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세 전쟁이 시작됐다. ‘중국산 제품에 최대 6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공언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실제로 추가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우선은 10%포인트만 올리기로 했다. 그러자 중국은 예상했다는 듯이 미국을 향해 곧바로 ‘보복 관세’와 ‘수출 통제’ 카드를 꺼냈다. 미·중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다만 이러한 갈등이 장기화하면 두 나라 경제에 모두 부담일 수밖에 없어 극적인 타협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4일(현지시간) 중국산 모든 수입품에 10%포인트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한다는 행정명령을 발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중국에 대한 관세를 개시 사격(opening salvo)한다”며 “우리가 합의(deal)하지 못하면 중국 관세는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10%포인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언급한 ‘60% 고율 관세’에 비해 한참 낮은 수준이지만, 추후 중국과 협상 결과에 따라선 관세율을 인상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번 관세 부과 과정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캐나다와 멕시코다. 이들 나라는 애초 중국과 함께 관세 부과 대상이었다. 예정 관세율은 각각 25%에 달했다. 그러나 관세 시행을 하루 앞두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각각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뒤 불법이민 차단과 마약 단속을 약속했다. 그 결과 25%의 관세 부과는 한 달 유예됐다.
이에 따라 중국·멕시코·캐나다 3개국을 상대로 선전 포고를 한 트럼프발 ‘관세 전쟁’은 중국으로 좁혀지게 됐다. 결과적으로 최대 경쟁국인 중국에만 관세를 부과한 셈이다.
중국은 즉각 보복 조치에 나섰다. 지난 2월 4일 미국의 10%포인트 추가 관세 부과 발표 직후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관세법 등 관련법의 기본원칙에 따라 국무원 승인 아래 오는 10일부터 미국산 일부 수입품에 관세를 추가로 부과한다”면서 미국산 석탄 및 액화천연가스(LNG)에 15%포인트, 원유와 농기계, 대배기량 자동차와 픽업트럭에 10%포인트 관세를 추가로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정부가 펜타닐 등 문제를 이유로 발표한 이러한 일방적 관세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일”이라며 “중·미 간 정상적인 경제무역협력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중국 상무부는 텅스텐·텔루륨·비스무트·몰리브덴·인듐 관련 제품과 기술 25종에 대한 수출통제를 결정했다.
텅스텐과 텔루륨 등은 반도체 제조 등에 많이 쓰이는 소재다. 상무부는 “국가 안보와 이익을 보호하고 확산 방지 등 국제적 의무를 이행하고자 이들 품목에 대해 수출통제를 실시하기로 했다”며 “위 품목을 수출하는 업자는 ‘수출통제법’과 ‘이중용도 품목 수출 통제 목록’의 관련 규정에 따라 국무원의 상무 주관 부서에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상무부는 타미힐피거와 캘빈클라인 등 유명 브랜드를 산하에 둔 패션 기업 PVH그룹과 생명공학 업체 일루미나 등 미국 기업 두 곳을 ‘신뢰할 수 없는 업체’ 명단에 올렸다. 같은 날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인 구글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대중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보복 조치들을 쏟아낸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에 잇따라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상무부는 미국이 외국산 철강·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하자 지난 2월 13일 “이번 발표에 주목하고 있다”며 “이는 전형적인 일방주의이자 보호주의”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각국의 권익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다자무역 체제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미국은 제로섬 사고 방식을 버리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월 5일에는 중국 외교부가 “압박과 협박은 대중 거래의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며 “미국이 중·미 마약 퇴치 협력 성과를 무시하고 펜타닐 문제를 이유로 중국산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자국의 정당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애초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산 일부 품목에만 관세를 부과하고 시행 시점을 발표 당일이 아닌 지난 2월 10일로 정한 점 등을 고려해 미국과 물밑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러나 중국이 보복 조치를 연달아 내놓자 트럼프 대통령은 입장을 바꿔 “(시 주석과의) 통화는 서두르지 않고 적절한 때에 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간 통화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뒤 한 달 유예 조치를 이끌어낸 캐나다·멕시코와 비교하면 중국과의 대화는 상당히 더디다. 이에 대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 서둘러 통화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단기간 내 관세 합의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세부 의제를 먼저 정리하지 않고 고위급 통화를 진행하는 데 신중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 나라 간 타협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미·중이 협상 의사를 분명히 밝혀온 데다, 무역 전쟁이 장기화되면 두 나라 경제에 모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떠한 형태로든 두 나라가 합의점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실제 중국 안팎의 전문가들은 최근 중국의 보복 조치에 대해 미국과 대립보다는 협상에 무게를 둔 결정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홍콩 시티대학교 법학대학원의 줄리앙 차이스 교수는 SCMP에 “중국의 대응이 협상을 위한 암묵적 신호가 될 수 있다”며 “(미국에 대한) 주요 공급망 제한이나 경제적 대응이 없었다는 점은 중국의 우선순위가 협상에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다웨이 칭화대 국제안보전략센터 소장도 “미국의 석탄과 LNG가 중국 전체 수입의 1~3%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를 감안하면 중국의 대응은 계산되고 억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광섭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