오히려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박 회장은 줄곧 의사생활을 하다가 2007년에야 두산건설 회장을 맡으며 기업 경영을 시작한 만큼 재계 투신기간이 너무 짧다고 고사했다. 결국 허창수 회장을 새로운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하자는 재계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난 2009년부터 전경련 부회장을 맡으면서 전경련 회장단회의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빠지지 않고 출석해온 허 회장은 이렇게 옹립됐다.
전경련은 지난 2월17일 회장·고문단 회의를 열어 조석래 회장 후임으로 허창수 회장을 추대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결국 허 회장도 이를 수락했다. 허 회장은 이튿날인 18일 서울 역삼동 GS타워 2층 로비에서 기자들에게 회장직을 수락하게 된 배경을 솔직하게 공개했다. 그는 “원로들과 회장단이 워낙 강하게 요청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의 추대 의지가 자신이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는 얘기다.
전경련 회장 추대와 수락 과정은 ‘재계의 맏형격인 전경련의 수장이 더 이상 공석이어서는 안 된다’는 회장단의 강한 위기의식이 만들어낸 한 편의 드라마다. 허 회장과 대립구도를 형성한 사람이 없었으며 ‘회장직을 수락하기만 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진 결과다.
허 회장은 2월 총회 후 가진 기자회견 때 전경련 회장의 역할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 전경련 회장은 국민을 위해 경제발전을 이끌어나가는 데 앞장서야 하는 사람인만큼 기업이 잘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희망을 주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각계각층과의 소통도 강조했다. 국민에게 다가서고 국가적 과제를 정부와 함께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까지의 전경련에 대한 평가와 이미지 개선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허 회장은 “대한민국이 압축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업인들이 열심히 일했고 그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조금 있었지만 다른 나라보다는 적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 기업들의 이미지가 좋아질 것으로 보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전경련이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의 만장일치로 전경련 수장이 된 허 회장이지만 그의 앞에는 해결할 과제도 많다. 우선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물가와 관련한 제품 값 인하, 친서민 정책 등을 둘러싸고 정부와 재계의 긴장국면은 어떤 식으로든 타개해야 한다. 대기업이 거둔 초과이익을 협력업체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이익공유제’를 주장하고 있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을 만나는 일부터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 협조하되 이해 구할 것이다
허 회장은 취임 직후 기자들이 “정운찬 위원장을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묻자 “(정 위원장을) 만나야 할 것이며 우리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겠다”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어 “경제계는 (정부를) 설득하고 정부 의견이 좋은 것이 있으면 받아들이는 자세로 일하겠다”고 덧붙였다. 치솟는 물가에 대해서는 “정부는 국민을 위해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 기업의 입장에서 정부하고 협조할 것은 하고 애로사항이 있으면 이해해달라고 건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원사들을 전경련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과 전경련 위상 강화도 당면 과제다. 허 회장은 전경련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은 기업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전경련에) 참여해 많이 도와달라고 당연히 얘기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도 전경련 참여요청을 하겠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얘기해 도와달라고 하겠다”고 강조했다.
기름 값과 통신비 등을 내리라고 기업들을 몰아붙이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 묻자 허 회장은 “국민을 위해 물가 안정은 중요하다. 내가 관료라 하더라도 그렇게 (압박을) 할 것이다. 정부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되 기업의 애로점은 이해해 달라고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투자와 고용 확대 등 전경련의 올해 중점 사업에 대한 재계의 의견을 결집해 실질적인 효과를 내는 방안을 만들어내는 것도 허 회장의 몫이다.
