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전광판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지워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지수는 여전히 900개가 넘는 종목으로 구성돼 있지만, 시장의 무게중심은 갑자기 기울어진다. 조선, 방산, 자동차, 금융, 바이오, 전력기기까지 한국 산업의 이름들이 줄지어 움직여도 투자자들의 시선은 결국 두 칸으로 되돌아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위로 움직이면 코스피는 다시 고개를 들고, 두 종목이 흔들리면 시장 전체가 먼저 몸을 낮춘다.
이제 반도체는 한국 증시의 ‘주도 업종’이라는 말로는 부족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보통주 시가총액은 코스피 전체의 48% 안팎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 우선주까지 더하면 한국 증시의 무게는 사실상 절반 가까이 두 회사 쪽으로 기운다.
이 숫자는 단순한 대형주 비중이 아니다. 한국 증시의 방향이 두 회사의 메모리 가격, HBM 공급력, 빅테크 설비 투자, 외국인 수급에 점점 더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존재감은 이미 과거의 ‘반도체 대장주’ 수준을 넘어섰다. 5월 20일 장중 KRX 기준 시총 상위 종목에서 삼성전자는 약 1580조원대, SK하이닉스는 약 1290조원대 규모로 표시됐다. 5월 19일 마감 기준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 5956조원대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삼성전자는 코스피의 26%대, SK하이닉스는 21%대 비중으로 추산된다. 두 종목만 더하면 48% 안팎이다.
이 구조에서는 지수와 종목이 서로를 증폭시킨다. 외국인과 기관이 코스피를 사면 시가총액 비중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비중이 커진다. 두 종목이 오르면 다시 코스피가 오르고, 코스피가 오르면 패시브 자금과 추종 자금이 두 종목을 더 산다. 상승장에서는 이 흐름이 선순환 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정장에서는 같은 구조가 ‘역회전’한다. 지수 하락은 곧 두 종목 매도로 이어지고, 두 종목 매도는 다시 지수 하락을 키운다.
여기에 새 변수도 붙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한 단일 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가 이달 말 대거 상장을 앞두고 있다. 상품은 총 16개고, 8개 운용사가 각각 2개씩 상품을 내놓는 구조다. 이 가운데 6개 운용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상승률을 2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를 준비하고, 일부 운용사는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ETF도 함께 선보인다.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는 투자자의 선택지를 넓힌다. 한국 반도체 대표주에 더 쉽게, 더 강하게 베팅할 수 있는 도구가 생기는 셈이다. 그러나 지수 관점에서는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두 종목이 코스피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레버리지 상품까지 붙으면, 호재에는 자금이 더 빠르게 몰리고 악재에는 매도·헤지·리밸런싱 물량이 더 민감하게 움직일 수 있다. 특히 하루 수익률의 2배를 추종하는 상품은 장기투자보다 단기 방향성 매매에 가깝다. 시장의 중심이 커질수록, 중심의 흔들림도 더 멀리 전달된다.
한국 증시의 쏠림은 유별나지만, 고립된 현상은 아니다. AI는 전 세계 지수의 모양을 바꾸고 있다. 미국에서는 매그니피센트7이 2026년 5월 12일 기준 S&P 500 시가총액의 34.8%를 차지했다. 2016년 12.5% 였던 비중이 10년 만에 세 배 가까이 커진 셈이다.
대만은 더 극적이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대만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2026년 4월 말 4조4700억 달러로 불어나 캐나다를 넘어섰고, TSMC는 현지 주식 벤치마크의 거의 45%를 차지했다.
다시 말해 한국만 ‘삼전닉스’에 갇힌 것이 아니다. 미국은 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 등 빅테크에, 대만은 TSMC에,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지수의 무게중심이 실리고 있다. AI 인프라 투자 경쟁은 시장을 넓히는 동시에 좁히고 있다. 데이터센터, 전력망, 반도체 장비, 클라우드, 냉각 기술까지 주변 산업은 커지지만, 정작 지수의 수익률은 가장 강한 병목 기업 몇 곳에 집중된다.
물론 차이는 있다. 미국의 매그니피센트7은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광고, 전기차, 반도체가 섞인 포트폴리오다. 대만은 TSMC라는 파운드리 절대강자에 기대고 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두 회사가 지수와 이익의 중심이 됐다. 같은 AI 쏠림이라도 미국은 플랫폼과 칩 설계, 대만은 파운드리, 한국은 HBM과 범용 메모리 가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한국 증시의 쏠림은 단순한 대형주 집중이 아니다. 글로벌 AI 공급망에서 한국이 맡은 위치가 지수 구조에 그대로 새겨진 결과다. 투자자는 한국 시장을 산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AI 메모리 사이클의 지속성을 사는 경우가 많아졌다. 코스피가 과거보다 더 글로벌해졌다는 말은, 동시에 글로벌 반도체 사이클에 더 크게 흔들리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쏠림이 커지면 시장은 늘 같은 질문을 꺼낸다. “이 정도면 버블 아닌가.” 숫자만 놓고 보면 의심은 자연스럽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면, 지수의 분산 효과는 크게 줄어든다. 반도체 두 종목의 주가가 흔들릴 때 조선, 금융, 바이오가 버텨도 지수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쏠림을 단순한 과열로만 보지 않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두 종목의 코스피 내 시가총액 비중이 48%까지 높아졌지만, 12개월 예상 순이익 기준으로는 두 기업이 전체 코스피 순이익의 약 72%를 차지한다”라고 분석했다. 시총 비중보다 이익 기여도가 더 크기 때문에, 현재의 집중은 적어도 숫자상으로는 펀더멘털에 기반한 흐름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이 연구원이 제시한 경고 신호는 따로 있다. 그는 이익 성장에 기반한 강세장이 멈추는 신호로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이 삼성전자를 추월하는 시점”을 들었다. 실적 규모의 역전 없이 주가 과열만으로 시총 1위가 바뀌면, 시장이 이익보다 기대를 더 크게 사기 시작했다는 뜻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 설명이 흥미로운 이유는 낙관과 경고가 같은 보고서 안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장세는 이익으로 설명되는 부분이 크다. 하나증권은 삼성전자의 2026년 순이익 추정치를 280조원, SK하이닉스를 208조원으로 봤다. 2027년에도 삼성전자 349조원, SK하이닉스 272조원으로 삼성전자의 이익 체력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주가 상승만으로 시총 서열이 먼저 뒤집히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연구원은 2000년 닷컴버블 당시 시스코 사례도 꺼냈다. 당시 시스코는 마이크로소프트와 GE를 제치고 S&P 500 시총 1위에 올랐지만, 연간 순이익은 GE의 20%, 마이크로소프트의 28% 수준에 그쳤다. 이익 규모와 무관하게 시총 순위가 바뀐 뒤 나스닥이 하락 추세로 들어섰다는 비교다.
