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연말의 글로벌 투자시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방향성보다 속도”다. 미국은 금리 피크아웃 이후의 완만한 완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재정 불확실성, 지정학 리스크가 동시에 가격에 반영되면서 자금은 한 번에 ‘정답’을 고르기보다, 리스크·수익의 균형이 조금이라도 좋아 보이는 쪽으로 더 자주 갈아탄다. 이러한 환경에 글로벌 전문기관들은 공통적으로 2026년의 자본시장 전망에 있어 ‘대세 한 방’보다 지역과 자산, 섹터 사이를 가로지르는 회전(로테이션)을 핵심 키워드로 꼽고 있다.
그 출발점에는 미국 주식, 그중에서도 AI를 중심으로 한 초대형주의 과밀이 있다. 다만 이 과밀은 ‘이제 끝’의 신호라기보다, 다음 자금 이동이 시작될 조건이 갖춰졌다는 의미에 가깝다. 2025년까지 집중이 만든 성과는 이미 충분히 컸고, 이제 시장은 같은 테마를 더 넓은 지도 위에서 재배치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 과정에서 2026년의 AI 이후의 자본 회전을 읽고 포지션을 바꿀 수 있는 투자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쏠림이 위험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가격이 올라서가 아니라, 시장이 설명하는 방식이 단순해지기 때문이다. ‘미국 메가캡=AI’라는 하나의 프레임이 포트폴리오를 지배하면, 뉴스 한 줄이 전체 자산의 변동성을 흔든다.
이 점을 제도권 기관이 공식적으로 추적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신호다. BIS(국제결제은행)는 2025년 12월 분기보고서를 통해 ‘매그니피센트 7’의 S&P500 내 시가총액 비중을 그래프로 제시하며, AI 대중화 이후 비중이 빠르게 커졌다고 설명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M7의 시총 비중은 2022년 11월 약 20%에서 2025년 11월 말 기준 35%에 근접했다”라며 “여기에 ‘기타 기술주’ 비중까지 늘면서 시장의 기술주 집중이 구조적 변수로 올라섰다”고 지적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주도주가 흔들릴 때 ‘다 같이 흔들리는’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BIS가 이번 랠리를 1990년대 말 닷컴 버블과 단순 비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시와 달리 실적(이익성장)이 동반된 상승이라는 해석을 깔면서도, 동시에 밸류에이션이 역사적 상단으로 올라온 구간에서 변동성의 빈도가 잦아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즉, ‘거품이냐 아니냐’의 단정이 아니라 ‘집중이 시장의 취약점’이 되는 구조를 짚는다. 2026년 로테이션은 이 구조적 취약점을 완화하려는 자금의 본능에서 출발한다.
로테이션은 보통 거창한 선언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지수는 올라가는데, 리더가 바뀌는 장면으로 먼저 나타난다. 2025년 12월 중순 미국 증시는 그 예고편을 꽤 선명하게 보여줬다.
로이터는 12월 11일 시장을 “AI 고평가 우려 속에서 금융주·소재주 등으로 이동”이라고 정리했다. 지수는 기록을 썼지만, 기술주는 상대적으로 힘이 빠지고 가치·순환 업종이 두드러졌다.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과 금리·물가 변수의 긴장감이 겹치자, 투자자들은 기술주에서 빠져나와 다른 섹터로 피난했다. 이 흐름의 핵심은 “AI가 끝났다”가 아니라, AI가 시장의 유일한 엔진이라는 전제가 흔들릴 때 자금이 즉시 분산된다는 사실이다.
2026년을 앞두고 이 패턴은 확대 재생산 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주→비 기술주’만이 아니라, ‘미국→비미국’ ‘성장→가치’, ‘대형→중형’ ‘주식→대체 자산’으로 갈라지는 다중 로테이션이 한 해 동안 반복될 수 있다. 그래서 2026년 전략은 방향성 베팅보다 포트폴리오의 회전 반경과 속도를 설계하는 문제에 더 가깝다.
로이터는 이에 대해 “투자자들이 고평가된 AI 주식의 평가 가치를 우려하며 금융·소재 등으로 이동했다”라고 평가했다.
AI가 2026년에도 핵심 테마라는 점을 부정하는 시각은 많지 않다, 다만 시장의 분위기는 묘하게 변해가는 모습이다.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에 쏠린 자금이 여러 다른 테마로 분산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테마는 일종의 2026년 유망테마의 ‘공통분모’가 됐다. 공통분모가 된 테마는 수익을 주지 못한다. 수익을 주는 것은 그 테마 안에서 어떤 구간이 더 싸고, 어떤 구간이 더 확실한가라는 재분류다. 로테이션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BofA(뱅크오브아메리카) 글로벌 펀드매니저 설문에 따르면 2025년 11월 시장의 ‘군중심리’를 수치로 보여준다. 기관 자금의 현금 비중이 3.7%까지 낮아지며 ‘매도 신호’로 해석했고, 응답자의 54%가 ‘매그니피센트 7’ 상승에 베팅했다고 밝혔지만, 동시에 45%는 ‘AI 버블’을 최대 꼬리 위험(Tail Risk)으로 지목했다. 이 수치는 투자자들이 AI 자체를 부정한다기보다, AI 투자방식이 너무 한쪽으로 쏠려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다음 단계의 자금은 ‘AI 주도주를 더 사는 것’이 아니라, AI가 실제로 돈이 되는 구간으로 내려간다. 예컨대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이어질수록 전력·냉각·네트워크·반도체 밸류체인,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산업·금융 섹터로 관심이 옮겨간다. 기술주 내부에서도 ‘모델·플랫폼’에서 ‘인프라·효율·현금흐름’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할 수 있다. 2026년 자본 로테이션의 본질은 테마 교체가 아니라 테마 내부의 포지셔닝 교체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로테이션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드는 근거는 ‘대안이 생겼다’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미국 메가캡이 너무 강해서 대안을 찾기 어려웠지만, 2025년 말부터는 AI의 수혜 지도가 미국 밖으로 넓어진다는 공식 전망이 등장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블랙록 투자연구소(BlackRock Investment Institute)는 2026년 아웃룩에서 AI 테마의 확산을 ‘Going global’로 정리한다. 요지는 명확하다. 미국 주식 비중을 유지하되, AI 수혜가 중국·대만·한국 등 더 넓은 시장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는 ‘AI=미국 빅테크’ 프레임을 깨는 데 유용한 근거다. 특히 하드웨어·부품·공정·메모리 등 공급망의 핵심이 아시아에 촘촘히 깔려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2026년의 로테이션은 미국 주도주의 ‘독주’에서 ‘분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일 수 있다.