허 회장에게는 전경련의 새로운 50년의 비전을 수립해야 하는 임무도 맡겨졌다. 시대변화에 맞게 전경련 사무국을 바꾸는 과제다. 오는 8월 창립 50주년을 맞는 전경련은 변신을 요구받고 있다. 대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재벌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주요 회원사들 중에서도 시대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전경련 사무국을 부담스러워 곳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그동안 주요 그룹 회장들이 전경련 회장직 제안에 손사래를 친 배경과 맞닿아 있다. 일각에서는 조직의 성격 자체를 싱크탱크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한국 기업 역사의 요람, 진주 만석꾼의 자손
3월 10일 서울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 왼쪽부터 허창수 전경련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허창수 회장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허씨 가문이다. 허 회장의 증조부는 지신정(止愼亭) 허준(許駿)이다. 구한말 경남 진주의 만석꾼으로 농민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배분하고 나라 곳간이 비면 채웠다는 일화를 남겼다.
허 회장의 조부는 고 효주(曉州) 허만정이다. 일제시대 한국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대고 진주여고를 설립했다. LG와 삼성이 창업할 때 자금을 지원한 만큼 한국 자본주의를 낳은 요람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허만정은 가정 내에서 철저한 근검절약을 강조했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돈의 사용처를 묻고 또 묻는 교육을 시켰다. 부산에서 공부하던 자녀들이 방학 때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 학업에 대해 물은 후 그동안 보내준 용돈의 사용처를 기록해서 제출하도록 했다. 자신이 송금한 내역과 자녀들이 기록한 내역이 다르면 끝까지 추궁했다. 자녀들이 쓴 돈의 액수보다 사용처를 따져서 불필요한 데에는 돈을 쓰지 않는 습관을 어릴 적부터 몸에 배도록 한 것이다.
허만정은 가난한 소작농과 주민들에게는 쌀을 나눠줬지만 공짜로 주지는 않았다. 대신 인근 방어산에서 돌을 가져오게 해 마당에 쌓게 했다. 지금도 허만정의 생가인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 가면 ‘금강산’이란 이름으로 돌더미가 남아 있다.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무노동 무임금’을 실천한 셈이다.
광복 후 허만정은 1947년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 창업에 상당한 자금을 지원했다. 이런 인연으로 허만정은 셋째 아들인 고 허준구 회장을 LG그룹에서 경영수업을 받게 해달라고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에게 제의했다. 이후 허준구 회장은 LG그룹 주요 의사결정에 깊이 관여하면서 LG건설 명예회장까지 올라 지금의 GS그룹이 탄생한 기틀을 마련했다. 허만정은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삼성상회를 창업할 때 자금을 보태고 장남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도 보냈다. 이처럼 한국 자본주의는 허씨 집안과 역사를 같이 한다.
허창수 회장은 허준구 명예회장이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의 첫째 동생 구철회 LG그룹 고문의 장녀 구위숙씨와 결혼해 낳은 장남이다. 따라서 고 효주 허만정·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허창수 GS그룹 회장은 3대를 이어가며 대한민국 산업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아울러 허만정의 자녀들과 많은 손자들은 대부분 LG그룹에 입사해 반세기 넘게 LG그룹의 구씨 집안과 함께 지내며 성장했다.
허창수 회장은 1995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퇴임에 맞춰 구·허씨 양가의 창업세대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허준구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LG전선 회장으로 선임됐으며, 2004년 GS그룹이 LG그룹에서 분리되면서 지주회사인 GS홀딩스 회장으로 취임했다.
GS그룹의 든든한 후원군은 허창수 회장의 삼촌과 사촌형제들이다. 이들은 LG그룹에서 수십년간 경영수업을 받으며 내공을 쌓았고, GS그룹 내 주요 임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 이들은 결혼으로 거미줄 인맥을 만들어가며 보탬이 되고 있다.
