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의 공격적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앤컴퍼니그룹 ‘남매의 난’에 이어 영풍·고려아연의 ‘동업자의 난’에 개입하며 지배구조를 정조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재벌과 공생하며 덩치를 키운 사모펀드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에 재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막대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사모펀드의 잇단 경영권 공격으로 ‘기업사냥꾼’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사모펀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선은 적잖다. 비용 효율화를 우선시하는 운영 전략은 단기적인 수익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들은 흔히 운영비 절감과 비용 효율화를 통한 빠른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한다. 이런 접근은 기업의 혁신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구조조정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려는 전략 역시 부작용이 꽤 있다. 단기적으로는 수익성 개선으로 보이지만, 해고된 직원들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장은 크다.
실제 MBK가 2008년 2조2000억원에 인수한 케이블TV 딜라이브는 실적 악화로 채권단 관리 중이고, 아웃도어 기업 네파는 약 1조원에 인수 후 실적 악화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2015년 7조2000억원에 인수한 홈플러스는 대표적인 ‘아픈 손가락’이다. 투자 후 통상 5년 안에 기업가치를 올린 뒤 재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사모펀드 운영 방식과 달리 MBK는 홈플러스에서 고강도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최근 까지 엑시트에 난항을 겪고 있다.
온라인 시장의 급성장으로 오프라인 중심의 대형마트 인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에 업계에선 재매각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MBK가 홈플러스 인수금융 4조3000억원을 상환하기 위해 수십 개 점포를 폐점하거나 매각 후 재임차(세일앤드리스백) 방식으로 매각하면서 기업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BHC에는 약 5700억원을 투자해 1대주주에 올랐으나 가맹점에 원부자재 납품 폭리로 논란이 일었 다 . MBK가 2018~2022년 BHC 영업이익의 80% 이상인 4696억원을 배당해 과도한 배당으로 투자금을 회수하고 미래 성장을 위한 기업 투자는 대폭 줄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과 PEF 간의 협력이 이처럼 다양한 계약 형태로 자본시장에 표출되면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 자본을 가진 PEF와 기업 간 은밀한 계약이 법의 사각지대를 노린 탈법·편법의 행태로 변질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불거진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PEF 간의 비밀약정이다. 방 의장은 2020년 하이브 상장 1~2년 전 PEF 3곳과 조건부 계약을 맺었다. 내용은 ‘일정 기간 내에 IPO를 하겠다’는 조건으로 투자 이익의 30%가량을 받는 것인데, 이 계약 내용을 상장 과정에서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PEF들은 보호예수 제한 없이 상장 첫날부터 지분을 대규모로 매각했고, 방 의장은 이들 PEF로부터 약 4000억원을 받았다. 하이브는 상장 첫날 장중 공모가 대비 160% 급등했지만 PEF 매물이 쏟아지며 1주일여 만에 주가가 최고가 대비 반토막 났다. 일반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는 사이 PEF와 최대 주주는 비밀계약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HL그룹(옛 한라그룹)이 정몽원 회장의 자녀가 세운 사모펀드(PEF) 로터스PE에 회삿돈 2170억원을 지원해준 것도 논란거리다. 로터스PE는 HL그룹 자금으로 투자에 나섰다가 4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내고 있다. 그룹 지주사인 HL홀딩스가 로터스PE와의 특수관계를 숨겨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계열사를 통해 우회로 자금을 지원하면서 특수관계인 공시 의무를 회피했다는 것이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HL홀딩스는 정 회장의 두 딸이 보유한 PEF 로터스프라이빗에 쿼티(PE)에 회삿돈을 투자하고 있다. 로터스PE는 장녀 정지연씨가 지분 50%, 차녀 정지수씨가 나머지 50%를 가진 개인 회사다. 최근에서야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이유는 비상장 자회사 HL위코를 거쳐 펀드 출자가 이뤄지면서 HL홀딩스가 공시 의무를 회피해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로터스PE는 2020년 11월 30일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신생사로 이상민 대표를 포함해 임직원은 세 명에 불과하다. HL홀딩스의 지원에 힘입어 설립 이듬해 곧바로 펀드를 설정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2023년 말 기준 다섯 개 펀드를 통해 약 3600억원의 자금을 굴리고 있다. 이 중 58%에 해당하는 약 2100억원을 HL홀딩스가 책임졌다. 이는 HL홀딩스 지난해 영업이익(922억원)의 2.27배다.
로터스PE는 펀드 운용보수 등으로 누적 90억원이 넘는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로터스PE 소유자인 정 회장의 두 딸 몫으로 돌아간다. 시장에서는 HL홀딩스→HL위코→로터스PE로 이뤄진 이익 이전이 정 회장 자녀의 HL홀딩스 지분 확보 재원으로 다시 활용될 것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투자업계 내부에서도 PEF와 대주주 간 거래가 자본시장 일반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본시장에서 다양하고 창의적인 계약은 자유지만 적어도 기업공개를 결정한 상장사라면 다른 주주들과 일반투자자들에게도 투명하게 알렸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자 보호에 충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벤처캐피털의 한 관계자는 “주주 간 계약을 맺을 때 각종 조건을 포함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투자자 보호 위반, 공모가격에 부당한 영향을 줬는지에 대해서는 감독 당국이 한 번 살펴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려아연 사태 역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MBK는 “국가기간산업인 고려아연을 중국에 팔수도 없고 팔지도 않겠다”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MBK는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한 후 기업가치를 높여 국내 대기업으로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시장에선 고려아연이 시가총액이 16조원이 넘어설 정도로 덩치가 큰 만큼 국내에서는 고려아연 인수 자금을 감당할 기업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있다. MBK 인수 시 중국 등 해외 분할 매각 가능성이 나오는 이유다.
MBK는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할 경우 주주가치 회복을 위해 지난해보다 배당 규모를 60% 가까이 높일 계획을 밝혔는데 고려아연은 이를 인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과도한 배당 확대가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고려아연의 신성장동력 육성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있다.
기술 유출 논란도 뜨겁다. 2024년 국정감사에서 고려아연 사례가 지적되며, 사모펀드가 외국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핵심 기술을 해외로 이전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이런 위험은 첨단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들이 사모펀드에 매각될 때 특히 심각하다.
PEF가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 내 지배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불균형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대 법대 논문 중 ‘현행 사모펀드 규제의 개선방향에 관한 연구(저자 이호영)’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PEF가 대기업집단과 결합하면서 특정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경제적 집중을 초래하는 사례가 다수 다뤄져 있다. 논문에서는 ‘이는 공정 경쟁을 저해하고 중소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가 안보와 기술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경고한다. 자본력에 있어서는 은행과 증권사를 능가하지만 규제 측면에서는 사적인 계약의 보호를 강하게 받는 PEF와 기업 간 거래는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PEF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MBK와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이후 기업과 펀드가 서먹해질 것 같지만 오히려 협력이 더욱 다양한 형태로 늘어나고 있다”며 “적대적인 외국계 펀드의 공격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자 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기업과 국내 PEF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졌다”고 귀띔했다.
구자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사모펀드 규모가 커진 만큼 시스템 리스크 방지를 위한 방안을 고민해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2호 (2024년 1월) 기사입니다]