블랙록 2026년 아웃룩은 “AI 테마는 올해 더 넓어졌고, 중국·대만·한국을 포함한 더 다양한 시장이 그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라고 밝혔다.
물론 이 문장은 곧바로 “미국을 팔고 아시아를 사라”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중’이 아니라 ‘구조’다. AI가 계속 되더라도, 시장이 더 이상 한두 개 종목군에만 프리미엄을 몰아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 순간부터 자금은 지역을 가리지 않고 가치평가와 실적 가시성이 맞닿는 곳으로 회전한다.
2026년 로테이션을 이야기하면서 지정학을 빼면 퍼즐이 완성되지 않는다. 자본은 리스크를 싫어하지만, 동시에 리스크가 만들어내는 가격 왜곡을 사랑한다. 미·중 갈등이 지속될수록 수혜는 균등하지 않다. 오히려 “어디에 공급망이 남느냐”에 따라 비대칭이 커진다.
중국이 국가 지원받는 데이터센터에서 외국산 AI 칩 사용을 제한하는 지침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로이터 등 여러 외신은 “중국 내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2021년 이후 1000억달러가 넘는 국가 자금이 유입됐다”라고 전했다.
이는 ‘기술 냉전’이 단순한 관세 싸움이 아니라,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축으로 한 산업정책 전쟁으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미국은 수출 통제와 승인 여부를 통해 공급망의 밸브를 조절하려 한다. 로이터는 11월 초 미국이 엔비디아의 중국향 판매를 둘러싼 제약을 다뤘고, 이런 정책 변수는 기업의 실적뿐 아니라 투자자 포지션의 지역 분산을 자극한다.
여기서 ‘수혜’는 두 갈래로 갈린다. 첫째, 규제가 심해질수록 미국·동맹국 중심의 공급망(대만·한국 포함)에 프리미엄이 붙을 수 있다. 둘째, 반대로 규제가 완화되거나 ‘틈새’가 생길 경우, 밸류에이션이 눌린 시장에서 반등이 커질 수 있다. 즉, 미·중 갈등은 시장을 한쪽으로 몰아붙이기보다 회전의 폭을 넓히는 촉매가 된다. 2026년에는 이 정치적 변수가 ‘리스크’이면서 동시에 ‘로테이션의 원인”이 된다.
한국은 로테이션의 한가운데에 있다. 반도체를 통해 AI 사이클의 실물 수혜와 연결돼 있고, 동시에 원화와 해외투자 수요라는 금융 변수에 노출돼 있다. 2026년 ‘회전의 시대’에 한국 투자자가 놓치기 쉬운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 로테이션은 한국 주식 내부에서도 일어난다. 둘 째, 로테이션은 원화 환율과 함께 온다. 로이터는 2025년 12월 초 “한국 금융당국이 해외투자 확대에 따른 FX(환) 리스크를 주시하고 있다”라는 분위기에 주목하며, “원화가 해당 분기 달러 대비 4% 넘게 약세를 보였고 중앙은행이 이를 거주자의 해외투자 증가와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와 연관 지어 설명했다”라고 전했다.
다시 말해 ‘미국 쏠림→해외투자 확대’라는 흐름이 환율과 정책 논의까지 끌고 들어왔다. 이는 2026년 로테이션 국면에서 한국 투자자의 성과를 좌우하는 변수가 ‘무엇을 사느냐’뿐 아니라 환율과 헤지, 그리고 자금의 귀환 타이밍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본이 더 빠르게 회전할수록, 정책은 역설적으로 ‘머무를 이유’를 만들려 한다. 정부는 장기 보유·장기투자에 인센티브를 검토하는 한편, 환율이 투기적 거래와 군집 심리에 더 민감해졌다는 문제의식 아래 변동성을 누를 수단을 저울질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국민연금과의 FX스왑을 2026년 말까지 연장해 해외투자 과정에서 생기는 달러 수요가 원화에 주는 충격을 흡수하려 하고, 국민연금도 환헤지 운용의 상단을 유지하며 ‘완충장치’를 계속 세팅하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은 채권·단기자금 시장 안정 장치를 2026년까지 이어가며, 급격한 쏠림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번지는 것을 막겠다는 쪽으로 무게를 뒀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4호 (2026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