고 허만정의 넷째 아들인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은 현재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른이다. 다섯째 아들인 허완구 승산 회장도 측면 지원해주고 있으며 그의 아들인 허용수 GS 전무는 그룹 지주회사의 사업지원팀장으로 기업 인수합병(M&A)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여섯째 아들은 허승효 알토 회장, 일곱째 아들은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막내아들은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 등이다. 장남인 고 허정구 회장은 1952년 제일제당 전무로 경영에 참여했다가 1961년 독립해 삼양통상을 창업했다. 지금은 장남 허남각 회장이 삼양통상을 물려받았다. 차남인 허동수씨는 GS칼텍스 회장을 맡아 ‘지상유전’이라 불리는 고도화설비를 국내 최고로 확충하는 등 공격경영에 나서고 있다. 셋째아들은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이며 그의 딸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아들과 결혼했다. 허광수 회장의 아들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딸과 결혼하면서 자녀들이 모두 언론계와 인연을 맺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친동생들도 경영일선에서 지원하고 있다. 고 허준구 명예회장의 둘째아들이면서 허창수 회장의 동생인 허정수씨는 GS네오텍 회장을 맡고 있다. 또 허진수 GS칼텍스 사장, 허명수 GS건설 사장, 허태수 GS샵 사장도 친형인 허창수 회장을 가까이서 보좌하고 있다.
허창수 회장은 GS그룹 초대회장으로 부임하면서 “당대에서는 LG와 겹치는 사업에 진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허 회장은 삼촌과 사촌들이 운영하던 회사들을 계열사로 줄줄이 편입하고 LG에너지, 쌍용 등을 인수합병(M&A)하면서 작년 말 기준 70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출범 당시 18조7000억원(2004년 말 기준)이던 GS의 자산규모도 2009년 43조원으로 두 배 이상 늘렸다. 이는 재계 7위에 해당된다.
실적도 해마다 좋아지고 있다. 2004년 23조원이던 그룹 매출액이 지난해 52조원으로 6년 만에 126% 늘어났다. 올해는 이보다도 3조원 늘어난 55조원의 매출목표를 잡았다. 그룹 내 주력회사는 작년에만 35조원의 매출을 기록한 정유·석유화학업체인 GS칼텍스다. 또 GS리테일, GS건설, GS글로벌 등이 매출 1조원을 넘는 경영실적을 거두고 있다. 홈쇼핑을 맡는 GS샵, 발전에너지 분야인 GS EPS는 매출 8000억원 수준으로 건실하게 성장했다. 이 같은 자회사들의 경영호전 덕분에 지주회사인 GS는 작년 사상 최대인 9000억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올리기도 했다. 2월18일 기준 시가총액으로 보면 지주회사 GS가 약 7조원으로 가장 많고 GS건설이 5조6000억원으로 뒤를 잇는다. 주력 계열사인 GS칼텍스는 비상장이므로 시가총액이 잡히지 않는다.
현장경영 중요시 하는 활동형 경영자
전경련 신축회관 조감도
1948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허 회장은 1967년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학과로 진학한다. 고려대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77년 세인트루이스대학교 경영학 석사를 마친다. 1977년 럭키그룹 기획조정실 인사과 과장으로 입사하면서 LG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그 후 1980년대 대부분을 LG상사 홍콩과 도쿄지사에서 근무한다. 럭키금성상사 해외기획실 부장(1979년), 금성반도체 부장(1981년)을 거친 후 럭키금성상사 홍콩지사 선임부장(1982년)으로 해외 파견근무를 하게 된다. 1984년엔 홍콩에서 임원(럭키금성상사 홍콩지사 주재이사)으로 승진한 후 도쿄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1986년 럭키금성상사 도쿄지사 상무로 승진한 후 귀국해 1988년 럭키금성상사 관리본부 전무, 1989년 럭키(LG화학) 부사장이 됐다. 유학생활을 통해 익힌 영어와 도쿄 근무 때 연마한 일본어 실력은 지금도 외국인들을 만날 때 빛을 발한다. 1992년에는 금성산전(LG산전)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5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퇴임에 맞춰 구·허씨 양가의 창업세대 경영진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허준구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LG전선 회장으로 선임됐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본무 회장이 LG그룹 회장이 되면서 허 회장도 LG전선(주) 대표이사가 된다. 2002년 초까지 LG전선 회장을 맡다가 2002년 3월부터 LG건설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2004년 GS그룹이 에너지, 유통, 건설 분야를 갖고 LG그룹에서 분가했다. 이때 허 회장은 허씨 가문 내부의 합의를 거쳐 GS그룹의 지주회사인 GS홀딩스 회장으로 취임했다.