버블 논쟁 한가운데서 가장 대담한 숫자를 꺼낸 곳은 노무라다. 노무라는 5월 15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기존 34만원에서 59만원으로,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234만원에서 400만원으로 끌어올렸다. 두 기업을 전통적인 경기민감주가 아니라 AI 시대의 구조적 성장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노무라가 본 핵심은 메모리의 성격 변화다. 과거 메모리는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고, 공급이 늘면 가격이 꺾이는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이었다. PC와 스마트폰 수요, 재고 조정, 설비투자 속도에 따라 이익이 크게 출렁였다. 그런데 AI 인프라 시대에는 메모리가 데이터센터의 핵심 자산으로 바뀌고 있다. HBM은 범용 제품보다 고객, 사양, 공급 일정이 더 촘촘하게 묶인다. 빅테크의 장기 주문이 늘어나면 판매량과 가격의 하방도 과거보다 단단해질 수 있다.
국내 하우스 일부도 목표가를 올리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5월 20일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85% 상향한 380만원으로 제시했다. 근거는 2026~2029년 평균 ROE 60%, 목표 PBR 6배다. 한국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가 하이퍼스케일러 4개 업체와 3~5년 단위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파악했고, 이들 고객의 매출 비중을 총매출의 25~30%로 추정했다.
KB증권도 5월 15일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28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다시 올렸다. 불과 사흘 전 200만원에서 280만원으로 올린 뒤 추가 상향이었다. KB증권은 2분기 D램과 낸드 가격이 기존 전망을 웃돌고, AI 데이터센터 업체들이 전체 메모리 출하의 70%를 흡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낙관론의 공통분모는 하나다. 메모리 산업의 계약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단기 현물 가격에 흔들리던 과거와 달리, 하이퍼스케일러와의 장기공급계약이 늘어나면 판매량과 가격의 하방이 일부 잠긴다. 이 경우 메모리 기업의 이익 변동성은 낮아지고, 시장은 더 높은 멀티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비중이 커졌다고 해서 곧바로 한국 증시의 위험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최근 반도체 랠리의 상당 부분은 실제 이익 전망 상향과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장이 앞으로 확인해야 할 질문은 분명해졌다. 메모리 이익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는가. 그리고 반도체 밖에서도 코스피를 받쳐줄 업종이 함께 자랄 수 있는가.
첫 번째 변수는 실적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5월 15일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300만원으로 올리면서 “D램과 낸드 2분기 가격이 기존 전망을 상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AI 데이터센터 업체들이 전체 메모리 출하의 70%를 흡수하고 있다고 분석했고, 메모리 가격 상승과 실적 개선 속도가 시장 기대치를 계속 웃돌 경우 실적 전망치 상향 속도가 당분간 주가상승 속도를 앞설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 진단이 맞다면 현재의 반도체 쏠림은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이익으로 설명되는 장세에 가깝다.
문제는 그 이익이 어느 시점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다. 김 본부장은 빅테크 4사의 토큰 사용량 증가와 AI 설비투자를 근거로 SK하이닉스의 사업 구조가 ‘선수주·후생산’에 가까운 구조로 진화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동시에 2027년 메모리 공급이 올해보다 더 타이트해질 수 있다고 봤다. 반대로 이 가정이 흔들리면 시장은 같은 숫자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HBM 가격, 범용 D램·낸드 가격, 빅테크의 AI CAPEX가 매 분기 확인해야 할 지표로 떠오르는 이유다.
두 번째 변수는 시장의 폭이다.
김용구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코스피 밴드를 7600~1만으로 제시하면서, 글로벌 매크로 순항과 AI CAPEX 슈퍼 사이클, 반도체 업황·수출·실적 호조가 이어질 경우 한국이 2028년까지 글로벌 및 이머징 마켓에서 비중 확대 1위 시장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전망은 반도체 랠리 자체보다, 그 랠리가 수출과 실적, 자금 유입의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본다.
세 번째 변수는 수급 구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한 단일 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 출시는 투자자 선택지를 넓히는 동시에 변동성 논쟁을 키우고 있다. 레버리지 ETF의 일간 목표 배율 조정 과정에서 장 마감 무렵 매수·매도 물량이 집중될 경우 종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하반기 한국 증시의 관전 포인트는 하나의 신호로 좁혀지지 않는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격차, 두 회사의 이익 추정치 변화, HBM과 범용 메모리 가격, 빅테크 AI CAPEX 지속 여부, 단일 종목 ETF 거래대금, 그리고 반도체 밖 업종의 실적 확산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