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폭탄’을 전격 시행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무역 시스템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관세를 부과받은 나라들은 미국을 상대로 한 ‘맞불 관세’를 준비하는 등 자국 이익을 지키기 위한 비상대책을 강구하고 나서고 있다.
더욱이 트럼프 2기 경제·통상 각료들은 오는 4월 1일까지 미국의 만성적인 상품 무역수지 적자 축소 방안, 미국 산업·제조업 기반 및 경제안보보장 전략 등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미국의 모든 무역협정 및 교역 관계를 전수 점검하고, 반덤핑·상계관세·면세 한도 규정 등을 포함한 관세, 비관세 장벽, 환율, 세제, 조달, 시장 개방, 수출통제, 대외 금융투자 등의 분야를 망라해 적자 축소 방안을 마련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관세를 통한 통상분쟁은 전 세계로 확산할 전망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 전쟁을 벌이며 다양한 관세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미국에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부과하는 ‘보편 관세(universal tariff)’부터, 특정 국가의 모든 제품에 일괄 부과하는 ‘국가별 관세’, 특정 품목에 부과하는 ‘품목 관세’, 국가별 무역 균형을 맞추기 위한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까지 ‘관세 4종 세트’를 동시다발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국가와 품목에 상관없이 전 세계 모든 수입품을 대상으로 기존 관세에 10~20%의 관세를 추가로 매기는 보편 관세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보편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대다수 품목에 무관세를 적용하는 국가들도 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취임 직후 꺼내든 관세는 국가별 관세다. 지난 2월 1일 트럼프는 캐나다와 멕시코산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에는 기존 관세에 추가로 10%포인트를 얹는 명령에 서명했다. 이 나라들이 불법 이민과 마약 유통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명분이었다. 이 중 캐나다·멕시코는 결국 트럼프에게 “국경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고 관세를 한 달 유예받았지만, 언제든 경제 문제가 아닌 정치·외교적 문제로 특정 국가에 일괄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셋째 카드는 품목별 관세다. 트럼프는 지난 2월 10일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3월 12일부터 부과하는 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1기 때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미국과 맺었던 철강 쿼터(무관세 수출 할당) 협정이 무효화되고, 25%의 일률 관세가 부과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에 대한 관세도 예고한 상태다.
트럼프는 또한 국가별로 상호 관세를 검토해 4월 1일 이후 시행하는 내용이 담긴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각국이 미국 상품에 적용하는 관세와 비관세 장벽까지 모두 고려해 이에 상응하는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이다.
대규모 무역 적자 해소에 나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상호 관세 카드로 세계 각국을 압박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괄적으로 같은 관세를 매기는 보편 관세만으로는 무역 적자 축소와 자국 산업 보호와 같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주요 타깃 국가와 일대일 협상에 나서는 상호 관세로 그물망을 촘촘하게 만들어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은 1월 11일 CNN 인터뷰에서 “우리는 교역 상대국 전부를 들여다볼 것”이라며 “우리와 무역 적자가 가장 큰 나라들부터 사기를 치는지 알아내고, 만약 그렇다면 잘못을 바로잡는 조처를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의 상품 무역 적자 규모가 1조 1989억달러(약 1737조원)에 이르며 2022년(1조 1835억달러) 기록을 깨고, 역대 최대를 기록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상호 관세 카드까지 내놨다는 것이다.
