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경영학] 소비문화 주체 된 MZ | M과 Z의 슬기로운 소비생활… 친환경 기업에 ‘돈쭐’ 내고 불합리엔 ‘불매’ 운동
박지훈 기자
입력 : 2021.10.06 16:32:27
수정 : 2021.10.06 16:32:52
“어른들의 알파벳을 이어가기 위한 집착 같아요.” - 래퍼 이영지
MZ세대 래퍼이자 방송인으로 활약 중인 이영지가 최근 한 토크쇼에서 토로한 푸념이다. 개성과 다양성을 무시한 채 출생 연도만으로 세대를 구분 짓고 명명한 것에 대한 의문이다. 주변에도 MZ세대의 특징에 대한 일반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 여러 분석기관들은 밀레니얼세대는 베이비붐세대의 자녀, Z세대는 X세대의 자녀로 비교적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결론을 내놓는다. “1도 동의하기 힘들어요. 취업, 결혼, 내 집 마련 등 부모세대와 비교해 환경이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경제력 차이에 상대적 빈곤이 더 커진 느낌입니다.” - 직장인 박정민 씨(37)
IMF,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부모세대의 어려움을 직접적인 경제력 차이로 체감한 MZ세대들의 경제력 차이도 큰 편이다. 코로나19로 취업난의 직격탄은 Z세대의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이래저래 부모세대보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캥거루세대를 벗어나기 힘든 MZ세대의 숙명은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MZ세대는 국내 인구의 32%를 차지하며 향후 소비력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여력이 높아 기업들의 마케팅 전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영업이익의 50%를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는 마리몬드.
▶여가·현실성 모두 중요
가치소비 키워드는 환경·돈쭐
이전과 비교해 MZ세대는 경제적 측면에서 국민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살 집이 있는, 기본적인 의식주는 해결된 환경에서 태어났다. 반면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외환위기는 부모에게 직격타를 가하며 두 세대의 가치관과 소비 패턴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가정 경제 상황에는 등락이 존재하고, 예고 없이 위기가 찾아와 가세가 기울 수 있다는 사실도 체감한 세대다.
‘워라벨(Work-life Balance)’을 중시하는 측면도 있지만, 삶의 유지를 위한 돈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현실적 성향도 동시에 나타난다. 차량공유, 승차공유, 숙박공유, 중고거래 등 공유경제의 수혜를 받아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공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특징도 강하다.
가치소비에 민감한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삼정KPMG는 보고서를 통해 “정치·제도적 측면에서 사회의 흐름에 따른 각종 환경 정책과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상승 등 근로기준법의 변화, 대통령 탄핵 등 국정 변화가 새로운 세대에 영향을 끼쳐왔다”며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환경오염과 미세먼지 심화 등을 일상 속에서 체감하는 밀레니얼·Z세대는 환경 이슈에 민감하다”고 분석했다.
소비에 있어서 정의란 무엇인지, 올바름이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며, 기업의 상품을 살펴볼 때에도 기업의 진정성, 진실성, 도덕성을 구매 기준 중 하나로 여긴다는 것이다. 즉, 의식 있는 컨시어스(Conscious) 소비 성향을 강하게 보인다.
수익금의 일부를 월드비전에 기부하는 노스페이스의 착한소비 프로젝트
대표적으로 기업이 불공정 또는 불평등한 행위를 할 때 이를 처단하는 불매와 선한 기업이나 자영업자 등에 대해서는 매출을 증대시켜주자는 “돈쭐내주자”라는 말이 유행한 지 오래다.
MZ세대의 소비 성향은 각종 조사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나를 위한 본인 중심적 소비’와 ‘디지털화된 소비’, 각기 다른 중시 가치에 따른 ‘가치소비’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KPMG의 ‘Me, my life, my wallet’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부머세대는 지출 비중 가운데 주택 거주비가 43%를 차지하는 반면, X세대는 동일 항목에 37%, 밀레니얼세대는 33%의 비중을 나타냈다. 반면 레저·엔터테인먼트와 건강·웰빙을 위한 지출에서는 밀레니얼세대가 베이비부머 세대, X세대보다 높은 비중을 보였다. 현재 삶의 재미와 만족을 위한 항목에 지갑을 더 열며, 윗세대의 지출 비중이 높았던 주택 거주비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가져가려는 성향을 보였다.
