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대전환이 이끄는 반도체 수요 폭증이 한국을 비롯해 일본·대만·중국 반도체 회사들의 기업가치를 올리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반도체들은 메모리 제조사뿐만 아니라 파운드리, 반도체 소부장 등 밸류체인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각국의 반도체 대장주들의 주가가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일본 반도체는 장비 부문에서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대체 불가능한 자리를 차지했는데 작년 말부터는 낸드플래시 회사 키옥시아홀딩스의 주가가 고공 행진하면서 반도체 밸류체인의 구도가 달라졌다. 일본에선 최근 낸드플래시 기업 키옥시아홀딩스가 올 들어 주가가 8배 오르며 도요타자동차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에 오르는 이변이 벌어졌다. 같은 기간 반도체 장비사 도쿄일렉트론도 두 배 넘게 오르며 반도체주들이 2023년 밸류업 이후 일본 증시의 2차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 키옥시아홀딩스, 도쿄일렉트론, 어드반테스트는 니케이225 시총 상위 10위권 내 포진해 있다.
일본 반도체 부활의 상징으로 떠오른 키옥시아홀딩스(Kioxia)는 과거 도시바의 메모리 사업부에서 독립한 글로벌 낸드플래시 전문 기업이다. 최근 고성능 AI 서버 수요 증가에 힘입어 극적인 실적 턴어라운드를 달성했으며, 글로벌 투자처 확대를 위해 미국 증시(ADR) 상장까지 추진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 전공정 장비의 최강자인 도쿄일렉트론(TEL)은 감광액을 바르고 현상하는 트랙 및 식각 장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글로벌 종합 반도체 기업 중 하나로, AI 서버용 고대역폭 메모리(HBM) 가동률 상승의 최대 수혜주로 꼽힌다. 노광 공정의 필수 검사 장비를 독점하고 있는 레이저텍(Lasertec)은 극자외선(EUV) 마스크 결함 검사 장비 시장점유율 100%를 자랑한다. 레이저텍의 장비 없이는 TSMC나 삼성전자의 초미세 첨단 반도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전공정에서 도쿄일렉트론이 버티고 있다면, 반도체의 핵심 원재료인 실리콘 웨이퍼 분야에서는 섬코(SUMCO)가 전 세계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섬코가 공급하는 고품질 고순도 웨이퍼는 미세 공정이 필수적인 첨단 AI 칩 제조의 시작점이자 필수재다.
코쿠사이일렉트릭(Kokusai Electric)은 반도체 웨이퍼 표면에 얇은 막을 입히는 박막 증착(Deposition) 열처리 장비의 강자로,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미세화 공정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핵심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전력반도체 분야의 강자인 롬(ROHM)은 탄화규소(SiC) 기반 차세대 전력반도체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전력 소비를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롬의 반도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후공정(패키징) 단계에서는 디스코(DISCO)가 독보적이다. 디스코는 웨이퍼를 정밀하게 자르고(Dicing) 깎아내는(Grinding) 다이싱 장비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70~80%를 장악하고 있으며, 최근 HBM 적층 공정 확대로 몸값이 더욱 치솟았다.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는 일본 정부 주도로 NEC·히타치·미쓰비시 전기 등 19개 기업이 공동 출자해 만든 반도체 기업이다. 자동차용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시스템온칩(SoC)·아날로그 반도체 등 다양한 반도체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팹리스 기업이다.
일본 반도체주는 일본 증시의 최소 주문 단위 100주 거래 규칙 때문에 ETF로 접근해야 한다. 키옥시아홀딩스의 경우 100주를 거래하려면 1억원 가까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일본 반도체에 투자하는 ETF는 세 종목이 상장돼 있다.
ACE 일본반도체는 키옥시아홀딩스의 비중이 10% 정도로 높고 그 외 섬코, 롬, 코쿠사이일렉트릭, 도쿄일렉트론을 편입하고 있다. TIGER일본반도체FACTSET은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이 비중이 10%로 가장 높다. 그 외 도쿄일렉트론, 레이저텍, 어드반테스트, 디스코 등 장비주에 집중된 포트폴리오다.
7월 들어 글로벌 증시에서 반도체주들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와중에도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전방위적인 기술 규제 압박 속에서도 중국 본토 테크 지수인 과창판(STAR50)을 중심으로 반도체 관련주들이 줄줄이 신고가를 경신하는 등 이례적인 랠리를 펼치는 중이다.
중국 반도체 업종의 강세는 정책적 자금 유입, 범용 칩 수급 타이트, 기술적 모멘텀이 맞물린 결과다. 중국 정부는 미·중 갈등에 대응해 과학 기술 자립을 뜻하는 ‘신품질 생산력’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특히 역대 최대 규모인 ‘국가반도체펀드 3기’가 가동되면서 막대한 정책 자금이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에 주입되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반도체 대기업들이 AI 가속기와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하이엔드 제품에 생산능력을 집중하면서, 가전·IT 기기·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레거시 공정 기반의 D램과 파운드리 공급이 부족해졌다. 이 틈새를 중국 기업들이 메우며 실적이 급증했다. CXMT(창신메모리)는 중국 메모리 반도체 자립의 핵심 축이다. 공격적인 설비 투자를 바탕으로 글로벌 D램 시장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렸다. ‘딥시크(DeepSeek)’ 등 중국계 대형언어모델(LLM)의 급부상으로 중국 내 자체 AI 컴퓨팅 인프라와 국산 칩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점도 주가를 끌어올렸다. 현재 중국 반도체 자립의 선봉에 서서 주가 상승을 견인하는 대표 기업은 SMIC와 캠브리콘, 나우라 등이다.
