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비욘드 코로나’ 트렌드 5제] Digital Asset War 가상자산 경쟁 | 디지털 자산 생태계 선점 경쟁 치열, 개인 암호화폐 투자 열풍은 지속
박지훈 기자
입력 : 2021.12.31 13:44:20
수정 : 2021.12.31 13:44:38
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자산은 부지불식간에 미래 산업의 핵심요소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그 여파가 완고한 금융 분야에서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초기 IT 기업들이 가상자산을 통해 금융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공세적 입장이었던 반면, 전통 금융기관은 가상화폐를 부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전통 금융기관도 가상화폐를 포함한 가상자산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가상화폐 전문 투자 펀드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을 뿐 아니라 펀드 내 기존 보유 자산이 수십 배 상승하며 총 운용자산(AUM)이 상승하였다. 한 예로 저명한 펀드 중 하나인 멀티코인(Multicoin)은 2021년 투자펀드 역사상 가장 높은 연간 수익률을 달성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다. 벤처캐피털과 전문운용사를 넘어 연기금도 가상화폐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고, 미국 메이저 은행들도 가상자산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가상화폐 내에선 비트코인의 일방적 독주가 끝나고 이더리움을 포함한 알트코인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메타버스라는 광풍에 힘입어 NFT의 성장세도 만만치 않다. 2022년은 이러한 가상자산 시장의 경쟁이 더욱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메타버스 타고 NFT 몸값↑
CBDC vs 스테이블코인
통화와 금융자산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가상자산은 필연적으로 각국 정부의 입장이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가 금융 시스템 관점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가상자산은 국가가 발행하는 통화의 독점을 위협하는 심각한 불안요소다. 국가는 통화 독점을 기반으로 화폐의 액면가에서 화폐 제조비용과 유통비용을 뺀 차액인 세뇨리지(Seigniorage) 효과를 누려왔다. 민간 가상자산은 국가의 세뇨리지 효과와 통화정책 모두를 위협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각국 정부는 몇 년 전까지 가상자산을 부정 내지 무시해왔다.
그러나 2020년부터 민간영역에서 크게 성장한 가상자산 생태계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가지게 됐다. 국가가 민간 가상자산을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차세대 혁신을 방해해 국가 간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민간 가상자산은 단순히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같은 코인 거래를 넘어 디앱(DApp)과 이를 통해 구현되는 DeFi(탈중앙화된 금융) 서비스의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DApp은 그 자체가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이기 때문에 현재 인터넷이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산업 분야에 그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의 발달로 IT 산업의 영향력이 모든 산업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DApp은 이미 금융, 미술, 온라인 게임을 포함한 콘텐츠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한 해 한국증시를 강타한 NFT가 대표적이다. 메타버스의 화폐경제를 담당할 것으로 촉망받는 NFT는 올 한 해도 가상자산 분야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민간 가상자산에 대한 입장은 3가지로 갈린다. 이머징 국가의 강력한 규제, 선진국의 관리하에서의 육성, 프런티어 국가들의 적극적 수용 세 가지다. 미국은 일찌감치 ‘가상자산을 금지하지 않을 것’이라 천명하고 비트코인 선물 ETF 출시를 승인하기도 했다. 중국과 인도는 암호화폐를 전면금지하며 강력한 규제에 나서고 있으며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도입하고 대통령은 코인가격이 하락하자 앞장서서 86억원에 달하는 규모의 자금으로 추가매수했다는 사실을 SNS를 통해 알리기도 했다.
▶올림픽 앞두고 CBDC 실험하는 중국
격화되는 디지털 통화 패권 전쟁
중국은 2022년 2월 개최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디지털위안을 공식 발행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디지털위안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로 단순히 발행주체가 민간에서 정부로 바뀌는 것을 넘어 민간 가상자산이 추구하는 탈중앙화가 아닌 완벽한 중앙화를 추구한다. 가상자산으로 발생한 국가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디지털화폐(CBDC)다. CBDC하에서는 정부가 통화를 원하는 대상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제공하고, 모든 민간주체들의 사용 내역을 파악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이미 발행한 통화의 대체도 가능하다.
중국은 이미 2021년 10월 현재 12개 지역에서 디지털위안의 시험테스트를 진행해 총 거래액이 620억위안(약 11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디지털위안은 인터넷이 안 되는 지역에서도 사용 가능한 편의성을 내세워 중국을 넘어 중국과 거래하는 해외까지 사용을 확대하려고 모색 중이다. 이를 통해 국제 결제통화 시장에서 달러의 영향력 축소와 위안화의 영향력 강화까지 노리고 있다. 이런 CBDC는 통화정책의 효과 면에서 매우 유용한 도구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경기부양을 위해 푼 통화가 경기회복보다는 자산에 집중적으로 흘러가면서 자산가격만 급등해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재 상황에서 CBDC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반면 미국 정부는 민간 가상자산뿐만 아니라 중국이 CBDC를 통해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것도 대응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사실 미국을 포함한 다수의 정부는 CBDC를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 가운데 CBDC를 고민하지 않는 곳이 드물 정도다. 그러나 CBDC는 민간 가상자산의 핵심 가치인 탈중앙화된 가치의 완전한 대척점에 존재한다. 중국이 CBDC를 적극 준비하는 동안 민간 가상자산의 규제를 크게 강화하고, 중국 내 주요 결제 플랫폼을 보유한 민간 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를 규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이 강한 미국 사회에서 CBDC를 도입하는 것은 여러 현실적인 제약들 이상으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 정부가 준비하는 것은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코인이 특정 자산의 가치를 갖도록 설계된 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치가 안정적이어서 증권계좌의 예탁금처럼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증가하면 그만큼 달러가치도 유지돼 중국이 CBDC를 통해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막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스테이블코인을 촉진하되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를 통제하도록 하는 강온양면책을 수행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스위스에서 미국 정부와 무관한 다국적 통화 바스켓에 연동된 가상화폐인 리브라(현 디엠)를 발행하려고 한 페이스북(현 메타)을 강하게 압박했고, 결국 리브라를 관리하는 협회가 미국으로 이전하고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 전례가 있다. 또한 미국 정부는 중국계 거래소인 비트파이넥스(Bitfinex)가 발행한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테더가 함부로 발행되어 시장을 교란하자 강하게 규제한 바 있다.
각국의 이해관계와 기축통화 패권이 엮여 있는 가운데 중국의 CBDC와 미국의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금융 측면에서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올 한 해 이들의 경쟁은 앞으로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며 경쟁의 승자는 새로운 시대의 화폐를 넘어 금융의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