대다수는 청소년이거나 어린이인 Z세대의 경우에는 이들의 부모 세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특징이 드러난다. Z세대는 부모세대가 전자기기를 구입할 때 영향을 끼친다. 또한 부모세대는 Z세대 자녀가 초등학생 때인 10.1세에 소셜미디어를 처음 시작하도록 허용한다. ‘나를 위한 소비’는 밀레니얼세대나 Z세대가 공통으로 보이는 현상이지만, Z세대의 어린 연령대로 갈수록 보다 더 디지털 친화적이고, 텍스트보다는 영상과 이미지로 소통하며, 즉각적 반응을 원하는 특성이 강하게 나타났다.
▶친환경·기부·펀슈머 MZ마케팅 활발
MZ세대가 중시하는 ‘가치소비’를 고려한 마케팅 전략이 펼쳐지고 있다. MZ세대는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상품을 구매하고 과감히 소비한다.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가치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자신의 브랜드에 담아내 구매를 유도하는 ‘코즈 마케팅(Cause Marketing)’을 펼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다. 주로 환경과 보건, 빈곤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마케팅에 결합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인권보호와 폭력반대를 지향하는 브랜드인 ‘마리몬드’는 영업이익의 50%를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한다. MZ세대는 이에 반응하고 자신의 SNS에 공유하고 지인과 친구들에게 동참할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착한소비 프로젝트 ‘노스페이스 에디션’도 한 예다. 2015년부터 이어진 노스페이스 에디션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판매한 뒤, 수익금의 일부를 월드비전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기부금은 우간다·탄자니아 및 방글라데시 등 제3국 식수개선사업에 집중적으로 쓰인다. 롯데하이마트는 지난 4월 LG전자와 손잡고 ‘희망으로 이어지는 소비 캠페인’을 진행했다. 고객이 롯데하이마트 매장에서 LG전자 ‘오브제컬렉션’ 상품을 구매하면, 결제 금액의 1%를 적립해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기부금으로 사용한다. 적립한 기부금은 전국 10여 개 가정위탁지원센터 및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전달된다.
인플루언서와 협업을 하는 기업도 있다. 이랜드는 유명 유튜버와의 협업으로 코즈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유튜버가 자신이 가진 팬덤과 콘텐츠를 제공하면, 이랜드는 그룹에서 운영 중인 산업군을 통해 지원하는 방식이다. 구독자 83만 명을 거느린 유튜브 채널 ‘미션파서블’의 운영자 에이전트 H와 함께한 국가 유공자 기부 콘텐트가 대표적이다. 에이전트 H가 국가 유공자를 돕기 위해서 모자를 제작해 판매했는데, 이 과정에 이랜드의 힘이 보태졌다. 이랜드 측에 따르면 약 3500명이 넘는 구독자들이 국가유공자 처우에 대한 문제에 공감하고 기부에 동참했다.
무신사 스탠다드 홍대 플래그십스토어에 전시된 신진 작가의 예술 작품. 무신사는 일회성으로 쓰인 뒤 버려지는 실내 장식품 대신 신진 작가의 작품을 매장 공간에 전시하기로 했다. 무신사가 전개 중인 ‘비사이클 프로젝트(Be:cycle project)’ 일환으로, 사용 후 버려지는 매장 인테리어 설치물 대신 아티스트와의 기획 작품을 일정 기간 고객들에게 소개한다.
