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상반기에는 경기가 많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한다. 경기 침체로 가느냐, 아니냐 하는 경계선에 있다. 물가 오름세는 점차 둔화하면서 상고하저의 모습을 보이겠지만,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 정책은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 총재의 발언 속에 새해 경기에 대한 경고음이 담겨 있다. 실제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각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한은 역시 앞서 새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7%로 제시하면서 특히 상반기(1.3%)가 하반기(2.1%)보다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새해 세계·한국 경제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경기 침체(Recession)’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미중 갈등이 전 세계 경제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고, 식량과 에너지를 두 축으로 폭등한 물가가 쉽사리 잡히지 않고 있어서다. 여기에 소비 위축, 미국발 금리 인상 기조가 계속되며 각국 주머니 사정은 악화일로다. 한국 역시 부채와 금융 시장 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겹쳐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국제기구와 각 기관들의 예측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장 국제통화기금(IMF)은 2023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연이어 하향 조정했다. 2.9%이던 새해 글로벌 성장 전망을 지난 10월에는 2.7%로 낮췄다.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개인 지출 능력을 떨어뜨림에 따라 경제 전망이 어두워지는 것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2026년까지 세계 경제 생산량이 약 4조달러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독일의 전체 경제 규모 수준이며 ‘대규모 후퇴’에 달한다고 표현했다.
최근 나오는 월가(街)의 예측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이 모든 것을 잠식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경기부양으로 늘어났던 소비자 저축이 2023년 중반쯤 바닥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들이 경제를 탈선시키고, 경기 침체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도 “경기 침체 가능성을 예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전망했다. 마크 헤펠 UBS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경기 회복을 위한 경제 여건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며 “성장은 둔화하고, 중앙은행은 여전히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경제 성장 둔화에 대한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세계은행이 2022년과 2023년 중국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중국이 2022년 목표로 삼은 5.5%에 못 미치는 수치다. 중국의 부진은 우리 경제도 부담이다.
실제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새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9월 전망치보다 0.8%포인트나 내린 1.5%로 전망했다. 앞서 한은 예측보다 더 낮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 둔화와 에너지 값 상승 여파로 잠재성장률(2%)을 밑도는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이에 앞서 한국경제연구원 1.9%,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한국개발연구원(KDI) 1.8%, 한국은행·한국금융연구원 1.7% 전망치를 각각 제시했다. 10월에 2.0%로 전망한 국제통화기금(IMF)도 내릴 가능성이 크다.
경기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은 물가다. 미국은 2022년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9.1%를 기록하며 1981년 11월 이후 41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역시 5%대의 물가상승률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 같은 추세를 감안하면, 새해에도 물가는 쉽게 잡히지 않을 공산이 크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미중 갈등 등 불확실한 외부요인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 2022년 겪지 못한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을 겪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지금까지 에너지 공기업이 가격 상승 요인을 흡수해왔지만, 에너지 공기업의 요금 인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도 불안하다. 2022년 총 수출은 증가율이 4.6% 정도로 낮아졌다. 2023년에는 더 낮아져 4.1% 증가에 머문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로 인해 순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2022년 +0.5%에서 2023년 0.4%까지 낮아진다. 수출이 불안한 만큼 경상수지 전망도 안 좋다. 한국은행, 국회예산정책처, 하나금영경영연구소 등 대부분의 기관들이 새해 경상수지가 전년에 비해 나빠질 것으로 예측한다. 이처럼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한국경제학회가 2022년 7월 ‘스태그플레이션’을 주제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경제학자 39명 중 23명(59%)이 “우리나라가 스태그플레이션 단계에 있다”고 답했다. 일각에선 ‘복합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복합위기란 스태그플레이션과 금융위기가 한꺼번에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당연히 경제는 V자형 회복이 아니라 L자형의 장기 침체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실장은 ‘그레이트 리세션(대침체)’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2023년은 L자로 꺾여 장기 침체로 들어가는 초입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반면 희망적인 시나리오는 ‘상저하고’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23년 하반기에 가면 고물가가 어느 정도 잡히고 그에 따라 금리 인상 기조도 마무리되고,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의미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8호 (2023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