SMIC(중심국제)는 중국 최대의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이다. 미국의 첨단 장비 반입 규제 속에서도 고도화된 패키징 기술과 미세 공정 우회 기술을 통해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및 AI 칩을 위탁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레거시 파운드리 공급 부족의 최대 수혜주로 꼽힌다. 나우라(북방화창)은 중국 1위의 반도체 전공정 장비(식각·증착 등) 제조업체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이 미국산 장비를 쓸 수 없게 되자, 그 자리를 고스란히 대체하며 독점적 수혜를 누리고 있다. 기술 국산화율이 높아질수록 매출과 주가가 동반 상승하는 구조다. 중국의 제조산업은 2021~2035년 첨단제조 고도화(AI, 기술자립)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제15차 5개년경제규획(15.5 경제규획)에서 중국정부의 정책 최우선 순위는 신규 산업(반도체),첨단기술(AI), 신형 인프라(데이터센터, 컴퓨팅 파워망)로 확정되었다.
중국 정부는 15.5 경제규획을 시작하면서 AI 생태계 확장을 선언하였고 시진핑 주석은 3월 양회에서 AI 반도체 공급 문제 타파를 강조하였는데 2030년 반도체 생태계 육성 방안은 (1) 반도체 자급률 80% 목표, (2) 중국 IC 산업 글로벌 3위권 격상,(3) 28나노 자주 통제,14나노 안정 생산,7나노 국산 장비 초보적 완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전종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 반도체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해왔으나 수요와 생산의 비대칭이 여전히 크다. 중국의 반도체 수요는 2025년 말 기준 2700억 달러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정책으로 인해 중국의 생산은 제조 2025의 국산화 목표(70%)에 크게 미달하였고 지난해 반도체 자급률은 23%에 그친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은 AI 데이터센터 관련 반도체의 경쟁력 확보가 선결과제로 남아있다. 중국은 파운드리, Driver IC 등은 생산량 측면에서 글로벌 선도에 위치하며 기술 경쟁력도 격차가 크지 않은 편인 반면에 AI 가속기와 5G 통신 반도체의 기술 격차가 여전히 크다. 중국 정부의 2030년 D램과 낸드플래시의 중국 내수 자립도 목표는 각각 50%와 70%라서 정부 지원은 계속되며 하반기 차이나 반도체 기업의 IPO는 반도체 밸류체인의 주가 모멘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반도체에 투자하는 ETF는 올해 중국 지수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
TIGER 차이나반도체FACTSET은 기가디바이스, 캠브리콘, 나우라, AMEC, 몬타지테크놀로지 등을 담은 반도체로 6월 들어 수익률이 크게 올랐다. 이 외에 KODEX 차이나반도체TOP10은 하이곤인포메이션(해광신식), 종지이노라이트(중제욱창), 바이위준저테크놀로지(백유존저과기), 캠브리콘 등을 높은 비중으로 담고 있다. TIME 차이나AI테크 액티브 역시 중국 반도체가 중심이 되는 액티브 ETF다. 나우리지아틀라스테크놀로지, 엘리트 재료, 신역성통신기술, 종지이노라이트, 화홍그레이스반도체 등을 편입하고 있다.
대만의 TSMC는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 기업이다. AI 연산 프로세서의 핵심 성능 지표로서 전력 효율성이 주목받으며 데이터센터 칩 고객사들의 최선단 공정 채택이 가속화되는 시기, TSMC는 현재 양산 중인 주요 GPU, AI 가속기 및 ASIC 양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AI 시대 대만은 엔비디아의 핵심 공급망 기지로 격상했다. 베라루빈 램프업 단계에는 전 세계 30개국 350여 개 공장이 동원되는데 이 중 대만에서만 150개 공급망 파트너가 참여한다. 대만은 단순 서버 조립기지가 아니라 파운드리, 패키징, 테스트, 서버 랙, 전력, 냉각,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공급망이다. 대만에서는 칩이 생산되고, 패키징이 이뤄지며, 시스템이 조립되고, AI 슈퍼컴퓨터가 완성된다. 젠슨 황이 대만을 AI 혁명의 중심지(epicenter)로 지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만 반도체는 국내에서 거래 가능한 증권사가 별로 없기 때문에 ETF가 좋은 방법이다. KODEX 대만테크고배당다우존스는 대만 AI 밸류체인과 고배당의 장점을 모두 누릴 수 있는 방법이다. 노바텍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오스텍컴퓨터, 콴타컴퓨터, 페가트론 등에 투자한다. 연간 배당률은 5%에 달하는데 대만의 PC 관련 회사들은 이미 산업 성숙기에 접어들어 대규모 투자 필요가 적기 때문에 배당 성향이 높다.
KODEX 한국대만IT프리미어는 TSMC의 비중이 20%,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합쳐서 30%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 미디어텍, ASE산업홀딩스, 아지오, 유나이티드마이크로 등 대만의 기판·반도체주에 투자한다.
[김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