피식대학과 협업한 바리스타룰스
친환경 기업을 응원하는 MZ세대를 공략한 마케팅도 활발하다. 블랙야크는 ‘페트 줄게, 새옷 다오’라는 행사를 통해 소비자가 페트병 15개를 갖고 오면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와 나우의 페트병 재활용 티셔츠로 바꿔주는 친환경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페트병 재활용 중 가장 중요한 분리 배출 과정에 소비자들이 자발적인 참여를 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대학내일이 발표한 ’2021 MZ세대 친환경 실천 및 소비 트렌드’에 따르면 MZ세대의 68.8%가 기업의 친환경 활동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보다 높은 비율인 74.3%가 향후 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친환경 정책 수립과 관련 활동 수행이 필수라고 인식하고 있어 기업의 친환경 활동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MZ세대는 기업의 친환경 활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기업의 친환경 활동을 지지하는 비율 또한 높게 나타났다. 최근에는 더 유의미한 환경 보호 활동이 되기 위해선 소비자만 노력할 것이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MZ세대의 절반이 넘는 61.3%가 기업의 친환경 활동이 환경 문제 개선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가격과 조건이 같다면 친환경 활동 기업의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MZ세대가 71.0%로 나타나 행동으로 실천할 의향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부캐·재미 중시하는 펀슈머 전략 역풍도
MZ세대의 펀슈머(재미+소비자) 취향을 적극 공략한 유튜브·부캐(부캐릭터) 등 마케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업체들은 저마다 젊은 층에 인기 있는 부캐를 활용하거나 이색 콘텐츠를 동원하는 등 톡톡 튀는 마케팅에 나서고 있으며 성과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매일유업이 유명 유튜버 피식대학과 제작한 커피브랜드 ‘바리스타룰스’ 홍보영상은 올 4월 게시 이후 현재 조회 수 300만 회를 넘어섰다. 영상은 피식대학 ‘B대면 데이트’에서 재벌3세 설정 캐릭터 ‘이호창’이 공장을 둘러보고 바리스타룰스 제품 설명을 듣는 등 노골적으로 기업·브랜드 소개에 나서지만 유명 유튜버 이호창 특유의 유머·리액션으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SPC그룹 파리바게뜨는 팔도·빙그레와 각각 ‘팔도 비빔빵’·‘비비빅 시리즈’ 협업상품을 선보였다. 롯데푸드도 돼지바를 통해 MZ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스트릿 패션브랜드 널디와의 협업으로 돼지바에 젊고 재미있는 이미지를 더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롯데푸드 한정판 돼지바 포함 아이스크림 25개를 받아보는 구독 서비스도 진행 중으로, 널디와 협업한 굿즈를 준다.
반면 이러한 펀슈머는 역풍을 맞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CU는 곰표·말표맥주에 이은 실제 구두약 틴케이스에 가나초콜릿 등을 담아낸 ‘말표 구두약’을, GS25는 모나미 매직을 형상한 탄산음료인 ‘모나미 매직 스파클링’을, 세븐일레븐은 천마표 시멘트 상표에 팝콘을 넣은 ‘천마표 시멘트 팝콘’ 등을 내놨다. 여기에 문구용품 딱풀의 디자인을 본뜬 사탕 ‘딱붙캔디’, 바둑알 모양의 초콜릿인 ‘바둑 초콜릿’, 서울우유 디자인의 보디워시 등도 펀슈머 마케팅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비슷한 제품 패키지 탓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우려 섞인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사물 인지 능력이 흐린 유아뿐 아니라 지적 장애인, 치매 노인들이 자칫 제품을 오인해 섭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소비자원의 어린이 안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어린이가 이물질을 삼키는 사고는 2017년 1498건에서 2018년 1548건, 2019년 1915건으로 매년 증가세다. 특히 완구·문구 등 학습용품이 가장 많은 사고를 일으켰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펀슈머 트렌드를 공략해 다양한 패키지 상품이 경쟁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며 “지나친 콘셉트는 MZ세대가 추구하는 가치소비에도 벗어나는 만큼 브랜드 스스로 자정작용을 거쳐야 할 것”이라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