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벤처기업협회가 발표한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여성 창업가 비율은 9.7%를 기록했다. 이는 2014년 5.3%에 비해 2024년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이지만, 여전히 10%를 채 넘지 못한다. 하지만 AI 스타트업 업계에서 여성 창업가 비중은 더 낮아져 7.5%를 기록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발표한 2024년 인공지능 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총 2517개의 AI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여성은 오히려 더 드물어진다. 김덕재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장은 “IT 여성 롤모델을 제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 업계는 남성 위주”라고, 여성 인재 육성 전략을 강조하기도 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여성들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여성 창업가들은 투자 단계에서부터 임신·출산 등과 같은 생애주기에 관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사소하지만 여성 창업가와 남성 창업가를 다르게 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차별. 이른바 ‘먼지차별(microaggression)’이다.
더 근본적으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 진학하는 여학생 비율이 현저히 적다. 특히 자연과학 계열에 비해, 공학계열 여학생 비율은 2021년 기준 25.4%에 불과하다. 여성 연구자 비율도 2021년 기준 2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공 계열 여성 연구자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결혼·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이 주관한 ‘여성과학기술인 대국민 설문조사’에서 이공계 전공 기혼 여성 응답자의 59.1%가 “딸에게 이공계 진학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반면 같은 답변을 한 미혼 여성 응답자는 46.1%로 집계됐다. 기혼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어려움을 직접 체감한 결과라는 풀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여성 창업가가 이끌어온 AI 스타트업이 있다. AI 정책 플랫폼 코딧(CODIT)의 정지은 대표와 문서 AI 스타트업 한국딥러닝의 김지현 대표. 1984년생과 1997년생, 국제기구 출신 정책 분석가와 대학 졸업 전 창업한 개발자. 접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AI 스타트업을 키워왔고, 각자의 언어로 같은 결론에 닿아 있었다.
정지은 대표는 정책 현장의 문제와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서 창업을 결심했다. OECD 정책 분석가로 일하며 35개국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쏟았다. 국가마다 다른 양식, 다른 주기로 업로드되는 파편화된 데이터들. 실시간으로 수집해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창업 아이템이 됐다. 기술을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를 정확히 볼 수 있었다. 정지은 대표는 정부 기관과 국내 AI 산업계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반대로 김지현 대표는 의도적으로 시장을 먼저 봤다. 경희대 응용소프트웨어학과에서 딥러닝 기술을 접한 그는 졸업 전 스타트업에 잠깐 취업했다가, 문서를 사용하지 않는 기업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엔지니어틱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말은 지금도 한국딥러닝 내부에서 쓰이는 경구다. 기술이 아니라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가 먼저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매출로 이어진다는 것을 22살의 창업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두 회사의 기술 철학에는 공통된 태도가 있다. 비록 기존 시스템이 비효율적일지라도, 고객들에게 바꾸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공공 데이터를 다루는 코딧에는 오래된 숙제가 있다. 부처마다 다른 양식, 다른 파일 포맷, 다른 업로드 주기. 일부에서는 AI 학습을 위해 공공 문서의 규격을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지은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이 일하기 좋은 문서 양식은 그대로 두고, 기술로 보완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코딧의 AI 에이전트는 형식이 달라도 정책 문서를 읽고 필요한 정보를 정리한다. 미국 50개 주, 일본, 싱가포르, 대만까지 데이터를 확보하고 유럽과 중국으로 확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논리 위에서다. 국가마다 다른 법체계와 언어를 통일하는 대신, AI 에이전트가 처리하도록 했다.
한국딥러닝도 마찬가지다. 택배 운송장은 빗물에 번지고, 공공 문서는 한컴오피스(.hwp) 포맷으로 돼 있으며, 표와 순서도가 뒤섞여 있다. OCR 기술 관점에서 한국 공공 문서는 난이도가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김지현 대표는 이 조건을 개선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 환경에서 기술을 단련했고, 6년간 쌓은 현장 데이터를 수십 개의 모듈로 쪼개 조합할 수 있게 만들었다. 2025년 상용화한 VLM(시각언어모델) OCR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게 아니라 문서의 시각적 구조와 맥락을 파악해 ‘김지현’을 ‘신청인’으로 분류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한국에서 검증된 기술이 영어권과 동남아 시장에서 더 안정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경쟁력이 됐다.
두 대표 모두 여성으로서 현장에서 체감하는 불이익을 부정하지 않았다. 정지은 대표는 독일 출신 남성 인턴과 회의에 들어갔을 때 인턴을 메인 테이블에 앉히는 일을 겪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이런 일이 있을 때 부드럽게 문제를 제기하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지현 대표는 신뢰감을 주기 위해 말투와 외모를 의도적으로 중성적이게 연출할 때가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비슷했다. 정지은 대표는 “여러 가지 생각하지 말고 1번으로 해라”라고 했고, 김지현 대표는 “10번 부딪힐 것을 100번 부딪히겠다는 각오로 뛰어야 한다”고 전했다.
실력으로 증명한 결과, 코딧은 개발팀과 정책팀 모두 여성 인재 비율이 90%에 달한다. 정지은 대표는 코딩 테스트와 글쓰기 테스트에서 여성 지원자들이 좋은 결과물을 냈다고 말한다. 공공 정책 데이터를 다루는 특성상 높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요구되는데, 그 기준을 적용하니 자연스럽게 여성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반대로 김지현 대표는 성별보다 “문제를 연구하는 태도와 깊이”를 채용 기준으로 삼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AI 기술의 편향성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성의 가치를 강조했다. 학습데이터와 답변의 적절성을 판단할 때 만드는 사람의 입장이 투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별 뿐만 아니라, 인종이나 문화에서도 데이터 편향성이 결과물의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다양한 배경의 기술 리더들이 개발 과정에 참여해야 편향성을 줄이고 더 섬세한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라며, “한국식 ‘소버린 AI’가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매몰되기보다, 실제로 사람들이 이 기술을 쓸 것인가 고민하는 실용주의적 관점이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수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6호 (2026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