허 회장은 해외근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으로 지금도 <월스트리트저널>과 <비즈니스위크> 등 해외 유수의 경제전문지를 탐독한다. 새로운 경영의 트렌드와 관련한 서적을 즐겨 읽고 국제경제의 흐름을 파악한다. 2007년에는 석사학위를 받았던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학교에서 경영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허 회장은 2002년 작고한 부친 허준구 명예회장을 쏙 빼닮았다고 일컬어진다. 뿌리 깊은 재계 명가 출신에다 학력과 외모, 능력, 인맥 등 어느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다. 훤칠한 용모와 깔끔한 매너로 ‘재계의 신사’로 통한다. 밖으로 드러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다 뒷전에서 묵묵히 일을 챙기는 스타일이며 범LG가의 전통에 따른 모나지 않은 언행으로 구설에 휘말리는 법이 없다.
구·허씨 동업 시절 구씨 가문이 주로 사업 확장과 공장건설 등 바깥일을 맡아 사업을 키우며 경영을 주도했다면 숫자에 밝은 허씨 가문은 주로 재무와 회계 등 안살림에 주력하며 기업이라는 생명체에 피를 돌게 하는 핵심역할을 맡았다. 허 회장도 이 같은 구·허씨 간 역할분담에 따라 LG상사에서 잠시 일반상품과장을 맡은 것을 빼고는 줄곧 관리파트를 맡으며 안살림을 챙겼다. 자연스럽게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는 최고경영자가 됐다. 허 회장은 2010년 1월부터 3년 임기의 고려대 경영대학 교우회장직을 맡고 있다. 고대 경영학과 67학번인 허 회장은 교우회 내에서도 인기있는 선배로 통한다. 지난 2001년에는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훤칠한 키에 깔끔한 외모 ‘재계의 신사’
LG그룹 시절에는 동업자인 구씨 경영자들에 비해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이 직접 해명한 적이 있다. 지난 2005년 7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GS그룹 회장 취임 후 첫 공식 기자간담회에서다. 공식적인 기자간담회는 그의 기업생활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허 회장은 “난 은둔의 경영자가 아니다. 굳이 알리지 않아서 그렇지 현장경영을 통해 직원들과 스킨십도 많이 갖는다”고 말했다. 또한 “그룹 총수 가운데 나처럼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고 거리낌 없이 시내 한복판에서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있느냐”며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명은 잘못 붙여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 회장은 그룹의 조직문화에 대해서는 “GS홀딩스는 계열사 경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고 계열사에 자율권을 주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문화를 만들겠다.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GS타워에 있는 허창수 회장의 23층 집무실 앞에는 추상화가 걸려있다. 구본무 회장이 선물한 것이다. 57년간 동업해 온 허씨 일가가 2004년 LG에서 GS로 분리된 뒤 구 회장이 허 회장에게 ‘회사 생일 선물’로 준 상징적인 작품이다. 그림이 걸린 날은 GS그룹이 공식 출범한 2005년 3월31일이었다. 류희영 이화여대 교수가 그린 이 그림은 가로·세로 73㎝ 크기의 두 개 그림이 하나를 이룬다. 그룹 내에선 “두 개 그림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는 형식이 두 그룹의 변함없는 우애와 신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처럼 허씨 집안은 창업 이래 57년간 별다른 잡음 없이 LG그룹의 구씨 집안과 성공적으로 동업관계를 유지한 덕분에 큰 박수를 받고 떠나올 수 있었다.
허 회장은 그동안 지주회사 경영에 전념하고 모든 의사결정을 이사회에 맡기는 투명경영을 해왔다. 또 리스크를 철저히 점검해 줄이는 내실경영을 중시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강조해왔다. 허 회장은 현장경영을 매우 중시한다. 계열사별로 생산, 판매, 건설 현장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이는 LG그룹 경영참여 시절부터 중동 오지 건설현장에 찾아가 현장 직원들과 함께하며 다져온 습관이다.