상호 관세 시행을 앞두고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많이 내는 나라부터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특히 인도와 EU처럼 무역 적자가 크면서 미국과 관세율 차이가 많이 나는 국가가 타깃으로 거론됐다. 지난해 미국이 11번째로 많은 적자를 기록했던 인도는 미국에 수출할 때 평균 3% 관세만 물고 있지만, 미국산 제품을 수입할 땐 평균 9.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무역·통상 업계에서는 단순히 미국과의 관세 차이를 넘어 부가세와 같은 세금과 보조금 등 비관세 장벽까지 고려할 것이란 관측이 시행 전부터 나왔다. 미국이 EU에서 BMW 차량을 수입할 때는 2.5%의 관세가 붙지만, EU가 미국산 포드를 수입할 때는 관세만 10%를 매기고, 20% 수준인 부가세까지 더하면 세율은 30%에 이른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단장은 “EU가 관세 외에도 부가세를 많이 부과하는 상황에서 미국으로선 이를 더한 만큼을 차이로 인식해 상호 관세를 매길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역 적자가 심각한 국가에는 전체 평균 관세를 비교해 관세를 올리고, 첨단 산업 보호와 같은 필요가 있을 땐 각국의 해당 품목에 대해서만 관세를 매기는 방식으로 상호 관세가 운용될 것이란 관측이 일찍부터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투자은행 노무라 싱가포르 법인의 소날 바르마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이끄는 분석팀은 최근 보고서에서 “상호관세의 부과 기준을 넓힘에 따라 절차가 더욱 복잡해지고 불투명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신흥국부터 선진국까지 더 넓은 범위에 걸쳐 부과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노무라는 비관세 장벽이 높은 아시아 국가로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을 거론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한국, 다른 선진국인 일본에 대해서도 “규제나 시험 표준 등에 관한 장벽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상호관세가 부과될)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상호관세는 양자 협상의 여지를 열어둔 방식으로 평가된다. 전 품목에 동일한 관세율이 부과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국 입장에서는 특정 수입 품목에 대한 미국의 관세인상 조치를 협상을 통해 막으려는 유인이 커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련의 관세 부과 계획을 내놓으면서 각국 대응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예고→발표→시행 유예’ 패턴을 유지하면서 관세 위협을 극대화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주요국들은 피해 최소화를 위해 총력 외교전에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 우선주의’로 인해 대서양 동맹에 균열 위험이 드리워진 상황에서 EU는 무역 수장이 나서 미국과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간다.
인도 정부의 트럼프 달래기도 진행형이다. 인도 정부는 지난 2월 13일자로 버번위스키 수입 관세를 기존 150%에서 100%로 내렸다. 버번위스키는 옥수수를 주원료로 하는 증류주로, 미국 켄터키주 버번이 원산지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미국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인텔의 반도체 공장 운영권을 인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날 블룸버그와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이 최근 TSMC와의 회의에서 인텔 공장 운영권 인수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고 TSMC는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복수의 소식통들이 전했다.
다만 TSMC의 투자 금액과 인텔의 제조 사업을 어디까지 인수할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상태다. NYT는 TSMC의 인수 공장이 오리건주, 애리조나주, 뉴멕시코주 등에 위치한 미국 내 공장으로 한정될 수도 있고 아일랜드와 이스라엘 등 해외 공장까지 포함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훔치고 있다”며 비판해 왔다.
JD 밴스 부통령은 최근 파리 AI 행동 정상회의에서 “미국은 최첨단 인공지능(AI) 시스템이 미국에서 설계되고 제조된 칩으로 구축되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은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을 상대로 상호 관세 등 관세 부과 조치의 일본 적용을 배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와야 외무상은 2월 15일 뮌헨안보회의에서 루비오 장관과 짧은 의견 교환 시간을 갖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가 검토하는 관세 조치에 대해 이런 건의를 전달했다.
또 지난해 대미 상품 무역수지 흑자가 1235억달러로 전년보다 18.1% 증가, 역대 최대를 기록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는 베트남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를 검토하고 있다. 베트남 저가항공사 비엣젯은 오는 7월 보잉 보잉 737 맥스 200대를 인도받기로 했다. 국영 항공사인 베트남항공은 보잉 보잉 737 맥스 50대를 구매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을 통해 부가세를 관세보다 훨씬 더 가혹한 세금 체계라고 꼬집었다. 전 세계 170개국 이상이 운영하는 부가세를 타깃으로 삼으면서, 미국의 관세 전쟁이 한층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특정 국가들이 제공하는 보조금에 대한 조항을 마련할 것”이라며 “일부 국가들이 미국 제품의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해 부과하는 비금전적 관세 및 무역 장벽에도 대응할 것이고 특정 국가들이 미국 기업의 운영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도 이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거의 철폐했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미 통상당국이 미국 기업이 한국 시장 진출에 애로를 겪고 있는 각종 비관세장벽을 바탕으로 상호 관세율을 계산해 압박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각국의 고유한 제도인 조세제도까지도 뒤흔들 태세다. 부가가치세(VAT)가 미국 제도와 다르다는 이유로 ‘관세’와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 관세가 ‘협상 카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캐나다와 멕시코 관세가 유예된 것처럼 미국이 원하는 카드를 제시해 협상한다면 관세 부과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각국은 트럼프 ‘관세 쓰나미’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지만, 대통령 탄핵 국면인 한국이 제때 대응하지 못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4호 (2025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