■ 걷기 예찬, 만능 스포츠맨
2005년 7월 GS그룹 기자간담회장. 기자들이 허창수 회장에게 어떤 운동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허 회장은 “나는 보통 사람이고 보통 사람들이 즐기는 스포츠를 즐긴다”고 답했다. 중학교 때는 농구선수로 활약했고 고등학생 시절엔 전국 규모 테니스 시합에 나갔을 만큼 운동을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허 회장은 ‘걷기 전도사’로 통한다. 운동량이 부족한 임원이나 지인들에게 만보계나 마사이 워킹화를 사주고 걷기를 권장한다. 골프를 칠 때도 전동카트를 거의 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GS그룹 한 임원은 “꽤 높낮이가 있는 엘리시안 강촌CC에서 여러 차례 골프를 했지만 카트를 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 때문에 동반자들도 함께 걷곤 한다”고 말했다. 지하철도 곧잘 이용한다. 점심 약속이 강남역이나 삼성역 부근으로 잡히면 아예 지하철을 타곤 한다. 틈날 때마다 역삼동 GS타워 주위를 산책하며 경영구상을 한다.
허 회장의 축구 사랑은 유명하다. 축구선수를 만나거나 축구 얘기가 나오면 환한 표정으로 바뀐다. 프로축구 ‘FC서울’의 전신인 ‘안양LG’시절부터 14년째 구단주를 맡고 있으며 LG그룹과 분리할 당시 축구단 운영에 강한 의지를 보여 FC서울을 탄생시켰다. 수년전 강원도 춘천의 엘리시안 강촌에서 열린 GS그룹 임원 단합대회 때는 FC서울의 중요한 축구경기가 일요일 오후에 잡히자 골프 티오프 시간을 평소의 아침 8시에서 새벽 5시로 당겼다. 임원들과 함께 골프를 치고 곧바로 서울로 이동해 축구경기를 관람했다는 것이다.
허 회장은 주말에는 FC서울 경기에 자주 얼굴을 비친다. 선수들의 외국 전지훈련장도 직접 방문해 격려한다. 지난 2월에는 일본 가고시마에서 전지훈련 중인 FC서울 선수단을 찾아가 격려했다. 1박2일간 머무르면서 선수단과 저녁을 함께 먹었다. 아무리 바빠도 구단주를 맡은 지난 14년 동안 팀이 동계 전지훈련을 벌이고 있는 곳이면 터키, 한국, 일본 등 어디든지 달려갔다. 물론 허 회장은 시즌 중에도 홈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자주 찾아 선수들을 격려한다. 다른 구단 선수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선수들을 지원해 준다.
허 회장은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아침 5시께 일어나 자택인 이촌동 GS한강자이에서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헬스장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1시간 동안 본인이 직접 짠 운동 프로그램대로 운동한다. 스트레칭, 근력운동, 유산소운동을 적절히 배분한 것이다. 운동을 마친 8시 전후 역삼동 GS타워로 출근한다. 절제된 생활만큼 시간관념이 철저하다. 내부 회의 때도 대개 예정시간 2~3분 전에 착석한다. 철저하게 약속을 지키고 주변사람들을 배려하기 때문에 ‘재계 신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자연스럽게 GS 임직원은 회의시작 10분 전 먼저 착석하는 게 습관이 됐다.
오페라와 발레 관람도 좋아한다. 공연장을 가기 힘든 경우가 많아 자택에 홈시어터를 설치해 DVD로 보는 경우가 많다. 허 회장은 그룹 내에서 ‘얼리어답터’로 통한다. 스마트폰 IPTV 등 첨단기기와 트렌드 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애플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내놓았을 때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사용해 보라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영 / 매일경제 산업부 차장·재계팀장 kdy@mk.co.kr, 사진 = 김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